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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멜랑꼴리아'를 보다가 떠오른 생각들

모놀로그 2022. 12. 22. 22:21

나도 수포자이다.

내가 수학을 싫어하고, 무서워하고,포기해버린

가장 큰 이유를 이 드라마를 보면서 깨닫게 되었다.

 

내겐, 그저 몇 개의 알파벳과 숫자, 그리고 제곱, 루트, 방정식

등등으로 기억되는 수학은 내가 알지 못했던 매우 새로운 세계였다.

 

무조건 방정식을 외우라고 강요한 선생들이

수학이라는 학문의 본질과 개념에 대해선 알려준 적도 없을 뿐 아니라,

아예 그들조차도 알지 못했던 게 아닐까 싶다.

 

사실, 수학에 대한 본질적 개념에 흥미를 느끼고,

내가 수학을 몰랐고, 이해못한 이유를 알게 해준 책이 한권있다.

 

그것은 미국의 현학적인 추리소설가 '반 다인'의 작품인

'승정 살인사건'이라는 소설이다.

 

반다인은, 내가 무척 재수없어했던 작가인데,

엄밀하게 그는 추리소설가라기 보단

모든 분야에 걸쳐 전문적인 지식을 자랑하는 미학적 철학가같다.

 

'승정 살인 사건'은 

평생을 수학에 미쳐 살아온 늙은 교수가 벌이는 살인사건이다.

 

다시 말해서

수학은 그 본질이 우주와 같고, 그 우주만을 평생 들여다보며

사유를 거듭하다보면, 마침내 도달하는 것은 '무한대'이며

그런 무한대를 연구하고 또 연구하다보면

그 무한대 속에서 꿈틀대는 개미,벌레같은 인간들의 목숨 따위는

전혀 무가치해 보이기에

살인에 대한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않고

간단하게 오락게임 한 판 하듯 죽일 수 있다나 뭐라나..

 

그 글을 읽으면서

문득, 수학은 내가 알고 있는 그따위 숫자나 기호나 이해하기 힘든

기나긴 증명의 의미가 전혀 다르게 다가왔던 기억이 났다.

 

그 책을 읽었을 때, 난 아직 어렸고, 그래서 기억도 희미하고 완벽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수학이라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라는 것의

본질을 추구하는, 참으로 멋진 학문이라는 것,

그런 개념을 먼저 이해하지 않으면

무시무시한 수학이라는 학문에서 나열하는 괴상한 온갖 문제와

공식과 기호와 숫자는

괴물처럼 외계어로밖엔 들리지 않을 수 밖에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머리가 좋아서 그저 방정식을 달달 외우는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아니 그들조차도 진정한 학문적 의미는 깨닫고 있지 못할 것이다.

 

3차원적 혹은, 4차원적 사고가 필요하고,

멜랑꼴리아에서 말하는 '수학적 시선'이 필요하고

모든 사물의 본질을 본능적으로 수식과 연결해서 바라보는

특별한 재능이 필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난 타고나길 인문학적인 인간이다.

사실 예체능도 내 체질은 아니다.

하지만 만일 인문학 쪽 계열로 진학했다면

아마, 난 싫증을 냈을 것이다.

 

하지만

음악이나 수학 모두 본질적으론 인문학적인 개념을 담고 있다.

아니 인문학이 기본이 아니라면 그 어떤 학문도 발전할 수가 없다.

예술도 그러하다.

 

악기를 다루는 것은

과학과 스포츠가 그 기반이다.

인간의 몸에서 가장 약한 손가락 열 개로

무거운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불가능을 가능케 하여

온갖 작곡가들의 난해한 연주곡을 손가락 열 개로

오케스트라처럼 표현하는 피아노는

그야말로 혹독한 과학적 훈련과, 지루하고 힘든 스포츠의 훈련 과정과도 같은 훈련을 

거치지 않고는 자신의 연주를 예술의 경지에 끌고 갈 수가 없다.

 

결국, 수학도 과학도 그리고 스포츠도

천문학,고고학,또는 역사학 같은

수많은 학문의 근본은 '인문학'이다.

 

이과니 문과니 나누어버린

우리나라의 단편적인 교육 과정이 갑자기 답답해진다.

 

멜랑꼴리아에서

승유의 3분 스피치의 결론은 결국은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은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문학이야말로 모든 학문의 시작이라는 것,

즉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계기가

이번 '멜랑꼴리아'를 정주행하며 얻은 소중한 자산이다.

 

처음 볼 땐 이런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 것이 이상하다.

 

내친 김에

'승정 살인 사건'에서'반다인'의 수학론을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사실, 반다인은,

이른바 수학적인 사고에 빠져서 허우적대다보면 

보통 사람들은 미쳐버릴 것이라고 결론지었고,

나 역시 공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