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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델루나' 청명의 사랑이 쓸쓸해서...(1)

모놀로그 2020. 7. 8. 00:53

드라마,혹은 영화, 혹은 소설같은 작품 속의 비극적 감성은

오랜 시간 내 취향이었다.

 

그 그 안의 처연함과 쓸쓸함과 비장미를 사랑했다.

 

어린 시절,'개선문'이란 소설의 다이제스트를 읽은 적이 있다.

또한 '티보가의 형제들(?)'이라는 소설도 읽었다.

 

물론 두 작품 모두 다이제스트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장대한 시대적 비극을 배경으로 그 시대적 비극에 이리저리 부대끼면서도

역사라는 이름의 횡포에 비하면 그야말로 하잘 것 없는 인간의 생명이라는

것을 고귀하게,애잔하게,비장하게 승화시키는 작품들이다.

 

개선문은 2차대전 발발 직전의 세기말적인 분위기가 지배하는 파리의

비에 젖은 밤 같은 소설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어둠 속으로 스러져가는

부평초같이 뿌리박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을

시니컬하고 관조적이면서 그래서 더욱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레마르크의 걸작이다.

 

 

그렇게 난 비극을 좋아했다.

 

다모는 내가 본 가장 처철한 비극적 엔딩의 드라마이다.

또한 그것은 시대극만이 줄 수 있는 절제미와,극적 제한이 

인간들의 삶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절대로 어거지스럽지 않게 비극으로 걸어 들어가는 주인공들의 삶에

눈물 짓게 만든다.

 

장엄하기 그지 없는 그들의 죽음과 사랑의 비극미를 최대치로 끌어올린

대본의 대사와, 화면의 아름다움...

 

난 물론 처음 방송을 볼 때도 그랬지만,

이후 무수하게 복습하면서 울고 또 울었다.

 

비극만이 줄 수 있는 저 황홀하고 순수한 집중력과  불순물을 거르며

받아들일 수 있는 젊음이 주는 극적 하모니

 

그 카타르시스와 아름다움은

비극미 절정의 순백함이다.

 

그로부터 세월이 흐르고, 흘러

비극을 순수하게 즐길 수 있고, 눈물에 맑은 감성을 쏟아부을 수 있었던 나는

세월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건, 그저 나약한 마음과 걸핏하면 붕괴되는 멘탈로 비극이나, 가슴 아픈 모든 것은

피하고 싶어하는 생각지도 못한 내 자신이다.

 

내가 다모 이후,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느낀 드라마나 주인공의 비극이 몇 개 더 있긴 했다.

 

물론, 다모만큼의 홀릭은 불가능했지만

그나마 드라마에서 건질 수 있는 나만의 행복이 부서져 나가기 시작하면서

그 균열과 파편들이나마 내가 주워들 수 있을 때이다.

 

내가 김은숙 작가의 작품 중에서 최후의 최후까지 그나마 망가지지 않고

짜임새를 유지하고 작품의 퀄리티를 유지한 작품으로 인정하는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드라마의 하나로 이름을  올린

'미스터 션사인'

 

그러나, 난 그 작품의 최후 몇 편은 끝내 볼 수가 없었다.

 

불안정하고 격변하는 시대는

늘 인간 핏빛 희생을 먹어치우며 느리게 꿈틀거린다.

 

그런 시절의 사랑이라는 것처럼

힘없고 제일 먼저 짓밟히는 것도 없다.

 

그 시대의 젊은이들은

격동하는 시대의 총칼이 휘두르는 폭력에

생생한 피를 흘리며 꿈도, 사랑도, 희망도 젊음도 모두 바친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 시대의 주인공은 바로 그렇게 자신의 사랑을 목숨과 넘쳐 흐르는 싱싱한 피에

제물로 바치는 인물들인 것이다.

 

그렇게 난 비극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이미 난 인생이 쓸쓸하고, 치졸하고,옹색하게 흘러가기가 얼마나 쉬운 일인지

아니 그런 선택만을 하게 되는 인간들이 넘쳐 나는지 알게 되었다.

 

어쩌면 나도 그런 인간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비극을 두려워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후 다모에 버금가진 않지만, 다시 만난

시대극 특유의 순수하고 처연한 운명 비극의 드라마를 다시 만났으니

바로 호텔 델루나의 '장만월과 고청명'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