목록모놀로그/작품과 인물 (187)
모놀로그
내가 타임루프라는 장르를 첨이자 마지막 본 작품이 '트라이앵글'이라는 영화였다. 솔직히 그때까지 타임루프라는 장르는 듣도보도 못했기에, 처음 볼 때 조금 혐오스럽고 공포스러웠고,게다가 이해하기 난감했다. 시지프스는 한국 드라마에선 처음 시도한 건 아닌 모양이나, 적어도 내가 본 걸로는 첫 작품이다. 그것도 조승우에 박신혜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한꺼번에 나온다. 또 김별철에 성동일까지. 그들 모두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다. 제목이 그러할진대, 한심하게도 난 그게 루프물일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트라이앵글'에도 시지프스의 그림자가 너무도 명확하게 드리워져 있었음에도... 시지프스야 말로 영원한 루프의 창시자가 아닌가! 신에게 맞서서 죽음을 선고받았지만, 용케도 요리조리 따돌리며 깝죽대다가 천수를 실컷 누리고..
난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 보고 싶은 드라마는 녹화해서 몰아본다. 내 컴엔 수신카드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모든 드라마를 난 그렇게 보고 있다. 내 컴퓨터엔 온갖 드라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래서 난 하드디스크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사랑과 야망'이나 '사랑과 진실' 같은 옛날 명작 드라마, 그떈 내가 정말 좋아했던 드라마부터 최신작까지 모조리 소장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다시 보고 싶을 가능성이 있는 드라마나 영화들은 내 하드에 모조리 담겨 있다. 사실, 그 중엔 너무 많이 봐서 더는 보기가 식상해진 드라마가 많다. 다시 볼 일이 없을 것 같은 드라마들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시대에서 멀어지면서 사라질 당시의 명작이나 대작, 사극, 로코, 등등은 보지 않을 망정 그냥 무턱 가지고..
앞서 내가 장황하게 떠들어댄 이유는, 황시목이 영은수를 여자로서 좋아했다느니, 스스로는 몰랐을지도 모르지만 영은수에겐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느니 하는 듣기 싫은 소리들 때문이다. 아직도 정서적으론 사춘기 소년 언저리에서 멈춰진 시목의 감정적 성장은 남자의 사랑을 한 여인에게 품을 만큼 여유가 없다고 난 보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자에게 혐오를 느끼지 않을까? 영은수는 물론, 황시목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으니, 평소 무뚝뚝하고 냉정하고 무심한 선배라고만 생각하고 어떻게든 그 두터운 장벽을 헐어보려고, 그것도 사랑이라는 그녀에겐 한가로운 감정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복수하겠다는 일념을 황시목을 통해 이루고 싶어서지만, 끊임없이 그에게 어필한다. 그게 번번히 실패하는 이유는 앞서 말했지..
조승우의 레전드 드라마'비밀의 숲'에 대한 리뷰 글들을 읽다보면, 엉뚱하게도 영검이나 한여진을 사이드에 두고 시목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해부해보려는 글을 보게 된다. 물론, 개인 리뷰보단, 비숲 관련 댓글이나 갤러리 다툼에서 자주 보게 되는 광경이다.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자타가 공인하는 걸작 오브더 걸작, 전설 오브더 레전드라는 '비밀의 숲'이 난 이상하게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조승우가 정말 잘생기고 멋있게 나온다. 그런데 감정이 없다. 그 감정이 없다, 혹은 표출을 못한다는 애매한 설정이 오히려 사람들을 안달나게 하는 뭔가 감춰진 성적 매력을 찾아내게 하나보다. 난 그것을 찾지 못하거나, 공감을 못해서 일단 황시목에게 별 매력을 못느끼나보다. 황시목은 우선, 잘생기고 유능하고 똑똑하다. 그는 뇌수술을..
십 여 년동안 나의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취향및 감상 태도는 많이 바뀌었다. 전에는 아주 유명한 영화나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에 한정해서 극소수의 영화만을 간헐적으로 보았고, 그 중에서 몇 몇 영화는 내 인생의 영화가 되기도 했다. 외화도 꽤 보았지만, 한국 영화가 대세를 이룬 후엔 오히려 외국 영화엔 야릇한 거부감을 느끼고 좀 멀리했다. 터미네이터 1 정도가 내 심금을 울린 마지막 외화가 아닌가 싶다. 현실감 제로의 마블 영화나 히어로 영화 혹은 SF 영화치고는 보면서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느낀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이다. 이후론 타이타닉같은 영화도 보긴 했지만, 남들처럼 디카프리오에 매료되지도 않았고, 오히려 가위손의 조니뎁이 훨씬 매력적이었지만, 다른 작품에선 사양이다. 본격적으로 게임이..
드라마,혹은 영화, 혹은 소설같은 작품 속의 비극적 감성은 오랜 시간 내 취향이었다. 그 그 안의 처연함과 쓸쓸함과 비장미를 사랑했다. 어린 시절,'개선문'이란 소설의 다이제스트를 읽은 적이 있다. 또한 '티보가의 형제들(?)'이라는 소설도 읽었다. 물론 두 작품 모두 다이제스트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장대한 시대적 비극을 배경으로 그 시대적 비극에 이리저리 부대끼면서도 역사라는 이름의 횡포에 비하면 그야말로 하잘 것 없는 인간의 생명이라는 것을 고귀하게,애잔하게,비장하게 승화시키는 작품들이다. 개선문은 2차대전 발발 직전의 세기말적인 분위기가 지배하는 파리의 비에 젖은 밤 같은 소설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어둠 속으로 스러져가는 부평초같이 뿌리박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을 시니컬하고 관조적이면서 그래서 더..
난 손 더 게스트를 틈만 나면 보고 또 본다. 그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첫째가 ost 'somewhere' 때문이다. 그 노래는 음원을 따로 구매했을 정도인데, 오존이나 하진 버전 모두 각각의 매력이 있어 두 노래 모두 각별하다. 하지만 이 노래들은 무엇보다 손 더 게스트 안에서 빛난다. 오컬트라는 장르치곤 공포보단 서글픔이 더 큰 드라마였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거대한 악령으로 인해 달랑 셋만 남겨진 어린 아이들... 그들의 운명은 처참했지만, 각자 그것을 극복하고 성인이 되고, 그들은 물론, 다시 만난다. 그 성인이 된 배우들, 김동욱과, 정은채, 그리고 김재욱이라는 배우들의 신묘한 조합이 또한 내가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두번째 이유이다. 김동욱은 사실은, 신과 함께에서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