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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금을 울렸던 드라마-손 더 게스트

모놀로그 2020. 5. 26. 00:51

난 손 더 게스트를 틈만 나면 보고 또 본다.

 

그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첫째가 ost 'somewhere' 때문이다.

 

그 노래는 음원을 따로 구매했을 정도인데,

오존이나 하진 버전 모두 각각의 매력이 있어

두 노래 모두 각별하다.

 

하지만 이 노래들은

무엇보다 손 더 게스트 안에서 빛난다.

 

오컬트라는 장르치곤 공포보단 서글픔이 더 큰 드라마였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거대한 악령으로 인해 달랑 셋만 남겨진 어린 아이들...

그들의 운명은 처참했지만, 각자 그것을 극복하고

성인이 되고, 그들은 물론, 다시 만난다.

 

그 성인이 된 배우들,

김동욱과, 정은채, 그리고 김재욱이라는 배우들의 신묘한 조합이 또한 내가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두번째 이유이다.

 

 

욱은 사실은, 신과 함께에서 처음 봤지만

강렬하다기보단 편안한 느낌을 주는 참 특이한 연기를 한다.

용모부터가 부담이 없고 생활연기나 극적인 연기나 모두 자연스럽게 가슴 속에 스며들게 하며

나같이 정서적으로 불안한 인간이 보기엔 약간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오컬트 드라마에서

사실상 가장 불행한 희생자라고 할 수 있고, 비극의 최전선에 오로지 집념 하나로

악령과 맞서는 비장한 역임에도

그에게선 뭔지 모를 에너지, 낙천적이고 강하고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편안함이 있다.

 

정은채는...

 

사실 그녀는 오래 전 '닥터프로스트'라는 드라마에서 첨 봤을 떄 부터

어쩐지 눈에 들어왔는데,

의외로 보기 힘들다가

우연히 지나가면서 봤던 '리턴'이라는 드라마에서 재회했다.

그떄 난 마치 르네상스 시절의 그림속 인물같이 비현실적이면서도 신비롭고 특이한 그녀의 용모에 매료되었다.

 

닥터 프로스트 땐 없었던 원숙미와 여성미, 그리고 무엇보다 빛나는 미모라고 단적으로 말할 수는 없을지 모르나

적어도 내가 본 한국 여배우 중 가장 아름답고 매력적이고 미묘하다.

드라마에서 좀 더 자주 보고 싶은 배우이다.

 

그리고 그 정도의 외모, 즉 늘씬한 키와 한국 여배우 중에선 유니크한 미모를 지녔음에도

물론, 목소리나 발성 말투 같은 것이 좀 거칠긴 하지만 그건 본인이 노력해서

다듬어야 할 문제이고, 연기를 좀더 연마해야 하지만

 

난 어떻든 그 여배우는 보기만 해도 눈이 즐겁다.

 

 

아름다운 여배우치곤 손 더 게스트에선 매우 거칠고 터프하며 살벌하기까지한 여형사로 나오는데

화장기 없는 얼굴에 허름한 옷차림으로 매혹적인 미모를 많이 가리고 있음에도

여전히 내겐 매력적인 여자였다.

 

그리고 김재욱...

 

내가 한 떄 좋아했던 '앤티크'라는 영화에서 마성의 게이를 연기했던 김재욱은

손 더 게스트에선 여느 때보다 매력적이다.

 

비록, 앤티크 때의 그 미모가 세월 탓에 조금 빛을 잃긴 했지만

그래도 연기도 나아지고, 분위기가 훨씬 세련된 개성을 창조한 멋진 배우로 나타나서 반가왔다.

 

그리고,

구마의식도 검은 사제들 보단 좀 더 격렬하지만 조금 더 비현실적이고, 대신에 아주 박력있고 멋지다.

 

어찌 보면 한 번에 구마를 해내는 것이 말도 안될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검은 사제들'같은 영화가 훨씬 리얼리티가 있는 것이

그는 몇 개월이나 한 여학생을 줄곧 구마하지만 계속 실패하고 있다.

 

훨씬 노련하고 믿음이나 신념도 남부럽지 않음에도

구마라는 게 그렇게 만만치 않음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손 더 게스트가 조금 불만이라면, 구마의식이 너무 쉽게 이뤄진다는 것,

어쩌면 악령이 큰 악마 자체가 아니라 그 똘마니들에게 빙의된 터라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사실, 난 카톨릭 교도로써

카톨릭이 배경이 되는 드라마나 영화가 좀 거슬린다.

 

내가 영세를 받을 땐

1년 씩이나 교리 공부를 했고,

그나마도 결석 몇 번이면 가차없이 잘렸다.

 

세례식은 엄청난 축제였다.

 

지금도 12월 30일, 한참 추운 날 한복을 차려입고

수많은 꽃다발을 손에 든 인파 속에서

갓 세례를 받은 영세자들이 수줍고도 감동에 가득차서

뜰에 모여 떠들어대던 그 축제의 들뜬 밤이

기억난다.

 

지금은 그때보단 훨씬 규율이 약화되었다.

아마 그만큼 신도가 모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영세를 받을 때만 해도 카톨릭의 전성기였고, 김수환 추기경께서도 생존해 계실 무렵이었기에

교세는 힘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영세를 받기 위해 1년 씩이나 공부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만큼 카톨릭은 모든 형식에 있어 굉장히 엄격하고 까다롭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리 공부보단, 전례에 관한 신자들의 자세,어려운 성가를 익히는 일 같은 것을 많이 배웠다.

물론 교리 공부도 했지만

카톨릭은 교리와 카톨릭 정신이 신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그대로 스며있는

유서 깊고도 보수적인 집단이다.

 

그래서 카톨릭 관련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보기에 괴로울 때가 많다.

 

예컨대, 성호경을 제대로 긋는 신부역 배우를 본 적이 없다.

 

우리가 예비자였을 떄,제일 많이 연습한 것이 성호경을 긋는 것이다.

그만큼 만만치가 않다.

 

신부들님들처럼 멋있고 자연스러우면서 폼나게 성호경을 긋기 까지

영세 후에도 한참 걸렸을 정도이다.

 

그런데 배우들은 이상하게 성호경을 긋는 카톨릭의 가장 기본 자세조차 익히지 않는다.

 

잔뜩 힘이 들어간 손가락을 모아서 역시 힘이 들어간 팔로 어색하게 긋는 성호는

보기가 민망하다.

 

그런 것 정도는 몇 일만 연습해도 적어도 그렇게까지 어색해서 드라마나 영화의 완성도에

흠집을 남기진 않을 수 있을 텐데...

 

 

 

암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김재욱의 구마 사제역과 의식이

검은 사제들의 김윤석이나 감동원의 그것이 훨씬 리얼리티가 있었음에도

감동적이었다.

 

무엇보다

손더 게스트는 가슴아픈 드라마이다.

 

셋만 달랑 남겨진 고아나 다름없는 세 아이는 실은

서로가 서로에게 가해자요 피해자며

웬수라도 해도 무방하다.

이상한 운명으로 그렇게 하루 아침에 가족을 잃은

세 아이는 성인이 되어 필연적으로 다시 만나고,

 

그때부터 갈등과 증오와 신경전과 의심으로 점철된

그럼에도 셋이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기묘한 상황에서

싸웠다가 함께 의기투합하여 싸웠다가

또 같이 술을 마시다가

또 싸우고...

 

그렇게 되풀이하며 점차 서로를 이해하고 연민하고 마침내

마지막에 이르러선

너무나 가슴 아파서 눈물이 나는 수중 구마씬이라는

장관을 연출하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살리기 위해

자기를 버리는 세 아이들...

 

자기 엄마를 죽게 한 아이를 위해

정은채는 자신의 손으로 칼을 대신 맞고,

그 아이를 구마하기 위해

신부는 목숨을 건다.

 

또한 김욱이 맡은 '윤화평'은

악령이 일으킨 모든 비극의 가장 큰 희생자임에도

그 책임을 짊어진 채로

그 악령과 함께 죽음으로 세상을 구하고자 한다.

 

사실,

내가 카톨릭 신자여서 그랬는지 모르나

 

마지막 수중 구마에서 신부의 절절한 기도는

안일한 기도 생활을 습관적으로

그마나 내가 급할 때만 하는 나를 채찍질하는 느낌이었다.

 

기도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자신을 내던져야 한다.

진정성과 자기 자신을 버린 완벽한 복종과 의탁이 있어야 한다.

 

김재욱은 마지막 수중 구마에서

바로 그런 기도로 내 심금을 울렸다.

 

서로를 위해 목숨을 버리려는 세 아이는

그 절절하고 피를 토하는 듯한

구마 기도에 감복하신 듯

그들에게 재회라는 선물을 주신다.

 

 

좀 이상한 결론이지만,

나도 가끔 절박할 떈 그야말로 피를 토하듯, 절절하게 기도할 떄가 있었다.

  

 

어떻은 마지막 수중 구마씬은 잊기 힘든 명장면이요,

중간 중간 지루하기도 했던 손더 게스트의 휘날레를

멋지게 장식한다.

 

 

난 내가 좋아하는 세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배우들과,

카톨릭 특유의 문화인 구마라는 의식(근데 정말 구마 사제가 있는걸까?그렇게 자기 영혼이 피폐해짐을

무릎쓰고 구마를 하는 사제가 있을까?있다면 정말 대단하다.)의 신비로움과

너무나 불행한 사람들을 골라 그 영혼을 잠식하는 거대한 절대악의 장난 어린 희롱이

한 가정을 파괴시키는 것에 대한 미칠 듯한 분노를 에너지 삼아 손더 게스트를

가끔 들춰보는 것이다.

 

다음엔 심금을 울린 드라마 '나의 아저씨'와 '호텔 델루나'에 대해서 쓰고 싶다

그러나 웬지 쓰게 될 것 같지 않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것만 해도 수 년 만일 정도로

난 글을 안쓰고

자연히 글 쓰는 법조차 까먹을 정도가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