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본문
이 영화는 굉장히 오래 전 작품이다.
88년作 인가?
당연히 당시엔 못봤고,
한참 후에 비됴로 봤다.
최근에 문득 생각나서 영상으로도 다운받아 다시 보았었다.
이 영화는
아비정전과 더불어
내가 지금까지 나의 명작으로 꼽는 영화이다.
그리고 한때 비됴로 소장했던 영화이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선
내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영화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만약 지금 처음 봤다면 또 다를지도 모르겠다.
영화나 기타 작품도 나랑 코드가 맞는 시절이 있다.
아마 내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당시가
그런 때였나보다.
일종의 과도기적인 시절 말이다.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우선
영상이 매우 깔끔하다.
아주 짧은 단편 소설 한편 읽은 것 같기도 하고,
연극을 본 것 같기도 하다.
어떻든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보단
위의 느낌이 더 강하다.
특히
등장인물도 몇 안되서
꼭 필요한 인물 외엔
거의 나오지 않는것도
많은 장면이 주로 등장인물들의 기나긴 대화로,
그것도 일대일의 대화로
이루어지는 것도
매우 연극적인 느낌을 준다.
적어도 다른 영화와 차별화되는 점이다.
대사는 간결하고도
대단히 함축적이면서,동시에 노골적이다.
제목과는 다르게
정말 솔직한 영화라고나 할까?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리고 작품에서 높이 사는 것,
구태의연하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새롭다.
물론
등장 인물들은 그렇게 새롭지 않다.
그러나
단 한 사람,
그레이엄(제임스 스페이더)란 인물에 의해서
이 영화는
일찌기 없었던 새로운 영화로 재탄생한다.
아마 그건 그레이엄이란 인물이
워낙에 새로운 타입의,
정말 난데없는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난 이 영화의 줄거리를 늘어놓을 생각은 없다.
이 영화에서 줄거리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이 영화가 날 사로잡은 것이
줄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거의 줄거리라고 할 만한 것도 없다.
영화는 그렇게 극적이거나 자극적이지도 않다.
매우 잔잔하고 조용하고
그러나
내면엔
온갖 거짓과 불륜과 불신이
가득하고
그것들을 까발기는 그레이엄이란 존재,
그러나
그 그레이엄조차
강박증 환자이며,
섹스에 관한 내밀한 인터뷰를 해서
그것을 보며
자신의 성적인 만족을 해소하는
결코 정상적인 인물이 아니다.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강박증에 시달리던 앤이
남편과 동생의 불륜 사실을 알고
그레이엄을 찾아가서
인터뷰를 자청하고,
그래서 인터뷰를 하다가
갑자기
카메라를 빼앗아
그것을 오히려 그레이엄에게 들이대며
인터뷰의 대상이 바뀌는 장면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 인터뷰를 통해서
두 사람 모두 치유되는 과정,
그리고
두 사람을 치유하는 것이
결국은 강박증을 해소하고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는 그것,
바로 가장 정상적인 사랑의 행위
거짓이 전혀 없는 그 행위라는 것,
비가 올 것 같다는 마지막 앤의 멘트가 생각난다.
제임스 스페이더는
이 영화에서
정말 매력적이었고,
또한 비극적이었는데,
굉장히 초탈한 그 비극성이
오히려 담담하고 깔끔해서
그의 비정상적인 생활과
묘한 하모니를 이루며
멋진 인물을 만들어낸다.
이 작품은 스티브 소더버그의 데뷔작이었는데,
후속작으로 카프카를 내놓는다.
이후로 그가 만든 다른 작품은
보진 못했고, 그의 소식도 별로 접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작품은
칸느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듯 하다.
올해도 그랑프리를 놓고 경합을 벌였다는 소식을 얼핏 들은 듯 하니...
좋은 감독이 여전히 열심히 좋은 작품을 내놓고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가 어떤 작품을 만들 건
이 영화처럼
날 사로잡긴 힘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