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일년 후.. 본문
몰락한 귀족..이라기보다
뭔지 모르게 선병질적이고
지나칠 정도로 섬세해서
어셔가의 몰락이라는 어릴 때 읽은 소설을 연상케했던,
그만큼 비현실적이고
만지면 그대로 내 손이 허공을 헤맬 것만 같아
머리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던
그 사람을
다시 만난 건
일년 뒤였다.
물론,
그 일년 동안에도
우린 계속 같은 공간에 있었다.
물론
그게 온라인이긴 했지만,
그러나
일년 가까이
그는 내 생활의 중심이었다.
그는
내게 가장 중요한 '일'에 관한
지도자였고,
또한 사적으로는
서로 신경전을 펼치며
대립하다가
여차하면
내가 나서서
그를 지켜주며
세상과 싸워주기도 하는
그런 묘한 사제관계가 된 것이다.
그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난 그 조직 내에선
신참이었다.
그래서
그 모임에서 난
겉돌았고,
그렇게 겉돌아도 될만큼
그는 그의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서
행복해하고 있었다.
그렇다..
내가 봐도 그는 참 행복한 사람이었다
난 그가 그렇게 행복하길 바랬다
그의 그런 행복이 지켜지길 바랬다
그럼
난 그에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까.
언제나
절정은 곧바로
파국과 연결되는데
난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단지
내가 본 바로는
언제나 그랬다.
그 모임이
우리 조직의 절정이었다면,
곧바로
그 절정이 주는 후유증인
파국이 강타한다.
그 파국으로 인해
우리 조직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우수한 조직원들은
모조리 그의 곁을 떠났고,
그를 에워싸고 마치
경호원처럼
애지중지하던 인간들도
모조리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아니
그냥 등을 돌리기만 한 게 아니라
막대한 피해까지 입혔다.
그렇게
그는 하루 아침에
그 행복했던 왕좌에서 굴러떨어지고
그를 배신때린
신하들이 남기고 간
상처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때
그의 곁에 유일하게 남은 게
바로 나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일 년이 흐른 것이다.
우린 보이지 않게
티격태격
그러다간
뭔 일 생기면
내가 나서서 해결하고
그럼 다시 사이가 좋아지는
그런 체바퀴를 돌던 중..
올 봄...
따스한 일욜에
난 그를 만난 것이다.
물론
공적인 만남이다
그떄
난 그를 보고
또다시 놀랐다.
헉..
그는 어셔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이 시대의 남자가 되어 있었다.
여전히 스마트하고,
여전히 단정하고
여전히 럭려리했지만
처음 봤을 때
지나칠 정도로 없어서
날 초조하게 했던
세속의 냄새가
이젠
강하게 전신에 흘러넘치는 것이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런 모습이,
사실 일년 전이 훨씬 매력적이었음에도
(물론 관념적인 매력이지만)
그 비세속적인 매력적인 모습이 주는
아련하고 비현실적임 때문에 느낄 수 없었던
상대가 인간이고, 남자라는 인식을
이제야 주고 있었다.
그는 굉장히 섬세하게 생겼다.
선이 여자보다 더 곱다.
그런데
그렇게 선이 고운 인간들이
조심해야할 것이 있다면
여차하면
그 선이 망가져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굵직하게 생긴 여자나 남자는
나이 들어도
봐줄만 하지만
배우들만 봐도
섬세하게 생긴 인간들은
조금만 세파에 시달려도
그 선이 망가지며
전체적으로 흐트러져버린다.
비비안 리가 그랬고,
로버트 드 니로도 그러하다.
드 니로도 실은 굉장히 선이 얇은 얼굴이다
그래서
쉽게 군살이 붙고
망가지는 것이다
알 파치노는 굵은 선이다
그래서 나이들수록 멋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는 그 고운 선들이
불과 일년 사이에
많이 망가져 있었다.
뿐이랴..
나이를 초월한 듯
소년같던 모습이 사라지고
대신 남자가 되어 있었다.
그것도 젊지 않은 그냥 남자..
그래서
관념적으로나 미학적으로는
매우 끌리지만
실제적으론 아무런 느낌도 받을 수 없었던
작년에 비해서
그보단 훨씬 망가졌음에도
현실감과 실체감이 느껴지는
올 봄의 모습이
내겐
더 안심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게 그를 본 마지막이다
아니
애초에 마지막이 될 것 같아서
난 그 공식적인 모임에 나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마지막이 되버렸다
하지만..
난 할 수만 있다면
그의 곁에 남고 싶었다
남아서
그를 지켜주고
그에게 많은 것을 해주고
또한
그가 내가 자기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걸
알기에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난 그가 날 놔주지 않으려고 애를 쓴 것을 안다
하지만..
난 예감하고 있었다
점점 다가오는 이별의 그림자를..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렇게 만났으니
그렇게 끝나는 것이다
난
그를 원망하며 떠났지만,
그리워한다
그는
나를 원망하며 보냈겠지만
날 잊엇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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