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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놀로그/작품과 인물

드라마 '라이프'에서의 '사랑'이라는 의미

by 모놀로그 2022. 11. 13.

 

엄마가 버린 아이가 병원 복도에 쪼그리고 앉아서 엄마를 찾고 있다.

노을 선생에 이끌려 병동을 둘러보던(그다지 마음 내켜 보이진 않지만)

구승효는 아이 앞에 서서 한참을 내려다본다.

 

그 장면은 노을 선생이 의도한대로,

소아외과의 작고 병든 생명들이 힘겹게 생명을 이어가는 것보다

구승효가 미처 상상하지 못한 험한 광경,비참의 극치였다.

 

그게 16부 작인 라이프에서도 중반으로 넘어서기 직전 즈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뒤늦게 나오는데,

내 기억으론 5회 혹은 6회쯤이 아닐까 싶다.

 

노을 선생은 병원과 병원 집단의 패쇄성과 시스템에 갇혀서 

'우린 다르죠. 우리가 그들과 같나요?' 따위의 말로 선민의식을 태연하게 입에 올리면서도,

비도덕적인 일들을 저지르고도  죽어도 자신들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으며

자아 성찰 기능이

아예 마비되다시피 한 이상한 집단에 대한 회의감이 깊은 젊은 의사라는 점이다.

 

그래서 차라리 의료인 출신이 아닌, 신임 사장, 그것도 아직 젊어서 이른바 꼰대 기질이 병원의

과장들만큼 철옹성은 아닐지도 모를 사장에게 일말의 기대를 걸고,

가장 감성적인 접근이 쉬운 아기 환자들에게 인도한 것 같다.

 

노을 선생은 구승효에 대해선 아는 바가 전혀 없다.

 

충실한 기업인으로 살아온 구승효가 자신이 신봉하는 자본주의 논리를, 

사명감이니 히포크라테스 선서니 하는 휴머니즘으로 치장하며 의사들의 아픈 데를 찔렀을 뿐인

그럴 싸 한 말에 '이 사람이라면 병원의 병폐를 개혁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 것에 불과하다.

 

구승효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의 사장직을 맡을만큼 유능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진 그야말로 기업의, 혹은 오너 집안의 개가 되다시피,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면서

그들의 충실한 행동대장으로 맹활약을 했기에 가능한, 이른바 사회배려자 출신이다.

그런 배경은, 오히려 노을 선생에겐 불리한 조건이었다.

구승효의 나이와 지위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요, 금수저 중의 금수저로 보이기 십상이지만,

사실 그는 머슴처럼 일해야만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매시간, 매초를 긴박한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 사람이다.

 

나이 지긋한 사장단의 은근한 무시와 자신의 능력을 필요로 하긴 하지만

선대 회장이 발탁했다는 이유로 백프로 신뢰는 하지 않으면서도

그 능력은 마지못해 인정하여, 그야말로 단물만 빨아먹다 내버릴 궁리를 하고 있는

현 회장이 그가 진정 싸워서 이겨야 할 거대한 적이 되버린 위태로운 상황에서 숨가쁘게 노력하고 머리를 쥐어짜며

버티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배경의 구승효에게, 진심에서 우러나는 휴머니즘과 개혁을 기대할 수 없다.

전장터에서 죽느냐 사느냐하는 병사에게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설교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엄마를 찾는 버려진 아이의 필사적인 눈빛은 그날, 구승효를 움직였다.

그는 자동차 안에서조차 늘 들여다보고 있는 노트북이 아닌,

나란히 달리는 옆 차량에서 입을 벌리고 잠든 아이를 보고 미소 짓는다.

 

덕분에 우린 그때까지 일하는 기계같던 구승효의 사생활을 살짝 구경할 수가 있었다.

그는 이른바 소년 가장이었다.

장학금으로 공부했고,

그러면서도 생계를 책임져 왔을 것이며

겨우 집안을 일으켰을 것이다.

아직은 젊으니

이제 겨우 기반을 닦아서  중산층에 막 진입한 정도로 보인다.

 

엄마가 버린 아픈 아이는 구승효로 하여금 엄마 옆에 눕게 만들었다.

아마도, 노을 선생의 역할은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인간을 변화시키기 위해선 그 인간의 틀을 깨고 시선을 다른 세상으로 돌리게 하고,

세상과 조우하며 지금까지완 다른 관계를 만들게 해야 한다.

이건 비밀의 숲의 황시목과 비슷하다.

 

황시목이 자신의 치명적 결함 때문에 인간 관계없이 오로지 자신의 성에서만 살고 있듯이

구승효는 어린 나이부터 망한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친구도 연애도 청춘도 없는 각박한 삶을 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그의 비서들이,  '생전 처음으로 관심을 끄는 여자'를 만난 듯 해서 자진해서 도우려고 나섰을까?

 

그는 걸어다니는 '비지니스' 그 자체이다.

자신의 위태한 지위를 잘 알고 있기에,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선 남들보다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하는 것,

타고난 머리만 가지곤 부족하다는 걸 알기에

그에게 사랑이니 여자니 청춘이니 젊음이니 하는 건 관심 밖이었을 것이다.

감성도 황시목 못지 않게 마비되어 있었을 것이고,

인간 관계는 오로지 비지니스와 관련된 인간들 뿐이었을 것이다.

회사에 이득을 주고, 그리하여 그 이득으로 자신의 지위를 돈독하게 만드는 것이

그가 추구하는 전부이다. 더구나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모가지를 날릴 준비를 하고 있는 회장의 속셈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노을 선생이 뭔가 있어 보이는 구승효의 제스쳐에 넘어간 것도 무리는 아니다.

구 사장이 과연 의료진들이 떠들어대는 장사꾼인가,

아니면 보여지는 대로 자신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병원을 조금이라도 개혁해 줄 수 있는 사람인가를 탐색하려는

당돌한 대쉬로 시작한다.

 

그럼, 노을 선생은 어떤 사람일까?

하다 못해, 우리 엄마까지 노을 선생이 처음부터 사장에게 꼬리를 친다는 둥, 반감을 품는 것이

당시의 반응과 비슷해서 놀랐다.

 

노을 선생은, 30을 넘긴 여의사로,대학 병원에서 계속 근무를 하고 있는데,

전문의인지, 펠로우인지 그 지위가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대개 대학병원이 배경이면,전문의를 따고도 대학병원에 남으면 펠로우가 되서

교수 티오가 나길 기다리는 것으로 드라마상에서

흔히 그려지는데,

라이프에선 선우선생이나 노을 선생이나 직책이 불가사의이다.

게다가 응급 의학과나 소아외과나 개원하기 힘들다고(드라마에서) 탄식하고 있다.(그럴리가?)

 

선우 선생은, 젊은 꼰대라고 불려도 좋을만큼 결벽증이 심한 타입에다

개인적으로 불행한 가정사로 인해 까칠하다 못해

편벽하기 그지없으면서도, 한편으론 그런 결벽증이 이상적인 인간상을 추구하게끔 만든다면,

 

노을 선생은 비교적 합리적이고 융통성 있는 사고의 소유자이다.

 

하다못해 지방으로 내려가라는 사장의 명령에 뒤집어진 병원에서

유일하게 그 명령에 반감을 느끼지 않는다.

수도권에 치우치다못해, 버려진 지방 의료현실에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기까지 하는 양심 정도는 지닌 의사이다.

하지만

'아무리 장사꾼이라고 해도!' 라는 말로 구승효를 공격하는 걸 보면, 역시나 선민의식이  잠재된 것 같기도 하고...

 

암튼, 그 여자는 흔히 말하는 핵인싸이다.

누구에게나 웃어주고, 누구에게나 친절하며, 늘 명랑하고 불평불만이 없어 보이는

쾌활함과 다정함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대체 '사장'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일을 병원을 위해 해 줄 수 있는가를

알아내고 싶어서 접근하긴 하지만, 사심이라곤 전혀 없었다고 난 생각한다.

그럴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이 매우 당돌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래서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사장실 앞에서 오랫동안 망설이는 것이 그 증거이다.

행동적이고 거침없는 노을 선생의 성격 상 그 정도면 꽤 긴장한 것이다.

설사 어쩌다 마주쳐서 지나치다 싶게 친근하게 굴어도, 

그건 그 여자가 대개의 병원 사람을 대하는 핵인싸다운 태도의 연장선상으로 봐야할 것이다.

 

내가 보기에 사심이 있었던 것은 오히려 구승효이다.

 

그는 노을 선생과 두 어번 마주치고, 대화를 나눠본 뒤에

은근히 그 여자에 대하여 알고 싶어하고,

어쩌다 선우선생과 함께 있는 것을 보면 그들 사이를 캐면서

살짝 질투까지 한다.

 

그는 캐쉬박스를 찾던 중,

보험이 전혀 안되서 천문한 적인 현금을 끌어모을 수 있는

동물병원을 세우고자 하는 계획을 세우고

유기견 센터로 자원봉사를 가는데,

줄곧 선우선생과 노을선생이 어울려서 웃고 떠드는 광경을 의식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하다못해 병든 강아지를 입양하자 곧바로 이름을 '저녁이'라고 지을 정도로

일찌감치 노을 선생을 맘에 두고 있었다.

 

따라서 두 사람의 썸타는 과정에서 노을 선생이 욕먹을 이유도 없고,

라이프라는 드라마에서 썸타는 과정이 나왔다 해서

비난받을 이유도 없다.

 

둘 다 젊은 사람들이고, 잦은 마주침과 거침없는 대화끝에

그것이 썸의 단계를 넘어서는

몇 개의 사건과 오해,

결국엔 결별이라는 과정을 거치며 그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깨닫지만

그것이 작품에 어떤 데미지를 입혔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단조로운 기업과 병원 간의 알력 싸움 사이에서

구승효라는 인물이 차츰 다른 세계를 알아가면서 조금은 변화할 계기를 만들기 위한

중요한 장치라고 보여진다.

마치 황시목이 특임 검사가 되면서 팀을 만들고 새로운 인간 관계를 통해서다양한 체험을 하면서 성장하듯 말이다.

 

 

그는 여전히 충실한 기업인이기를 포기하지 않지만,

동시에 의사들도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된다.

그것이 오히려 양쪽 모두에게 오해를 사게 되고,그야말로 사면초가가 되지만 자신의 페이스를 잃지는 않는다.

여전히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고,

기업의 회장이 자신을 찾게 만든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사랑` 혹은 `연애감정'으로 인해 중심 인물들이 작품의 메시지를 훼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선우선생의 연애담도 비슷하다.

트라우마로 인해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며 괴팍하고 까칠하기만 했고,

동생에 대한 아픔,엄마에 대한 아픔. 등등에 정신이 피폐할대로 피폐해져가던 그를 구원하기에

여인의 사랑, 혹은 여인을 사랑하는 것만큼 적절한 치료법은 없다.

 

'이 세상에 사랑이 없다면 인생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말이 있다.

 

내겐 잊을 수 없는 진부한 듯, 강렬한 한 줄의 명문이다. 

로코나 멜로가 아닌, 장르 드라마에서

'사랑'이라는 장치는 대개는 그 자체가 중요하기 보단 그 사랑이 주인공들에게 주는 변화이다.

사랑이 없는 치열함은 공허하고 인간을 소모시킨다.

 

사랑은 그렇게 소모적인, 맹목적인 삶을 살아가던 그들에게

숨을 쉴 시간을 주면서 자신의 주변을 새삼 둘러면서,

그동안 놓치고 있던 많은 것을 발견하게 만들어주고,

또한 자신에게도 관심을 갖게 만드는 다시 없는 선물이요, 기회이다.

 

결론적으로 라이프의 '사랑'이야기는 전혀 비난받을 이유가 없고 쌩뚱맞지도 않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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