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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

모놀로그 2023. 5. 22. 01:15

영화 '헤어질 결심'은 작년에 마지막으로 본 영화이고,

그 이후론 영화는 전혀 보지 않고 있다.

 

헤어질 결심이라...

 

난 이 영화가 정말 보고 싶었는데,

그러나 극장엔 개인적 사정상, 더 정확히 '건강상의 이유'로 갈 수 없는 고로

인터넷에 올라오기 만을 고대하다가

올라오자마자 잽싸게 보았고,

 

그 가장 큰 이유는

아주 단순하게도, 제목이 참 맘에 들었다는 것,

박찬욱 감독의 영화라는 점,탕웨이라는

여배우가 보고 싶었다는 점, 

단지 꺼림직한 것은 다들 좋아하는 '박해일'이라는 배우가 내겐 다소 비호감이라는 것 정도.

 

'헤어질 결심'이라니 참 멋진 제목 아닌가?

난데없는 제목이기도 하다.

 

'난 그 사람과 헤어질 결심을 하고 있어.

난 그 인간과 헤어질 결심을 오래 전부터 해왔어.

넌 나와 헤어질 결심을 한 거지?'

 

 

 

그런데 저 난데없이 어디서 뚝 떼어온 듯한 제목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과거에 있었던 일인지,

현재에 일어난 일인지,

혹은 미래에 그러겠다는 건지?

 

 

그렇듯 모호하여 매혹적인 저 영화 제목은 

그야말로 '안개'에 휩싸인 듯,

말러의  교향곡처럼 아련한 듯,

푸르스름한 바닷가, 만조를 채우려 밀려오는

인정사정 없는무서운 물결처럼

뭔지 모르게 '애잔하고'`잔인하고''슬프다'

 

헤어질 결심을 설명하고, 해석하고, 분석하고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다.

 

이 영화만큼은 그럴 필요가 없는 박찬욱 작품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 '아가씨'와 비슷하고,

아가씨 역시 내가 좋아하는 박감독 영화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영화를 산산조각으로 해체하고, 분해하고, 들여다보는 것이다.

 

한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허벌나게 어려운 기교의 피아노 한곡을 연습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쇼팽의 곡을 하나 완주한다치자.

그 곡을 무대 위에서 멋지게 연주하기 위해서는,

천재가 아닌 담에야 연습을 해야하고,

혹은 천재라도 연습해야 하며,

'라흐마니노프'조차  늙어 죽을 때까지

'하농'으로 손가락 연습을 했다는 썰이 있으니!!

 

음악 한 곡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그 곡을 해체해야한다.

그리고 분석한다.

그리고 산산조각낸다.

음표 하나하나를 각각 분해하여야 한다.

그게 연습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 곡을 연주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영화도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질 것이다.

화면을 꽉 채우는 매혹적인 영화 한 편은

그렇듯 수많은 자잘한 작업이 모여서 이루어진 결과물일 것이다.

 

무대 위에서 불과 10여 분 짜리 연주곡을 한 곡 치기 위해서

10개월을 음표를 해체하듯.

 

감독의 각종 미장센이나, 메타포나, 기타 등등 영화적 기법은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의 기교,내지는 자신만의 음악적 해석이다.

 

하지만 때론 분석하거나, 해석할 영화가 있긴 하다.

난 그런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한편의 음악 같은 영화는 좋아하지만,

이를테면 '곡성' 같은 작품은 웬지 감독에게 놀림을 받는 것 같아서 싫다.

하다못해 난 곡성이 별로 무섭지도 않았다.

 

암튼,헤어질 결심은 바로 그렇게 아름다운 음악 같은 영화이다.

듣고 있노라면 절로 눈에 눈물이 맺히는 듯한 영화이다.

 

난 좀처럼 영화를 보고 가슴을 쥐어뜯는 일은 없지만,

어쩌다 그렇게 가슴을 쥐어뜯은 유일한 영화가 '달콤한 인생'이었다.

 

그리고 '헤어질 결심'이 그러했다.

 

개선문의 한 귀절을 난 언제나 이럴 때마다 생각한다.

 

'사랑 밖에 가진 것이 한 개도 없는 인간에게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라 그 이상이다'

 

마지막 바닷가 씬은,

일찌기 본 적이 없는 전율을 느끼게 하면서도 서럽다.

그토록 잔인한 장면이 그토록 아름답다니 아니러니하다.

 

난 오늘 또 한번 헤어질 결심을 보았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서래의 짧은 생은 온통 '헤어질 결심'이었구나...

한국에 나오기 전, 엄마와 헤어질 결심을 했고,

돌아와선 첫번째 남편과,

그리고 두 번째 남편과,

 

마지막으로 '미결'으로 남기 위해

자신의 삶과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결심은 서래 만이 하는 건 아니다.

해준도 하고, 그 아내도 한다.옥상에서 자살한 인간도 했다.

 

'헤어질 결심'은 인생을 해체할 때

가장 마지막에 나타나는 판도라의 '희망'같은 존재인가?

아니면그 직전에 나오는 절망 중의 하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