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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그 전각의 생생한 현장

모놀로그 2010. 10. 25. 01:58

얼마 전에

정품 버버리 코트를 선물받았다.

 

어깨가 조금 안맞는게 흠이지만,

 

과연..

그 촉감이라던지

그 디자인이라던지

 

죽여준다.

 

내가 받은 건

롱코트인데,

 

모자를 쓰고

깃을 세운 다음

벨트를 졸라매면

 

내가 마치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드가 된 기분이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아닌

험프리가 된 기분이 드는 게 좀 유감이지만..ㅋ

 

트렌치 코트의 대명사라고 할만큼

정석적이다.

 

다른 버버리에 비해선

정말 고전적인 스타일인데,

 

스튜어디스를 하는 사촌이

영국에 간 길에 사온 진품이다.

 

원래 트렌치 코트를 좋아하지도 않고,

나한테 어울리지도 않아서

입을 생각을 안했는데,

 

옷장 정리를 하다보니

문득

한번도 입지 않은 채

세월만 쌓인

그 코트가 눈에 들어온다.

 

볼 때마다

감탄은 한다.

 

색감은 어찌 저리 트렌치 코트다우며,

감촉은 어찌 저리 죽여주며

디자인은 어찌 저리 고전적이란 말인가~!!

 

내가 본 중 최고의 트렌치 코트이다.

 

문득,

올 가을엔

저 코트를 입고

모자를 쓰고

부츠를 신은 채

 

말하자면

분위기 잔뜩 실은 채

 

경복궁에 가서

사진을 왕창 찍어왓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한다.

 

예전엔

경복궁을 참 자주 갔다.

 

원래

고궁에 관심이 많아서

5대 고궁을 밥먹듯이 돌아다녔지만,

 

언젠가부터 더이상 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도무지가 볼 게 없다는 거..

 

기록에 따르면

경복궁엔 200동 가까운 전각이

그리고 창경궁에도 70동 가까운 전각이 있었다한다.

 

내가 소장하고 있던

창경궁의 조감도를 보면

그야말로

전각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지금은 어떤가~!

 

휑하니 빈 공터만 즐비하고,

몇 개의 전각이 초라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특히

창경궁의 전각들은,

 

장희빈이나 사도세자의 역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아직도 남아 있는

통명전이나, 경춘전 등등이 그러하다.

 

경춘전은

혜경궁 홍씨의 거처였고,

인현왕후가 승하한 전각이기도 하다.

역대 왕비나 비빈이 거처한

중요한 전각이다.

다행히 아직도 남아 있지만

달랑 기와집 한 채가

빛이 바랜 채로 남아 있을 뿐이다.

 

설마 그랬을라구..

실제론 아마

그 전각을 둘러싸고 수많은 전각들,

다시 말해서

상궁 나인들이 거처하는 행각들이

그 궁전을 에워싸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일제에 의해

모조리 철거당하고

용케 살아 남은

경춘전은

비빈의 처소라기엔

너무나 초라하다.

 

뿐이랴~!

통명전은

창경궁에서도 알아주는

연회장이었다한다.

그러나

역시 달랑 빛바랜 전각 하나..

그래도 왕년의 아름다움을 조금은 간직했지만

너무 황량하다.

 

그 외에도

한중록에 실제로 등장하는

전각들이 수없이 많다.

 

그 중에 생존하는 전각은 거의 없다시피 한다.

 

사도세자가 처분 당한

전각은 아직은 남아 있다.

창경궁에선 편전에 해당되는 문정전이다.

 

남아 있다기 보단

사라진 걸 복원한 모양이다.

 

중전이나 대왕대비가 승하하면

빈전으로 쓰이기도 했는데,

그땐 휘령전이라 불렸던 듯..

 

바로 그곳이

비운의 사도세자가 돌아간 곳이다.

 

영춘헌이나 집복헌도 남아 있다.

 

영춘헌은 정조가 말년에 자주 기거했던 전각인데

완존히

시골집처럼 초라한.

거의 행각같은 비좁은 곳이다.

집복헌도 그러하다.

그곳은 세자의 생모 선희궁 영빈의 처소였다한다.

지금 보면 너무 초라해서

설마..

그때도 저랬을까 싶다.

 

내가 제일 아쉬운 부분은

창경궁에서 완전 소실된 전각들,

사도세자의 비극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동궁전이다.

 

일찌기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저주했다는

취선당을 비롯,

수많은 전각들이

동궁에 있었는데

하나도 남지 않고 모조리 사라졌다.

 

동궁의 정전인 저승전을 에워싼

광대한 전각들이

하나도 남지 않은 것이다.

 

요즘 경복궁 복원이 한창이라고 들었는데,

사실 난 복원이 그다지 달갑진 않다.

 

복원은 그저 복원일 뿐이다.

 

번쩍거리는 새로운 전각이다.

 

내가 보고 싶은 건

복원된 새전각이 아니라

역사의 현장으로

당시의 숨결이 배어 있는

그때 그 모습인 것이다.

 

그래서

난 경복궁이 복원되기 시작할 무렵부터

오히려

고궁을 찾지 않았다.

 

예전 경복궁에서 가장 볼만한 전각은

조선말

조대비가 머물렀던

자경전이다.

 

대원군이 증축한 경복궁에선

그래도 유일하게

궁전의 모습을 유지한 채 남아 있다.

 

본전은 물론

그것을 에워싼 행각까지 손실되지 않고 남아 있는데,

 

난 그곳을 즐겨 찾았다.

 

가끔은

행각의 작은 방이나

취사방을 들여다보면

 

찬바람이 휭하니 부는게

솔직히 무섭긴 했다.

 

인적이라곤 없는,

냉기만 감도는

어두운 방들..

 

하지만

본전의 큰 방은

비록 문짝들은 모조리 사라졌지만

그래도

웅장해서

당시의 모습을 상상케한다.

 

조선조의 왕궁은

사실

참 초라하다.

 

하나같이

작은 기와집 한 채가 달랑~

 

그것을 행각들이 에워싸고 있으면

웅장해보이긴 하지만

내막적으론

그냥 기와집 한채라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그 기와집이 수십칸일 경우,

 

방 하나가

십칸은 차지한다.

 

그 십칸이 바로 그 전각의 주인이 사용하는 공간이다.

 

나머진

그 주인을 에워싼 무리들이

겹겹히 대기하고 있는

대기실인 셈이다.

 

한중록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취선당이 사라진 게 아쉬었다.

 

장희빈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반드시 등장하는 그 전각은,

 

말년의 희빈이 거처하면서

실제로도 인현왕후를 저주했다고 하니

실존하고 있다면

얼마나 생생한 역사의 현장일까?

 

한중록에서

혜빈은

그 취선당을

동궁의 주방으로 썼다며

한탄한다.

 

사도세자가 어릴 무렵이면,

희빈이 무참하게 세상을 떠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이다.

 

그 난리가 당시만 해도

생생할텐데

 

바로 그 무시무시하고도 불길한 장소를

소중한, 것도 어린 세자의 음식을 만드는

수랏간으로 사용했다는 것에

혜빈은 분통을 터뜨린다.

 

옛날이니 그럴만도 하다.

 

아니

현재도

행여 누가 비명횡사하거나, 자살한 집이라면

사람들이 기피할텐데,

 

하물며

그 시대에

오죽했으랴..

 

것도 시일이 오래 지난 것도 아닌,

불과 몇 년 전에 있었던

처참한 사건의 현장을

동궁의 수랏간으로 썼다는 게

사실

나도 끔찍하긴 하다.

 

게다가

사도세자는

그 취선당의

괴괴한 정적이 흐르는

어떤 작은 행각의 방에

혼자 누워 있곤 했다니..

 

지금이야

너무 발달하고 혼란스러워서

귀신들도 발붙이기 힘들고

먹고 살기 힘들어

함부로 나서지 못하지만

 

그때만해도

좀 맑은 시대랴~!

 

원혼이 얼마든지 설칠 수 있었으리라.

 

어찌 생각하면,

자신의 아들인 경종을

밀어내고

희빈이 미워한 인물 중 하나인

숙빈의 아들인 연잉군이

결국은 즉위하여 왕이 되었고,

그 아들이 장헌세자이니

 

그의 운명이 유별나고

비참했던 것이

어쩌면

희빈의 원혼이 벌인 처절한 복수극일 수도 있겠다.

 

희빈이란 여자는 집념이 대단한 여자였던 것 같으니,

게다가

자신이 잘못했다곤 조금도 생각지 않는 여자였으니

억울하게 죽었다고 믿고

그 분풀이로

영조의 아들을 그렇게 만든 것일지도?

 

영조도

어렵게 얻은 외아들을..

이유도 없이

공연히 못마땅하게 여기다가

결국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스스로 몰아넣으니

 

굳이 그렇게 보자고 들면

그럴수도 있겠다.ㅋㅋ

 

중궁의 대표적인 전각이

바로 대조전이다.

 

대조전은

창덕궁에 있는데,

 

실은

경복궁의 내전이었다.

 

하지만

경복궁은 임진왜란으로 홀라당 타버리고,

 

이후론

창덕궁이 정궁이 되고,

또한 창경궁을

동궁으로 만들었으니,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건들은

대개가

창덕궁과 창경궁을 배경으로 벌어진다.

 

대조전은 역대 왕비들의 처소로

 

나도 실제로 보았지만,

 

비교적 원래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어쩐지 아직도 그 안에

고리타분한 왕비마마가 보료 위에

오똑 앉아 있을 것만 같은..

 

그렇게 잘 보존된 전각이다.

 

아담한 뜰이 전각앞에 놓여 있고,

단아하고 조촐한 전각이

늘어서 있다.

행각도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선가

창덕궁으로 들어가는 건

그다지 쉽지가 않다.

 

비원을 보존하려고 그러나본데,

 

사실

난 정원엔 큰 관심이 없어서

거긴 가라고 해도 안간다.

 

한번은 비원을 돌다가

욕나올 뻔 했다.

우라지게 넓더만~!

 

왕들도 비원을 구석구석 다녀보진 못했을걸?

 

하여튼,

그 대조전을

경복궁으로 이전했다는데

정말인지?

 

대조전도

실은 경복궁에 있던 내전인데

그게 불탄 후에

창덕궁으로

초석을 옮겨 복원한거라니

 

도무지가

우리나라 궁궐은 노상 화재에 시달린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목조 건물에

창호지를 바른 문짝이 달랑 에워싸고 있으니

 

촛대만 살짝 넘어져도

그대로 전각은 불길에 휩싸인다.

 

실제로

사도세자가

아버지에게 열라 욕먹은 후에

열받아서 팔을 휘두르다가 촛대가 넘어지는 바람에

세자의 편전인 낙선당이 불타고,

그로 인해

또다시

열나게 혼났다하니

 

지금 남아 있는 전각들도

대개는 복원에 복원을 거듭한 것 들인 셈이다.

 

하기야

아무도 살지 않는 전각들이

 

비바람에 시달리고

세월에 시달리다보면

 

아마 지금쯤은

그대로 바스라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사 속에 거론되는 전각들을

실제로 보는 느낌은 참 각별하다.

 

경춘전을 돌아보며

 

여기서

인현왕후가 승하했구나..

여기서 혜경궁 홍씨가

불행한 결혼 생활과, 과부 생활을 보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노라면

문득

 

밝은 햇살 아래

 

무심하게 즐거운 표정으로 지나치는

고궁 나들이객들이

어쩐지 서글픔을 더해준다.

 

가끔

 

경복궁의 모든 전각과

창경궁의 모든 전각을

모조리 복원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가끔은,

 

우리나라도

왕조를 그대로 유지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궁을 보고 있노라면

특히 그런 생각을 더한다.

 

왕조를 완전히 말살시켜버린 나라는

아마 프랑스와 한국 정도가 아닐까?

 

프랑스의 왕들도

워낙에 국민들을 돌보지 않아

치를 떨게 한 모양이다.

 

오죽하면

유렵의 웬만한 나라치고

왕조가 없는 나라가 없건만

그래도 유렵에선 대장급에 속하는

프랑스가 없을까..

하긴

독일도 없구만.

 

우리나라야

그놈의 왕조가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빼앗겼다지만,

 

따지고보면

그것만이 이유는 아닐수도 있다.

 

왜냐면

나라를 통째로 원자탄을 맞게한

일본도 아직은 천황이니 뭐니 하면서

유지하고 있으니까.

 

하긴

일본은

제아무리 험난한 시절을 거치면서도

왕실은 지켜왔다.

 

지독한 나라다.

 

하긴,

그래도 한땐

아시아를 지배하게끔 해줬으니

원자탄을 맞게 한 것쯤은 눈감아 주는건가?

 

나라를 맥없이

것도 바보처럼

빼앗긴 조선 말기의 한심한 왕족들은

그래서

그렇게 쫓겨난건가?

 

솔직히

내 생각엔

왕실이 유지되는 건

우리나라 속성상 쉽지 않을 것 같다.

 

드라마 궁에서도 나오지만,

 

황실이란,

국민의 세금으로 유지된다.

 

물론

왕실이 건재했다면

자신들의 재산도 있겠지만,

 

대개는

국민들이 먹여살리는건데

 

과연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신의 세금으로 잘먹고 잘살며

궁궐에서 왕족이랍시고

군림하는 꼬라지를

봐줬을까?

 

절대로 참지 못하고

왕조가 별탈 없이 이어졌다해도

당장 없애라고 펄펄 뛰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대대로

대통령이라는 사람 중에

이렇다할 인물이 없었던 것을 감안할 때,

 

입헌군주제면

대통령이라는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우두머리 노릇을 했겠지만,

 

아마 한국의 우두머리의 역대 그릇으로 보아

왕이라는, 혹은 황제라는 이름으로

어떤 종족이

거대한 궁전에서 기거하며

저들만의 리그를 벌이는 꼴을

절대로 봐넘길 리가 없다.

 

아..

내가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거지?

 

수다를 떨다보면

꼭 삼천포로 빠진단 말이지.

 

버버리코트가

왜 왕조의 유지와 연결되냔 말이다.

 

올 가을엔

모처럼 경복궁이라도 가서

복원되었다는 전각들을 둘러보며

 

버버리 코트의 깃을 세우고

분위기 좀 잡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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