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드라마 잔혹시대 본문
OTT 드라마의 폭이 넓어졌다.
그만큼 선택의 폭도 넓어졌기에
기대도 컸었지만, 차츰 도가 지나치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작품도 문제지만, 그런 드라마를 즐기지 못하는 나에게도 문제가 있다.
즉, 지금의 내겐 그런 드라마 잔혹사가 감당하기 힘겹다.
나도 한때는 어느 정도 입에 오르내리는 오리지날 드라마들은
기다렸다가
정주행을 하곤 했는데,
차츰 기대를 잃어가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 유명한 '오징어 게임'도 정말 역겨워하며 보았다.
유명 OTT의 오리지날 드라마를 즐긴 시초가 '킹덤'이었고,
두 번째가 '스위트홈' 이다.
'킹덤'은 인상적이었지만, 스위트홈은 보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좀비와 괴물,죽어도 죽지않은 좀비와
스스로의 욕망에 못이겨 괴물로 변해가는 인간들,이후로 난무하는 좀비 드라마나 영화를 난 외면한다.
이후로 가장 인상깊은 드라마는 '돼지의 왕'이었는데
구독층이 취약해서 다들 아쉬워할 정도로 걸작이었지만,
복습하기엔 내 정신력의 한계를 느낀다.
난 폭력이 난무하는 작품을 싫어하진 않았지만,어디까지나 조폭끼리의 폭력 내지는
악과 악의 대결이 주는 통쾌함이나
나약한 인간들이 강한 가해자에게 가하는 폭력을 좋아하는 정도이다.
난 킹덤을 몇 번씩 정주행한 것 빼고는이후로 오리지날 드라마들은
대개 초중반까지만 보고 덮어버리게 되었다.
최근, 아무래도 내 병세가 악화된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
대개 그럴 때는 아무리 명작이라고 이름 높은 드라마나 영화, 혹은넥플릭스에서도
상위권에 오르내린다는 유명작들을 거의 두 번 이상은 보기는 커녕, 완주하기도 벅차다.
그것은 내 정서의 수위를 넘는 작품을 즐겁게 소모하지 못하게 된 탓이다.
한때 '미스터 션사인'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을 정도로 마음이 쇠약해졌다가,
조금은 나아졌나 싶었는데 다시 악화된 모양이다.
내가 무서운 건, 그런 작품이 아니라 그런 작품을 양산해내게 된 세계관의 타락이다.
아니, 타락이 아니라 잔혹함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그저 장사속으로 좀 더 기발하고, 좀 더 잔인하게
인간의 육신을 괴롭히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살육의 파티가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요즘 드라마는 청소년의 성매매,장기매매,마약,도박,토막살인,
부패한 공권력으로 인해 점점 더 의지할 곳이없어진 서민들의 불안감.
그리고 복수, 또 복수...
드라마고 영화고 피가 흘려넘치고, 그 피냄새가 나에게까지 흘러 온다.
하지만 무엇보다 날 괴롭히는 것이 학폭 드라마이다.
학폭 드라마외에도
'인간수업' 류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드라마들이 날 괴롭힌다.
'돼지의 왕'은 워낙 잘 만들어진 드라마였고,
그때만 해도 비교적 정상적인 상태였던지라
두 번 쯤 보았는데 이후로도 다시 보고 싶을 때가 있지만, 자신이 없다.
인간이 맞나 싶게 잔인한 학폭 가해자에 대한 분노와, 그에 못지 않게
당하고 있는 피해자에 대한 역겨움으로 내 정신이 황폐해지는 듯 하여 복습하기가 힘들다.
그러다보니 요즘엔 영화나 드라마와 점점 멀어진다.
예전엔 좋은 영화, 혹은 드라마가 내 영혼의 자양분이었다.
좋은 작품은 글을 쓰게 만들고, 리뷰를 쓰면서 감동을 되새긴다.
그런 작품들이 내 정서를 풍부하게 하고, 가을비 촉촉한 깊은 밤을 떠올리게 한다.
밤새워 드라마를 보고, 그에 대한 글을 쓰던 시절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젠 유명작품은 있지만, 좋은 작품은 없다.
그래서 끝까지 보기가 힘들다.
어쩌다 이를 악물고 끝까지 보고 난 이후엔 전에 안 하던 짓을 하게 되었다.
얼마 전, '몸값'이라는 드라마를 본 이후엔
난데없이 2000년 대 초반 드라마인
'내사랑 누굴까'라는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것도 장장 84부작이나 되는 것을
모조리 보았고, 피폐해진 내 영혼을 순화시켜주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후로
'약한 영웅'을 보고 난 후엔
'여름향기'라는 쌍팔년도 감성이 충만한 드라마를
흥미롭게 보기까지 했다.
볼 때마다 짜증나게 지루한 드라마였지만
'약한 영웅'보다는 이쪽이 주는 짜증이 훨씬 견디기 쉽다.
이쪽은 어떻든 눈이 즐겁거나, 화면이 아름답긴 하니까.
뿐이랴, 주인공들의 리즈 시절의 미모 감상만 해도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폭력이 난무하는 드라마를 사실 난 좋아하는 편이었다.
영화도 느와르나 복수극, 미스테리, 형사물 등등이 내 취향이다.
하지만 요즘의 내 정서는 그것들을 소화하기 힘들어졌다.
왜냐면 수위가 점점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김수현 작가가 늙으면서, 건전하면서도 구태의연하지만, 유머러스한 '홈 드라마'나
매우 극적인 멜로가 사라져버렸다.
김은숙 작가의 판타스틱하고 경박한 드라마틱이 넘쳐흐르는 드라마가 그리울 정도이다.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드라마가 그립다.
또한 한때 넘쳐 흐르던 멋진 영화들이 그립다.
'달콤한 인생' '암살' '밀정' '베를린' 같은 영화도,
혹은'공공의 적'이니 '감시자들'이니 '베테랑'이니그런 명작들이 그립다.
그토록 경원시했던 우리나라 특유의 진부한 멜로 감성이 충만한 옛드라마들도 그립다.
지금 이 시대는 이미 내가 주인공이 아니다.
난 지난 시대의 인물이다.
아마 지금 난무하는 저런 류의 드라마들은
지금 한참 문화를 소비하는 세대가 즐겨보는 것일 것이다.
그들은 어떤 느낌으로 그런 문화를 소모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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