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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의 작품들이 내게 주는 덧없는 평화

모놀로그 2017. 10. 21. 11:06

대체로,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는 본방으로 시청한 적은 없다.

기사를 찾아 읽는 것은 물론 안하지만

기사가 나면 제목만 읽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작품마다 떠들썩하니 화제가 되기에

작품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지식은 그 기사 제목만으로도 넘치게 얻는다.


그리고 그 드라마들이  끝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어느 우울한 날,

너무 쓸쓸하고 스산하여

마음이 몹시도 추운 날


난 김은숙 드라마를 몰아서 본다.

때로는 틀어놓고 소리만 듣기도 한다.

김은숙 드라마의 좋은 점 중 하나인데,

그렇게 화면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지 않아도

혹은 집중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김은숙 드라마엔

뭔지 모르게 깅한 긍정의 에너지가 흐른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뭔지 모를 쾌활함은,

내가 김은숙 작품에서 제일 즐겨 취하는 장점이다.


재치있는 대사나 인물 간의 대화들도 그러하다.

간혹 도가 지나쳐서

조잡스럽게 흐를 때도 있어서

그게 눈쌀을 찌푸리게 하지만,

차라리 그게 낫다.


일회적으로 소비하지만

여운은 남기지 않는 것이

내겐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다모니, 마왕이니,

처연하기 그지 없는 작품들에 심취해서 빠져들고

배우나 캐릭터에 몰입하는 것도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요즈음의 내겐 그런 에너지가 없을뿐 아니라

그런 몰입 자체가 무척 피곤하기 때문이다.


서글픈 일이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깊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고,

깊이 몰입하지 않아도 되며,

심하게 닥빙하여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거추장스러움을 주지 않는 것이

백프로 확실한 김은숙 작가의 작품은


한 여름에 답답한 가슴에 쏟아붓는

얼음같은 콜라같다.


물론,

뒤이어 그보다 더한 갈증이 난다는 점에서

별로 큰 효과는 없지만



심각하게 머리를 굴리며

극중 인물의 심리를 유추하며

볼 필요가 없는

매우 단순한 캐릭터들과 드라마 서사이고,


더더우기 배우들은 하나같이 우리나라에선

미모와 유명세가 남부럽지 않은 데다가


해외 로케가 작품마다 끼어 있어서

눈요기도 된다.


시크릿 가든부터 시작해서, 신사의 품격, 상속자들


그리고 최근 작품으론 도꺠비와 태양의 후예까지

즐겁게 정주행하였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내가 원하는 유쾌하면서도 매혹적인 분위기,

너무 대놓고 유치해서 차라리 웃음이 나오고, 그 유치한 장면을 돋보이게 하는

엉뚱하게 멋진 영상미가 박수치고 싶어지게 만드는

(예를 들어, 도깨비의 두 남자의 한밤의 마들 워킹씬 같은)

대개 중 후반 쯤에 사라져버리고


내가 늘상 말하듯,


신파로코가 되거나

신파 멜로가 되거나


무거운 드라마가 주는 깊은 감동과는 거리가 먼,

거추장스러운 감정 과잉의 홍수에 내가 빠져 죽을 것 같아서

후반은 늘 스킵하게 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시가는 10회 정도가 한계이고,

도꺠비는 7회 정도?


태양의 후예는

이상하게 몇 번 씩 보게 되지 않는 드물게 재미 없는 드라마였고,


신품도 후반에 짝짓기가 시작될 무렵부턴 민망의 극치..


게다가

난 김은숙표 멜로가 정말이지 재미도 감동도 없다.


멀리는 파리의 연인부터 시작해서


시가가 그랬고,


상속자들에서도 그랬으며,

태양의 후예나

도꺠비까지


난 남여주의 애닲은, 아니 적어도

작가가 그렇게 봐주길 바라는 그들의 딜렘마 많은 사랑엔

전혀 아무런 느낌을 가질 수가 없다.


내가 김은숙 작품을 좋아하여

가끔 우울할 때마다 소장한 작품들을 습관적으로 틀어놓은 이유는,


차라리

브로맨스들 같다.


시가의 현빈과 윤상현 장면들,


신품에서의 네 악동같은 남자들이 벌이는 조잡한 장난들,

상속자들에선 김탄과 영도의 지독한 애증 싸움


등등


도꺠비나 태후도 그러했다.


공동재라 불리우는 사랑스런 세 남자가 한 화면에 잡히기만 해도

난 좋아 죽는다.


연애질에 몰두하지 않는


남자들만의 세계,

그들의 대화

난폭하고 유치하고 노골적인 대사들이

난 좋다.


별로 매력도 없는 여자 차지하겠다고

싸우느니


영역싸움하는 수컷들이 훨씬 귀여우니까.


하지만

그 여자의 작품에 출연하기만 하면

대스타에 한류까지 덤으로 얻고


만인의 연인으로 떠오르는 일이

반복되다보면


틀림없이 우리는 모르는 어떤 일들이

뒤에서 벌어질 것이고


그것이

초반의 김은숙 작품이 주던

청량감이나 유쾌함이나

방정스럽지만 가볍게 웃을 수 있어


피곤한 일상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던

작은 평화조차

어쩐지

인공 호수처럼 지켜보기가

맘이 편치만은 않을 것 같다.


50이 다 되어가는 이병헌이

김은숙 작품에서

대체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난 앞으로도

그 여자의 작품에서


가볍고 덧없지만

편안했던 순간을

만끽하고

돌아서서 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