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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그의작품들

아름다운 그녀-에필로그-

모놀로그 2010. 6. 6. 17:29

아름다운 그녀는 내게
준호의 이야기로 보인다.

그래서
내겐 너무 아름다운 그녀라는 제목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너무 아름다운 그녀는
황준호의 인생엔 어울리지 않았고

어울리지 않는 여자를 사랑한 댓가를
그는 톡톡히 치뤄야했다.

그녀를 얻는 대신
복서로서의 생명을 잃었고

복서가 아닌 황준호는
세상에 설 자리가 없다.

복서가 아니면
그녀의 남편도
아이들의 아버지도 될 수 없는

부랑아 황준호일 뿐이었다.

그걸 아무도 이해해주지 못했던 주변 사람들..

엄마를 엄마라 부르지 못하고
아내를 아내로 여기지 못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인생을 겉돌기만 했던 황준호...

그는 죽음의 선고를 받고서야
비로소
그가 원했던 것을 얻는다.

그래서 그의 인생은 아이러니한 비극이다.

왜 그의 주변인물들은
그를 사랑하면서
그에게 그토록 무심했을까..

아니
그는 왜 자기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여자를 사랑했을까..

아름다운 그녀의 사랑을 받아서
그는 좋았을까?

내가 이 드라마를 보지 않았던 이유는
제목만으로도
그 내용이 날 골치아프게 할 것 같아서였다.

3류 복서와 아름다운 여자의 사랑 얘기..

그 결과가 어떨지는 안봐도 비디오였으니까...

아마도 BH가 한 역할 중에선
가장 질척대는 역이었을 것이다.

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고
평생을 아웃사이더에 고아라는 낙인을 심장에 찍고 살며
그 어느 곳에서 소속감을 느낄 수 없었던 남자..

그나마 사각의 링만이
그가 자기 존재감과 존엄성을 확인받을 수 있었지만

거기서 죽을 권리조차 박탈당했던
가련한 존재...

 

권투 선수가 아닌 황준호는 황준호가 아니며

자기를 잃어버린 채로는

아무리 사랑하는 여자라해도

그 곁에 있을 수 없다는 걸 깨닫는 것이 내겐 강렬했다.

 

단순 무식하고

배운 것 없고

가진 것도 없으며

순하고 착하기가 바보 수준인 황준호이지만

어렴풋하게 그것만은 알았던 것이다.

 

권투를 할 수 없는 황준호는

이미 황준호가 아니고

누군지 모를

그 낯선 인간을 스스로 인정하고 사랑할 수 없으며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는 상태로는

그 누구도 온전하게 사랑할 수 없음을 깨닫는 것이다.

그렇다.

스스로를 상실한 채로

누굴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랑밖에 가진 게 없는 사람에게

사랑은 사랑 이상의 것이라고

레마르크는

개선문에서 말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하기 위해선

우선

자신의 자아를 잃어버려선 안되는 것이다.

내가 누구이고

내가 뭘 해야하는지

통찰하고

그것을 행하지 않으면

사랑도 제대로 할 수가 없음을

황준호는 보여준다.

 



황준호라는

인물의 일대기라고 볼 수도 있는

이 드라마가

내게 남겨준 건

바로 그러한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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