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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순검(2)-인간의 피, 그리고 별순검의 검률들 본문
별순검을 보면서 난 인간이라는 것에 대해서 새삼 전율을 느낀다.
예컨대,
피라는 것 말이다.
인간이라는 것이, 아니 생명 중에서도 인간의 생명이라는 것이
얼마나 요사스러운 가, 혹은
얼마나 집요한 가를 절감하며 보았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일찌기,
인간이 세상에 한번 나오면
설사 죽음으로 존재가 더이상 눈에 보이지 않게 된다 한들,
실제론 절대로 이 세상을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란 적이 있다.
땅에 묻어도, 화장을 해도
그것은 그저 형태만 바뀔 뿐
실제론 여전히 세상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뭐, 그건 비단 인간뿐 아니라
생명이라는 것을 지니고
이 지구상에 나타난 존재엔 모두 해당되는 것이지만,
다른 동식물에겐 없는 처연함이
인간의 생명엔 분명히 있다.
별순검에선 사건을 조사할 때
주로 핏자욱을 찾는다.
인간의 피는,
(다른 동물의 피는 모르겠지만)
물로 아무리 씻어내도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강제로, 혹은 폭력에 의해
흘렀을 때
마치 죽음을 당한 인간의 영혼처럼
으시시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별순검에선 그것을 '고초반응'이라고 한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이기도 하지만,
고초반응으로
범인들의 몸에서 자기가 흘리게 한 피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난 몸서리를 친다.
인간은 정말 신기한 존재이다.
동식물이 깨끗하게 세상에서 사라질 수 있고,
추한 모습으로 늙지 않는 이유가
혹시 영혼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의 피가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다는 건
대체 무슨 의미일까?
정말 영혼이 있기 때문일까?
어찌하여
인간은 죽어서까지 그토록 집요한가?
수명을 다하지 못하거나
폭력에 의해 생명을 뺴앗긴 경우엔
그 사무치는 원한을
씻겨지지 않는 핏자욱으로
호소하는 것 같다.
그만큼
삶에 대한 집착이, 자신의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주장이
강한 것이
인간이다.
그리하여,
내가 별순검을 보면서
제일 좋아한 사람들이
바로 검률들이다.
시리즈마다 검률을 담당한 배우들으 바뀌지만,
별순검에서의 검률들은
이른바 검시관들이 주는
저 물인정하고 사무적이며 으례적이며 타성적인 싸늘함이 없다.
오히려
가장 인간적이다.
상투를 틀고 안경을 쓴 채로
시신을 쓰다듬다가, 책을 들여다보다가 갸우뚱해보다가
하던 시즌1의 검률이나,
기생출신의 여성이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선보인
시즌 2의 검률,
그녀는 하다못해 시신의 토사물까지 맛볼 정도이고,
배가 갈리진 시신을 해부학책을 들여다보며
연구할 정도로 학구열은 대단하지만,
역시 시신을 살아 있는 인격체를 대하듯
정답다.
시즌 3의 검률은
앞선 검률과는 조금 다르다.
그는 휴머니즘보단 수수께끼 풀이에 더 관심이 많은
일종의 천재이다.
그럼에도 역시 매우 인간적이고
학자같은 풍모를 풍긴다.
이 세명의 검률들은
음습할 수도 있는,
너덜너덜해진 시신들이 난무하는
별순검의 시체실을
밝게 덥혀주고,
나아가 별순검이라는 드라마에 면면히 흐르는 휴머니즘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별순검을 통해 본
시신들은,
단지 더이상 말을 할 수 없게 된,
그러나 강제로 중단된 자신의 생명을 붙잡고 놓지 않는
어엿한 존재이다.
그들은
자신을 무서워하거나
섬뜩해하거나
그저 물체로만 대하지 않는
검률들에게
뭔가 하소연하고 있다.
그리고
검률들은
단지 시신의 훼손을 연구할 뿐 아니라
그들과 끝없는 대화를 통해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억울함과 한스러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별순검이 다른 수사드라마와
차별화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런 검률들이 아닐까?
그들은 단순한 검시관이 아니라
수사관이다.
단지 증거를 수집하고 탐문하는
수사관이 아니라
검시실에서
시체와 얼굴을 맞대고
그 굳어버린 서글픈 얼굴이 들려주는
말 아닌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다정한 수사관인 것이다.
내겐,
그러한 검률들이
가장 매력적으로 보였고,
드라마를 벗어나
나 또한 그들이 뿜어내는
따스함에 기대고 싶어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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