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별순검시즌2- 마음, 상처, 한의 이야기 그리고 이종혁 본문
별순검 시즌2는
20부작이며, 매회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별순검들이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수사극인 것은
시즌1과 비슷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12년 전에 벌어진 수수께끼 사건의 피해자로 고통받는
진무영과 한다경과, 그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수사관들이 곧 과거 범죄로 인한 피해자이며,
어린 시절이었던만큼 그것은 강렬한 트라우마가 되었고,
12년 후에 별순검이 된 그들이 자신들을 불행하게 만들었던 과거의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참으로 멋진 플롯이다.
그래서
매회마다 오프닝이
그 회에 벌어질 살인 사건보다는,
진무영이나 한다경의 과거 속 기억의 편린으로 시작하는 회가 많다.
그것이 워낙 단편적이고 갑톡튀하는 느낌이라
만일 한 회라도 놓친다면
곳곳에 지뢰처럼 섬세하게 깔린 복선을 이해하지 못하여
가장 중요한 극의 흐름,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별순검이 아닌,
인간 진무영과 한다경, 그리고 지대한 부부의
비극의 배경을 놓칠 염려가 있다.
마치 드라마 마왕에서 그러듯,
일회에 깔린 복선이
막회에 해결되는 치밀한 구성이 놀랍다.
그리고 별 것 아닌 듯 보이던
복선들이
마지막 순간에 정확히 제 자리를 찾아 들어가
한편의 처연한 그림을 만들어내는데,
그것이 내가 별순검 시즌2를 최고로 치는 이유이다.
물론,
그 와중에 조금 헐거워진 구성도 있고,
애매해진 캐릭터도 생겨나는 등
완벽하다고 볼 순 없지만
적어도 작가가
극을 구성함에 있어
애초에 작정하고 큰 틀을 짜놓았음을 알 수가 있는데,
그것이 새로운 시도인지라 신선하다.
그래서인가,
시즌1이 인간들의 이른바 오욕칠정으로 인한 범죄를 주로 다루고 있으며,
그래서 흥미롭고, 스케일도 크고, 다양한 반면
시즌2의 사건들엔 일정한 틀이 있다.
그것은 상처이다.
아픈 마음이다.
그리고 그리움이다.
그 대상은 가족이다.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의 본질에 대한,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다.
그리고
긍극적으론 그 모든 것에 대한 恨이다.
그래서 시즌2의 사건들은 무척 아프다.
묘하게 살해당한 자들보다,
살해한 사람들이 더 아픈 경우가 많다.
시즌1에 비해서 스케일은 크지 않지만,
그만큼 치밀하게, 처연하게
인간들의 상처를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어서
분위기가 어둡고, 서글프고, 때론 무척 아프기까지 하다.
그것이 내가 시즌2를 최고라고 생각하는 또다른 중요한 이유이다.
진무영 경무관을 비롯한 별순검들의 한과,
매회마다 벌어지는 사건들 속 인물들의 한이
같은 방향으로 흐르며
그것들은
상처를 어거지로 참아낸 진무영이나,
아예 기억 밖으로 밀어낸 한다경을
조금씩 자신의 껍질을 깨고
상처를 빛 아래로 드러나게 만들어주며
진실, 그리고 기억 속으로
그들을 이끌어
그것들과 정면대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것들의 끝에는
긍극적으로 시대의 아픔이 있다.
을미사변이 막 일어난 직후부터,
을미사변이 벌어지고 난 이후의 후유증이
시대적 배경을 이루고 있는 별순검 시리즈이지만,
시즌2에선
그 을미사변이라는
처절한 사건으로 인한,
눈에 보이지 않는 희생자들,
역시가 기록하지 않은
그 사건의 파편에 스러진 인간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또한,
인간들이 제아무리 범죄를 범한들,
그 시대에
왜가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에게 범한
큰 범죄만한 것이 있을까?
하는 상념에 젖게 하며,
그럼에도
정말 커다란 범죄는
지금도 그렇듯
절대로 단죄할 수가 없다는
씁쓸함도 느끼게 한다.
별순검 시즌2의 주인공은,
다른 별순검 시리즈와는 달리
경무관 진무영과
여순검 한다경이다.
단순히 사건을 해결하는 별순검이 아니라,
그 어떤 피해자보다 큰 상처를 입은 인물들인 탓이다.
또한 진무영과 한다경의 인연,
그 인연으로 어쩌면 서로가 구원받았을지도 모를
멜로가 은은하게 깔려 있다.
진무영은,
아버지였던 종사관이 12년 전의 사건의 여파로 인해
자결하는 모습을 목격해야했고,
한다경은
역시 12년 전,
불과 8세의 나이에
일가족이 몰살 당하는 것을,
특히 어머니가 학살당하는 광경을 지켜봐야했던 인물들이다.
16세의 진무영은,
다정다감하고 배려심이 많으며
사려깊은 소년이었다.
그러나 그 사건 이후로,
여린 마음이 받은 깊은 상처는
차가운 거부감으로 세상과의 사이에 담을 쌓고
그 안에 틀어박히는 것으로 꽁꽁 싸매려한다.
하지만 천성이 어디 가겠는가!
이후에
한다경에게 가끔씩 보여주는 배려는,
그의 본성이 한다경에게만은
조금씩 새어나오는 것 같다.
시즌1에선,
경무관과
팀원들이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상태에서
우리를 만났다면
시즌2는
새롭게 별순검이 만들어지면서
경무관 진무영이 부임하고,
그 아래로 별순검들이 하나 둘 모이는 형식이다.
시즌1의 강승조 경무관이 바위처럼 묵직하고 든든하며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리더쉽으로
팀을 이끌었다면,
새로운 경무관 진무영은
단검처럼 날카롭고 예리하지만
차갑고 포용력이라곤 없다.
그 밑으로 모여든 한다경과 지대한, 그리고 선우현 등등이
팀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다.
차갑기만하던 진무영이
차츰 부하들과 어울려가며
서투르게나마 한 마디씩 나누기 시작하는 것으로
외부와 소통을 시작하는 등,
일종의 인간 드라마가
다른 한편에서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는 즐거움도 상당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진무영과 한다경 사이의 미묘한 분위기는
상당히 매혹적이다.
하지만,
시대에 맞게
절제가 잘 되어 있어
결코 도를 넘지 않음에도
또한 절절하게 서로에 대한 마음이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도 애틋하다.
내가 제일 감탄한 부분은,
별순검 시즌2의 1부이다.
그 1부는
진무영과 한다경을 에워싼 수수께끼 범죄의 유일한 증인이라고 해도 좋을
김진규라는 인물의 등장과, 돌연한 죽음으로 끝나는데,
지나고 보니
1부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
다시 말해서
그 살인 사건은 김진규가 진무영에게 목숨을 걸고 제시한 단서였던 것이다.
그 사실은 시즌2의 막회를 보고 나서야 확실하게 알게 되는데,
나로선 그런 구성이 여간 맘에 드는 게 아니었다.
특히,
김진규과 마지막으로 본
한다경의 눈빛을 보고 놀랐던 점과,
'오랜만이었다. 진무영'
이 한 마디에 얽힌 의문이
마지막회에 풀리는 것도 멋있었다.
진무영역의 이종혁에 대해서 말해보자.
이종혁은 내가 영화에서 두번 정도 본 것이 전부지만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독수리를 연상시키는 부리부리한 눈과 콧날, 그리고 외모와 표정들이
어딘지 모르게 살벌하면서도
육감적이고 남성적이라
내가 괜찮게 생각하는 배우 중 하나이다.
시즌2를 보기로 결심한 것도
경무관역이 이종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드라마로 본 이종혁은
내가 기대한 이상이다.
아니
그토록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가,
바로 그러한 자신의 개성을 최대한 발휘하여
한결곁이 무표정하고 차가우며 언제 어디서나 혼자인 듯,
동떨어진 분위기에 시리디 시린 어둠을 그림자처럼 드리운
진무영역에 너무나 잘 어울려서 감탄했다고 하는 게 맞겠다.
또한 무관 복장이
너무 잘 어울린다.
그 또한 남자답게 생겼지만
어딘지 서늘하고 살벌한 이미지에 잘 맞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별순검 시즌2에서 건진 건,
웬지 서러운 사람들의 상처와, 그리움으로 인한 깊은 한의 정서와,
이종혁이라는 배우의 기막히게 매력적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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