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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막염

모놀로그 2023. 6. 28. 10:15

 

 

 

뇌막염이라는 병이 지금도 존재할까?

 

19살 무렵, 난 뇌막염으로 두 달이나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아직까진 처음 경험한 입원 생활이다.

하지만 어렸고, 심한 열병이었기에 기억나는 것은 별로 없고,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이라면, 그렇게 오래 입원하느니 차라리 죽기를 바랄 것 같다.

아예 병원에 가는 것조차 거부할 것이다.

그땐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부모가 시키는대로 할 나이였던 것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입원한 이유는,

'결핵성 뇌막염'이었기 때문이라고 의사는 말했다.

 

사실, 뇌막염은 그저 머리에 염증이 생기는 것이라

심할 경우에도 1주일 정도면 치료가 되는 병이다.

 

그러나 난 입원한 이래 보름이나 의식을 잃고 있었다.

아니, 의식을 잃었다기 보다

의식은 있으되, 고열이 심해서 정신이 없었다고 말하는 편이 좋겠다.

그저 자고 또 자는데,

희한하게도 고통을 느낄 수가 없었다.

고통이 너무 심하면 오히려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때 이후로 나이가 들면서 심한 통증은 별 거 아닌 거고,

심각하거나 죽음에 이르는 병은 통증을 느낄 수 없는 게 대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의식이 없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고통을 내가 느끼지 못할 뿐,

실제론 심한 통증이 있었을 것이므로.

 

나중에 생각해보면

벌떡 벌떡 일어나기도 하고,

몸부림치기도 하고,

가끔 눈을 뜨면 울고 있는 엄마와 걱정스럽게 나를 바라보는 아빠,

그리고 왜 왔는지 알 길이 없는 문병객들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그 와중에도 난 

'왜 저 사람들이 여기, 와 있는거지?'

'왜 저렇게 나란히 앉아서 나를 구경하고 있는 거지?'

 

라고 의아하게 여겼다.

또한 우습게도 그 사람들이 주로 먼 친척들로

평소 별로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도 어렴풋이 하였다.

그리곤 다시금 뭔가 알 수 없는 심연으로 빠져들듯이 의식이 희미해지곤 했다.

 

가끔 난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아파...'

근데 난 아프지 않았다. 아니 느끼지 못했다.

 

척추에서 뇌수를 수없이 뽑았다

내 담당 레지던트는 처음엔 서투르게 뽑아서 고통스럽게 하더니

나중엔 아주 선수가 될 정도였다.

 

척추에서 뇌수를 뽑아낼 때의 그 불쾌하고 이상한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거의 매일 뽑다시피 하다보니 익숙해졌고,

담당의가 익숙한 솜씨로 고통없이 해치우는 바람에 견디기 수월해졌다.

 

보름 정도 지난 후에내가 처음 일어나 앉았을 때도,

난 의식이 그렇게 말짱하진 않았다.

 

그리고 뭔가를 처음으로 먹고 있었는데,

그게 설렁탕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고, 난 지금까지도 설렁탕을 그나마 좋아한다.

 

유명한 설렁탕 맛집이 병원 근처에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그렇게 맛있는 설렁탕은 어디서도 먹을 수가 없다.

겨우 중 2였던 남동생이 매일같이 얼음과 설렁탕을 날랐다고 한다.

 

그런데 난 처음 그 아이가 눈에 들어왔을 때,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너 왜 누나 시계 찼어? 얼른 벗어!!'

 

이후로도 난 고열에 시달리며 줄곧 잠을 잤고,

전과는 다른 것이 통증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만큼의 감각이 돌아왔기에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좀 덜 할 때도 있었지만 그건 진통제 탓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은 정신 없이 자다가 눈을 떴더니,

엄마가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잠시 후에 다시 잠이 들었는데,

알록달록한 한복을 입은 여인네들이 산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뭔지 모르게 요사스러운 느낌이었고, 멍한 중에도 느낌이 과히 좋진 않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시각에 엄마는 외숙모들의 꼬임에 굿을 하였다고 한다.

그 굿으로 인해 난 일종의 신기가 생겼으며

이후로도 그 신기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았다.

한번 굿판에 발을 들여놓으면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의사들은 항생제를 두루 써 봐도 전혀 듣지를 않는다고 갸우뚱하고,

난 의식도 가물가물한 채로 고열에 시달리니

겁이 난 엄마가 이러다가 애 잡는 게 아닌가 싶어

굿을 하자는 숙모들의 꼬임에 넘어간 모양이다.

 

암튼 의식이 완전히 돌아오고, 그래서 이후로 지루한 투병 생활이 이어졌다.

통증이 사라진 후에도 퇴원 허락을 받진 못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하면 엄청 기나긴 두 달의 입원생활이 이어진 것이다.

퇴원할 때, 

의사는 일년 육개월 동안은 내원해서 약을 받아가라고 지시했다.

그 모든 것이 '결핵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이후로 잠시 동안 내 성격은 많이 변했었다.

의기소침하고 자신감이 없어졌으며 매사에 소극적으로 변했다.

 

일 이년이 지나서야  다시 원래 성격을 되찾았던 것 같다.

 

어제는 심한 두통이 눈을 뜨자마자 느껴졌다.

뇌막염의 두통은 보통 두통과는 조금 다르다.

지금은 기억이 희미해졌지만,

두통과 함께 열이 점점 심해지고, 따라서 오한이 나면서

기분 나쁘게 아프다.

하지만 제일 인상적인 것이 두 눈 알이 빠질 것 같은 통증이 

제일 견디기 힘들었다는 점이다.

 

동시에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고,

물만 마셔도 토했다.

 

뇌와 관련된 모든 병증이 두통은 기본이고, 눈이 빠질 듯 아프며

토한다는 것이다.

 

어제 단순한 두통 외에 눈이 빠질 것 같이 아프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또한 희미하게나마 매스꺼운 증세도 있었다.

 

의사가 퇴원할 무렵 한 말이 기억났다.

 

'재발할 가능성이 있고, 재발할 경우엔 치유 불가이며, 아마도 죽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언제쩍인가.설마 지금 재발하기야 하겠는가!!

 

싶으면서도 은근히 재발이었으면 바랐다.

의식을 잃게 될 것이고 그런채로 떠나게 될 것이 맘에 들었다.

 

하지만 난 점심을 맛있게 잘 먹었고,피아노 연습도 했다.

하지만 그 외의 시간은 모두 잠을 잤다.

 

피곤하고 몸이 힘들었다.

마침내 씻지도 못한 채로쓰러져 오늘 아침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두통은 가셨지만 여전히 피곤하다.

 

생각난 김에 말하자면,당시 내 담당의가 엄청 미남이었다.

나를 입원시키라고 명령한 의사는우리 동네 내과의였는데,

동시에 내가 입원한 병원의 내과 과장이기도 했다.

 

키가 크고 얼굴은 검붉었으며 부리부리한 눈에

매부리코, 마치 무슨 무슨 백작같은 느낌을 주는 미남자였다.

 

난 내 담당의를 사모했고, 그 맛에 지루한 입원 생활을 견뎠던 것 같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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