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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와 달콤한 인생-느와르-

모놀로그 2010. 5. 13. 22:42

개인적으로 느와르라는 장르를 좋아하는 편이다.

한때 즐겨봤던 홍콩 느와르보다는
그래도 조심스레 시도해본
몇 안되는 한국의 느와르가 한수 위가 아닌가 생각한다.


홍콩 느와르는
영웅본색이라는 작품이 히트를 치면서
도대체 왜 그러는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아마도 그네들의 바닥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서도,

작품을 미친듯이 양산해내면서
그 질을 떨어뜨렸고 마침내 내리막길을 걸었다.

아마 느와르를 찍으면서 그들 나름의 느와르적인
뭔가가 또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본 두편의 느와르는
달콤한 인생과
야수이다.

야수를 보고 난 후의 느낌은 달콤한 인생과는 참 다르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나 호감도,
감독의 연출기법이 상반된 점,
메시지의 상이도에서

그런 것이겠지만,

야수를 보고나면
달콤한 인생이 얼마나 서정적인 느와르였던가
새삼 깨닫게 된다.


난 느와르는
본질적으로
남자들의 멜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느와르 장르의 마지막 장면은
늘 남자들의 세계와 그들의 갈등과 애증을 다루고
그것을 총격전으로 마무리하며,
그 총격전 속에 모든 것을 버무려서
파국으로 치닫게 한다.
그것은 우정일수도, 미움일수도, 원망일수도 있으며
긍극적으로 남는 건 허무함이다.

모든 격렬한 진행 뒤에 남는 짙은 허무함과 무상함,
이또한 느와르의 최후에선 없어선 안될
주요한 요소이다.

그러고보면
달콤한 인생이나
야수나 충실하게 그 법칙을 따르고 있는 셈이다.

다른 점은
달콤한 인생이 좀더 개인적인 감정에 초점을 맞추고
남자들의 자존심 싸움이 일으킨 어마어마한 결과를
달콤씁쓸한 인생의 꿈과 절묘하게
연결시켰다면

야수는
보다 사회성을 띄고 있다.

열혈 검사와 형사가 대항하는 막강한 세력,
그것은 단순한 조폭이 아니라
그 조폭에 속아넘어가는 어리석은 사회, 언론,
그것들이 대변하는
우리가 사는 사회의 겉모습이 얼마나 허상인가
이 세상에 대채 진실이란 것이 있으며,
그것의 힘은 얼마나 허약한가 하는 절망감을 자아낸다.

그 속에서 싹트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남자의 우정..

형사의 무덤 앞에 놓인 라이타 하나로
검사의 심정을 나타낸 것은
훌륭한 연출이자
단순한 그 장면 하나로

결국
느와르가 남자들의 멜로라는 것을 더욱 강하게
입증한다.

마왕도 결국 느와르 계열이었으며
중심 인물은
오수와 승하이며,
그들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용서하며
죽어갈 때
그들이 서로에게 지닌 감정은
여자들과의 사랑과는 또다른 경지의,
끈끈한 이해와 동질감이었으며,
그러나
야릇한 슬픔과 관조를 동반한 느와르 특유의
허무하고 쓸쓸한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래서 느와르의 마지막은
언제나
카타르시스보단
슬픔과 허무함을 더 많이 동반하게 되는 것이다.

달콤한 인생엔
희수라는 매개체가,

마왕엔
해인이라는 빛의 여인이,
또한
야수에서도 권상우의 여자가

각각
어둠의 세계에 살고 있는 남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들의 절망적인 삶을 얼마쯤은 위로하고
빛이 되어주고 가끔은 휴석처도 되어주며
그들 남자는 그녀들을 사랑하지만,


그녀들에 대한 사랑은
그들의 아픔이나 절망적인 삶에서는 제3자요,
전혀 힘을 쓰지 못한다.

느와르는 남자들의 멜로이기 때문이다.
서로를 치유해줄 수 있는
혹은 서로의 삶을 끝장내버릴 수 있는 상대는
여자가 아니다.
그들의 상대는 남자인 것이다.


남자들의 멜로는
여자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그들만의 논리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논리를
논리가 아니고
감성도 아니며,
우리는 알 수 없는
남자들끼리만 이해할 수 있는
그들의 세상이며,
그것은
여자와의 사랑에는 없는,
가슴 저린 깊숙하고 아픈 여운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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