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아름다운 그녀 (9) 본문
드디어..준호의 이야기는 이제
마지막에 이르렀다.
내가 가장 잊을 수 없는 바로 그 순간으로
오고 싶지 않았던 순간으로
올 수밖에 없다.
마지막 시합을 앞두고
대기실에서의 풍경....
아내와 두 아이가 아버지와 남편인 준호를 지켜보고 있다.
시합 개시 직전
대기실을 나가려던 준호는
돌아서서 가족들을 돌아본다.
이제야 비로소 자기 아내가 된 선영과 두 아이들...
그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엔
충족감이 넘실대지만
동시에 그들에게
너무나 사랑한다고
감사하다고
그리고
작별을 고하고 있다.
이게 너희를 보는 마지막이구나..
나같은 인간을
사랑해주고
남편으로
아버지로 대해주고
믿어주고
끝내는 마지막까지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있다.
너무나 아름다운 그녀를 준호는
눈에 새겨두려는 듯이
영혼에 새겨두려는 듯이
애잔하게
잔잔하게
그리고 집요하게 바라본다.
슬픔도 미련도 집착도 없다.
그녀를 다시금 혼자가 되게 하는 것이
너무나 미안하고 아프지만
그것을 그녀가 이겨내기를 바라는 듯도 하다.
내가 너희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부끄럽지 않게 떠나는 것 뿐이야..
너희들은 다시 남편과 아버지를 잃게 되겠지만
난 좋은 남편도 좋은 아버지도 될 수 없는 인간이었어
하지만
너희들을 사랑해..
그래서 마지막으로
챔피온의 아내로
챔피온의 아이들로
만들어주고 떠나고 싶어.
챔피온으로 죽고 싶어서가 아니야.
내 마지막 숨을 다해서
내 존재를 입증하고 싶을 뿐이야..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선영은 죽음의 길로 떠나는 남편을
애처롭게 눈물을 가득담고
배웅하지만
그의 얼굴엔 미소가 어린다.
대기실을 나서는 순간
그의 어깨에서 수건이 미끄러 떨어진다.
그 순간
다시 한번 그들은 아마도 마지막으로
마주본다.
격렬한 시합이었다.
목숨을 건 마지막 결투...
준호 일생일대의 사투였다.
상대는 다름 아닌
자신이 키워낸 민혁.
시야는 이미 흐릿해져서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자기의 혼을 불어넣어 키웠던 민혁은
마치 악마처럼 잔인하게
스승인 자신을 조롱하듯 웃고 있다.
결국
준호는 사력을 다해서 승리로 시합을 마치지만
이미 그의 숨은
그 시합에 마지막으로
쏟아부어지고 말았다.
그가 그녀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당신은 내게 너무 아름다왔어요.....
27세의 복서 황준호는
그렇게
죽어간다.
그는 타고난 복서였으며
도망칠 곳은 없었고
죽어도 링 위에서 죽은
행복한 복서였다.
그에게 너무 아름다운 그녀마저도
그를 링 위에서 끌어내릴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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