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영화 '사도' 본문
영화 사도를 한참 홍보할 때,
대체 사도세자를 소재로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게 가능한가?
의아했다.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
그래도 하나 건진 게 있다면,
21세기식 사고방식으론
죽었다깨도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를 이해하기 힘들겠구나
싶은 것이다.
왜냐면,
결국 아버지가 아들을 죽였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후엔 반드시 이렇게 나오기 마련이다.
'어떻게 아버지가 아들을, 그것도 한여름에 뒤주에 가두어 찜을 만들어 죽이지?'
그 가혹함에 다들 혀를 내두르고,
사도세자에겐 무한 동정을,
영조에겐 가혹한 평가를 내린다.
그러나
돌아서면
대체 어찌하여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지 못하여
드라마나 영화가 만들어지는 일이 되풀이된다.
하지만, 당파 싸움에 초점을 두던,
영조의 지나친 교육열에 초점을 두던
사도세자 스토리만큼
속터지는 소재도 달리 없을 것이다.
게다가
영화나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도
이상할 정도로 어떤 궤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너무 새롭게 재조명하면 역사왜곡이 되고,
있는 그대로 나열하면
다큐가 되버린다.
영화 사도에선,
아버지는 아들을 죽일 수 없을지 모르지만,
왕은 세자를 죽일 수 있다
라고 말하고 있다.
아니,
결국 왕세자 이선은 바로 왕세자였기에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에서 영조가 세자를 거느리고 종묘를 배알하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다.
'나의 부친이신 숙종대왕은 부인에게 사약을 내렸다.'
'사가에선 자식을 자애로 키운다. 하지만 왕가에선 자식을 원수처럼 여긴다했다.
무슨 뜻인지 니가 왕이 되면 알 것이다'
'난 이곳에 올 때마다 조상들의 피울음소리를 듣는다'
'이곳에는 형제와 조카까지 죽이고 종사를 지킨 임금도 계시다'
이 대사들이 결국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인 이유, 혹은 변명이 되겠다.
(물론, 이것은 영화 속의 영조와 사도세자일 뿐이다, 역사 속의 그들은 여전히 미궁이다)
조상들의 피울음 소리 운운하는 장면은
결국 영조 또한 그렇게 비정한 명분,
종사를 지키기 위해서!
라는 명분 하에
아들인 세자를 죽일 수 밖에 없게 될 것을
암시하는 듯 하다.
혹은 그 답이 되겠다.
단적으로,
왕세자 이선은,
무섭도록 치열하지 않으면
조선조의 강력한 신권을 장악하여
왕권을 지켜내야 하는,
왕의 고달픔에 병적으로 민감했던
영조가 보기에
전혀 왕재가 아니었다.
내가 한중록을 처음 읽은 것이
거의 20 여 년 전이다.
그때 아마 한중록이 막 번역되어 출판되었을 무렵이다.
최근에 정병설 교수가
완역본을 냈다는 기사를 읽었고,
인터뷰도 봤는데
적어도 이덕일씨의 사도세자 당쟁희생설보단
내가 공감하는 바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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