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추격자 본문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보고 난 후에
내가 느낀 건
뭔지 모를 슬픔과 막막함이다.
전에 괴물을 봤을 때랑 그런 점에서 느낌이 비슷하다.
허허벌판에 홀로 서서
나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는
비정하고 삭막한 이 21세기의 사막 같은 세상에서
목이 터지게 뭔가 외쳐보지만
아무도 그것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갑자기 음소거가 된 듯한 티비처럼
나와 유리벽을 쌓은 세상.
내꼴은
온통 피투성이고
옷은 찢기고
폭력에 의해서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아무도
날 봐주지 않는다.
내 외침 소리에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바쁜 듯이
어딘가 열심히 가고 있다.
하지만 난 안다.
그들이 바쁜 척,
그래서 세상을 성공적으로 살고 있다는 얼굴로
어딘가를 향하고 있지만,
정작 그곳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그 무수한 발걸음들이 걷는 보도블록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좋은 구두에 좋은 옷차림으로 치장하고
한결같이 비슷해서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조차 힘들게
획일화되버린
수많은 인간들은
사람이 아니라 그냥
목상 같다.
그들이 그토록 바쁜 얼굴로 가는 그곳도
실은 그들의 안식처는 아니다.
그렇게 믿고 싶을 뿐.
추격자를 보는 내내 왜 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정작 영화 내용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생각의 단편들이 마구마구 머리 속을 떠도는 것이었다.
추격자는 다시 한번 나를
저런 광경들이 내게 주는
슬픔 속으로 밀어넣었던 모양이다.
나도 비겁하고, 갖가지 현실에 눈을 감고,
진실을 외면하며
웅크리고 앉아서
귀막고 눈감고 살고 있는
목상 같은 인간에 불과하다는
자괴감을 주기 때문이었을까?
영화는 재밌고 긴박하고 나를 끌어당겼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요소들을 많이 담고 있어서
흥미롭게 보았다.
뭔가에 몰두하고
새로운 것을 보고 싶어서
보기 시작했는데,
그러나 내가 원한 건
이런 리얼한 아픔이 아니라
낭만적인 꿈이었나보다.
난 막연하게 하정우 원톱의 영화라고 멋대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처음 보는 배우가 중심 인물이었다.
김윤석이라는 배우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멀어진지 오래라
내겐 낯선 이름이다.
그는
눈에 익은 설경구나 송강호, 같은 배우들의
익숙한 연기 동선을 내게 주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론
역시 그들의 연기동선을 되밟아 나간면서
자기식으로 재창조하고 있다.
그는 눈꼽만치도 허식이 없고, 낭만적이지 않다.
그는 내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상하고 낯선 세계로 데려가서
이것저것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을 보여준다.
난 저 유명한 배우들이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을 때,
온몸을 던져 연기하던 순수한 열정을
김윤석이란 배우에게서 보았다.
그의 연기는 순수했다.
그의 얼굴에서 난 설경구도 보고 송강호도 보고 최민식도 본다.
그들 세 사람을 모두 버무려서
그러나 이젠 신선하지 않은 그들을
다시금 진흙으로 빚어 새로 만들어서
배우의 혼을 불어넣은 것 같다.
스릴러 액션이라는 장르라고 하지만,
실제로 잔인하고 쫓고 쫓기며
치고박고
피가 낭자하게 튀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인간들이 가득하지만
난 긴박함을 느끼진 못했다.
그저 아프고 슬프고 허탈했다.
마지막 장면의 엄중호가 바라본
빛바랜 도시의 밤풍경처럼...
한 가지 놀란 건
이 영화의 감독이 신인이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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