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관장과의 관계는 준호가 3류 복서로 빌빌거리며 생계를 위해 해결사 노릇을 하느라 경찰서를 들락거리던 시절에 시작된다.
준호의 시합을 보며 한눈에 그가 제목임을 알아본 조관장이 먼저 그에게 접근한다.
일찌기 고아로 자라면서 고등학교는 겨우 나왔지만
사회적으론 아웃사어더에 왕따였던 준호가 경험한 사회 생활이란 것이 극도로 제한된 것일 수 밖에 없었다.
그는정상적인 인간관계를 가져본 적이 거의 없었던 듯 하다.
겨우 조폭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그의 대외적 인간 관계의 전부였던 모양이며 따라서 그에게 정신적 지주가 되어줄 사람이나 토닥여줄 사람 혹은 꾸짖어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알려줄 사람이 그의 주위엔 없었다.
그는 해결사 노릇이 얼마나 나쁜 짓인지 알지 못했다고 후에 선영에게 고백한다.
그처럼 그는 비사회적인 자기 만의 세계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 세계는 즉물적이고 단순하며 유아스럽기까지 하다.
그는 잡초처럼 억세게 그러나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살아온 것이다.
천성이 착하고 야망은 있으되 욕심은 없는 순진한 준호 같은 타입은 사회적으론 갓난아이나 다를 바가 없다.
먼길의 고아 우식처럼 냉정하게 계산적인 사회생활을 꾸려가며 자신의 삶을 영위할 야무진 구석이라곤 없었다.
그는 주먹 하나 믿고 삼류 복서를 전전하며 가끔 해결사 노릇을 하며 되는대로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런 준호를 그의 말에 의하면 복서가 아니라 사람으로 만들어준 정신적 아버지가 바로 조관장이다.
조관장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자신은 이미 패배한 인생이며 가진 건 쥐뿔도 없는 삼류 매니져이지만 뚜렷한 권투 철학을 지닌 고집세고 복서로서의 자긍심이 대단한 코치였다.
그는 늘 말한다.
인생의 챔피온이 먼저 되라고~!!
그는 엉망진창으로 살고 있던 준호를 수렁에서 건져내어 복서다운 복서로 만들어준다.
우직하고 단순하며 애정 깊은 준호에게 있어서 조관장은 단순한 매니져요 코치가 아니다. 스승이자 아버지이다. 아니 그 이상의 존재이다.
잡초처럼 들개처럼 어둠 속을 서성이던 자신을 복서로 그리고 사람으로 만들어준 사람이다.
잘못하면 야단치고 두들겨패기도 한다.
일찌기 준호가 그런 찐한 사랑을 누구에게 받아보았을까?
부모 형제가 없이 떠돌던 준호에겐 아무도 야단을 치거나 진심에서 우러나서 잘못될까봐 두들겨패준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준호에게 조관장은 단순한 사제지간을 넘어선 절대적 존재이다.
또한 조관장 역시 그가 키운 복서 중에서 준호를 가장 신뢰하고 사랑한다. 그의 인간됨, 순수하고 약삭빠르지 못하며 우직하고 애정과 의리 깊은 천성을 알아본 탓이리라.
그는 준호에게 병이 생겼음을 알게 된 후론 절대로 권투를 못하게 한다.
자기 자신 가장 친한 친구에게 병이 있음을 모른 채 시합을 하다가 결국 죽게한 전력이 있기 떄문이다.
조관장에게 말로가 다가오기 시작한 것은
친한 친구를 시합 중 죽게하고 그의 아내와 체육관을 차지한 과거를 까발겨서
딸을 빼앗고 체육관마저 빼앗으려는 준호의 프로모터 떄문이다. 그녀는 조관장에게 원한이 깊다. 그를 파멸시키는 것이 그녀의 목적이다.
조관장이 자기 매니져의 음모에 빠져 딸을 잃고 체육관까지 잃게 될 지경에 빠지면서 지병이 악화되었음을 알게 된 준호는 우울하다.
조관장은 그동안에도 이런 저런 약점을 준호의 악질 매니져에게 잡힌 채로 좋은 선수를 발굴해서 키워내면 모조리 그녀에게 헐값에 빼앗길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매니져는 선수들에게 불리한 계약서를 쓰고 그들을 챔피온으로 만들어주는 대신 철저하게 이용해먹고 파이트머니는 한푼도 주지 않은 채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매몰차게 버리는 그 바닥에서 굴러먹은 유능하지만 악질 프로모터이다.
조관장과 준호를 마지막까지 괴롭히는 악역이기도 하고 기어이 조관장을 파멸시키려고 악을 쓰다가 결국엔 조관장의 죽음의 원인을 제공한다.
준호는 그녀에게 조관장의 체육관을 빼앗지 말라고 협박하다가 따귀를 얻어맞는 바람에 지병인 뇌에 충격을 받아 기절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그 사이에 아이들까지 유괴되는 비극이 발생하기까지 할 정도로 그 여자는 조관장 뿐 아니라 준호를 정신적 육체적 그리고 물질적으로 괴롭힌다.
체육관만은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애걸하고 밤거리를 비틀거리며 사라진 조관장.. 그를 배웅하는 준호...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이었다.
결국.. 조관장은 체육관을 뺴앗긴 충격으로 사망하게 되고..
다시 한 번 시합을 하여 자기의 정체성을 되찾아 가족들 앞에 당당하게 나서고 싶었던 준호에게 그것은 단순한 코치의 죽음이 아닌
정신적 지주를 잃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는 일이었다.
준호는 조관장의 체육관을 빼앗지 않는 조건으로 챔피온 벨트를 매니져에게 반납한다.
다시 시합을 해서 처가에 자기가 끼친 많은 금전적 피해를 갚아보려던 준호에겐 이제 그 길 마저 막힌 셈이다.
그가 가족들에게 돌아갈 길이 조금 더 멀어진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조관장의 빈소를 찾아온 선영..
그녀를 바라보는 준호의 눈빛엔 절망과 비애가 넘실댄다.
조관장의 죽음은 준호에겐 어떤 의미에선 아버지의 죽음과도 같았다.
그에게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진정한 복서가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가르켜줌과 동시에
준호를 한 사람으로 그리고 복서로서 인정하고 사랑해준 유일한 어른이었다.
가족들을 떠나서 다시 혼자 남은 데다가 조관장마저 죽어버리자 준호는 절망에 빠져서 헤어나올 수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