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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후..

모놀로그 2010. 11. 8. 07:17

몰락한 귀족..이라기보다

뭔지 모르게 선병질적이고

지나칠 정도로 섬세해서

어셔가의 몰락이라는 어릴 때 읽은 소설을 연상케했던,

 

그만큼 비현실적이고

만지면 그대로 내 손이 허공을 헤맬 것만 같아

머리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던

 

그 사람을

다시 만난 건

일년 뒤였다.

 

물론,

그 일년 동안에도

우린 계속 같은 공간에 있었다.

 

물론

그게 온라인이긴 했지만,

 

그러나

 

일년 가까이

그는 내 생활의 중심이었다.

 

그는

내게 가장 중요한 '일'에 관한

지도자였고,

 

또한 사적으로는

서로 신경전을 펼치며

대립하다가

여차하면

내가 나서서

그를 지켜주며

세상과 싸워주기도 하는

 

그런 묘한 사제관계가 된 것이다.

그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난 그 조직 내에선

신참이었다.

 

그래서

그 모임에서 난

겉돌았고,

 

그렇게 겉돌아도 될만큼

그는 그의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서

행복해하고 있었다.

 

그렇다..

내가 봐도 그는 참 행복한 사람이었다

 

난 그가 그렇게 행복하길 바랬다

그의 그런 행복이 지켜지길 바랬다

 

그럼

난 그에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까.

 

언제나

절정은 곧바로

파국과 연결되는데

난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단지

내가 본 바로는

언제나 그랬다.

 

그 모임이

우리 조직의 절정이었다면,

 

곧바로

그 절정이 주는 후유증인

파국이 강타한다.

 

그 파국으로 인해

우리 조직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우수한 조직원들은

모조리 그의 곁을 떠났고,

 

그를 에워싸고 마치

경호원처럼

애지중지하던 인간들도

모조리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아니

그냥 등을 돌리기만 한 게 아니라

막대한 피해까지 입혔다.

 

그렇게

그는 하루 아침에

그 행복했던 왕좌에서 굴러떨어지고

 

그를 배신때린

신하들이 남기고 간

상처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때

그의 곁에 유일하게 남은 게

바로 나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일 년이 흐른 것이다.

 

우린 보이지 않게

티격태격

그러다간

뭔 일 생기면

내가 나서서 해결하고

 

그럼 다시 사이가 좋아지는

 

그런 체바퀴를 돌던 중..

 

올 봄...

 

따스한 일욜에

난 그를 만난 것이다.

 

물론

공적인 만남이다

 

그떄

난 그를 보고

또다시 놀랐다.

 

헉..

그는 어셔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이 시대의 남자가 되어 있었다.

 

여전히 스마트하고,

여전히 단정하고

여전히 럭려리했지만

 

처음 봤을 때

지나칠 정도로 없어서

날 초조하게 했던

 

세속의 냄새가

이젠

강하게 전신에 흘러넘치는 것이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런 모습이,

 

사실 일년 전이 훨씬 매력적이었음에도

(물론 관념적인 매력이지만)

 

그 비세속적인 매력적인 모습이 주는

아련하고 비현실적임 때문에 느낄 수 없었던

상대가 인간이고, 남자라는 인식을

 

이제야 주고 있었다.

 

그는 굉장히 섬세하게 생겼다.

선이 여자보다 더 곱다.

 

그런데

그렇게 선이 고운 인간들이

조심해야할 것이 있다면

 

여차하면

그 선이 망가져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굵직하게 생긴 여자나 남자는

나이 들어도

봐줄만 하지만

 

배우들만 봐도

섬세하게 생긴 인간들은

조금만 세파에 시달려도

그 선이 망가지며

전체적으로 흐트러져버린다.

 

비비안 리가 그랬고,

로버트 드 니로도 그러하다.

 

드 니로도 실은 굉장히 선이 얇은 얼굴이다

그래서

쉽게 군살이 붙고

망가지는 것이다

 

알 파치노는 굵은 선이다

그래서 나이들수록 멋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는 그 고운 선들이

불과 일년  사이에

많이 망가져 있었다.

 

뿐이랴..

나이를 초월한 듯

 

소년같던 모습이 사라지고

대신 남자가 되어 있었다.

 

그것도 젊지 않은 그냥 남자..

 

그래서

관념적으로나 미학적으로는

매우 끌리지만

실제적으론 아무런 느낌도 받을 수 없었던

작년에 비해서

 

그보단 훨씬 망가졌음에도

현실감과 실체감이 느껴지는

올 봄의 모습이

내겐

더 안심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게 그를 본 마지막이다

 

아니

애초에 마지막이 될 것 같아서

난 그 공식적인 모임에 나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마지막이 되버렸다

 

하지만..

난 할 수만 있다면

그의 곁에 남고 싶었다

 

남아서

그를 지켜주고

그에게 많은 것을 해주고

 

또한

그가 내가 자기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걸

알기에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난 그가 날 놔주지 않으려고 애를 쓴 것을 안다

 

하지만..

난 예감하고 있었다

 

점점 다가오는 이별의 그림자를..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렇게 만났으니

그렇게 끝나는 것이다

 

그를 원망하며 떠났지만,

그리워한다

 

그는

나를 원망하며 보냈겠지만

날 잊엇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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