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태왕사신기(2)-정복이 아니라 멜로였던 이유 본문
내가
지금 이 시점이 아닌,
즉 태왕사신기가 처음 방송된 2007년이나, 그 즈음에
봤다면
맘껏 씹어줄 요소가 넘치도록 많은 작품이지만,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최근에 본 것이 나에겐 이 작품이 참 대단해보인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드라마는 퇴화를 거듭하다못해
쌍팔년도 드라마가 명작으로 보일 정도이다.
출생의 비밀에, 불치병에, 고부간의 갈등에, 덧붙여 마마보이에,
불행한 여자 앞에 반드시 나타나는 재벌급 구원의 왕자,
거기에 무시무시한 복수극이 판을 치는데,
주인공과 작가와 제목만 다를 뿐
내용은 거의 비슷비슷하다.
그게 아니고
조금 다른 소재다 싶으면
이번엔 배우들이 거슬린다.
이거야 원
아이돌 출신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도무지가 민망해서 봐줄 수가 없다.
그러니
태왕사신기쯤 되면
내겐 고전으로 보일 정도이다.
우선 배용준이라는 거물급 스타가 나온다.
요즘엔 이만한 거물급 스타를 티비에서 볼 수가 없다.
연기를 잘 하건, 못 하건, 상관없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주인공을 멋있게 보이기 위해서
다른 건 모조리 희생시켜도 좋다.
배용준이 멋지다곤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내 눈에
배용준이 황홀하게 근사하게 보이는 이유는
지금이 2007년이 아니라
2013년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스타부재의 시대요, 배우부재의 시대이다.
물론 영화판에선 연기 잘한다는 배우 몇명이
작품이란 작품은 모조리 휩쓸고 있다시피 한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화판이고,
난 그들이 나오는 영화도 이젠 지겹다.
눈이 즐겁고,
묵직하며 스타라는 느낌이 팍팍 오는 배용준 같은 배우를
이제 티비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날이 다시 올까?
20대 아이돌 가수 출신들이 인기를 등에 업고
시시껍쩍하다못해 만화같은 드라마를 휩쓸고 있는 걸 보면
문득 옥탑방의 고양이가 생각난다.
그 드라마도 만만치 않은 트렌디 드라마였지만,
그래도 김래원은
배우로서 얼마나 매력적이었던가!
이젠 눈이 즐거운 드라마도,
심취해서 뭔가를 마구 쓰고 싶어지는 드라마도,
가슴을 설레게하는 배우나 캐릭터도
더는 기대할 수가 없는 시대가 된 건가??
암튼,
그리하여
태왕사신기를 생각하면
비록 작품이 도무지가 양에 차지 않는다해도
요즘 드라마에 비하면
엄청 묵직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태왕사신기는,
엄밀하게 태왕주작기라고 난 생각한다.
태왕사신기라는 제목이 얼핏,
태왕과 사신이 힙을 합하여
태왕하면 연상되는 스펙터클한 전쟁을 승승장구하는 내용을 연상케해준다...고
사람들이 생각했다면
참 오산이다.
프롤로그에서 긍극적으로 보여준
환웅과 두 여인의 삼각관계와,
그로 인해 벌어진 엄청난 참사(?)가
그 이유이다.
제목이 비록 사신기라지만,
실제론 주작기라고 해도 무방하며,
주작은 두명이며
둘 다 여인이고,
무엇보다
배용준이라는 스타가 캐스팅되었다는 것이
담덕을 둘러싼 삼각 멜로라는 건
안봐도 자명하지 않은가!
가끔 제작진과 지켜보는 시청자 사이에
메워질 수 없는 갭이 너무 커서
안타까운 작품이 있는데
태사기 같은 경우는 극단적인 경우라고 하겠다.
그럴 경우
관객은 제작진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강요하고,
그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경끼들린 아기들처럼 난리를 친다.
어쨌거나,
선덕여왕 이전에,
그토록 대중적인 관심을 받으며
배용준이니, 문소리니 하는 거물 배우들에
이지아라는 눈이 즐거운 신인까지 가세한
대작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 시점에서
난 태사기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이다.
그건 아마도 향수탓인가보다.
좋은 시절에 대한 향수...
멋진 배우들, 혹은 스타들을 볼 수 있었던 시절에 대한 향수..
또한 태왕사신기가
순항을 하지 못하고
보는 사람들이 갈팡질팡할 정도로 헷갈렸던 이유도,
그 프롤로그가 좀 말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담덕까지 마지막까지 제 자리를 잡지 못하고
겉돌다가 흐지부지 되었다.
프롤로그는,
그러나 눈은 꽤 즐겁다.
나처럼 드라마를 본방 시에 보지 않고,
한참 후에 몰아서 본 사람에게 태왕사신기는 참 해석하기 난감한 작품이다.
본방 당시에 열심히 리뷰를 쓴 사람들은
막방을 보고 자신이 얼마나 열나게 삽질을 했는가
허탈해지지 않았을까?
태왕사신기는
단군설화에 윤회사상에 광개토태왕을 교묘하게 버무린
환타지 사극이다.
거기에 프로메테우스의 그리스 로마 신화까지 슬쩍 가미되었다.
그 역할을 담당한 것이 화천회의 대장로인가?
불을 슬쩍 훔친 죄로 수천년을 살아야하는 고통을 겪었다지 않는가!
그러나 1부에서 보여진, 태왕사신기의 프롤로그에 해당되는
환웅시대의 사연을 보자면
엄밀하게 태왕사신기가 아니라 태왕주작기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그런데
그 부분이 어찌나 엉성한지
이후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제대로 풀려갈 수가 없다.
내 귀에 맴도는 대사가 하나 있는데
담덕의 마지막 독백이다.
'인간은 누구나 잘못할 수 있어'
난 이것을 '환웅도 잘못할 수 있어'
로 바꾸고 싶다.
모든 사단은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자던 환웅에서 비롯되었으니 말이다.
불이란 놈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 덕분에 인류의 문화가 시작되었다고 할 정도이다.
그러니 불을 다룰 수 있었던 호족이
땅을 지배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호족이 불을 쓸 수 있다는 이유로
제아무리 횡포를 부린다한들,
환웅의 실수로 인해
인간 세상이 완전히 물에 잠기는
엄청난 짓거리야 했겠는가?
호족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이 지배하던 땅에 홀연히 나타나
왕노릇을 하는 환웅에게 머리를 숙이고 싶지 않을 것이다.
호족을 대표하는 불의 신녀 가진은,
그러나 환웅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이어서 불까지 빼앗기는데,
그 과정이 참으로 어처구니 없다.
마치
남자에게 홀딱 반한 여자가
간도 쓸개도 다 뺴주었더니
그걸 모조리 들고 날라서
엉뚱한 여자에게 가져다 바친 꼴이다.
따라서 내가 본 환웅은
제아무리 배용준이 부드럽고 온화한 미소를 띠고
우아하게 걸어다닌다 해도
찌질남이다.
불을 빼앗았으면
자기가 간수를 할 일이지
어찌하여
일개 인간인, 게다가 자신이 홀라당 반해버린 새오에게
준단 말인가!
것도 이쁜 목걸이로 만들어서 바치다니...ㅋㅋ
아무리 좋게 봐줘도 사심이 무지하게 들어간 걸로 보인단 말이다.
가진 입장에서 빡칠 노릇이 아닌가 말이다.
이토록 환웅시대의 스토리는
비주얼 상으로 썩 잘 어울리는 선남선녀인
환웅과 새오의 로맨스에 눈이 멀지 않는다면
말이 안되는 것이 한 두개가 아니다.
예를 들어,
환웅이 새오에게 꽂힌 이유 같은 것이 그러하다.
자신의 종족이 죽어가는 것에 눈물 짓는 것을 보고
마음이 가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그냥 새오가 젊고 이뻐서라고 하는 편이
훨씬 타당성이 있겠다.
가진에게서 빼앗은 불을 이쁘게 홍옥으로 포장해서
역시 나약한 인간일 뿐인 새오에게
날름 선물하고, 주작으로 임명하는
환웅은 얼마나 어이없는 존재란 말인가!
따라서
프롤로그의 주인공은
환웅과 새오가 아니라,
환웅과 가진이라고 봐야할 것이고,
그들의 갈등은
현세로 이어졌을 때
담덕과 기하의 멜로를 빙자하여
지속되는 것이다.
태왕사신기는
긍극적으로 환타지 멜로라고 봐야하며,
그 멜로의 중심은 새오가 아닌 가진이 되는 것이다.
담덕이 최후의 순간에
기하에게
'내가 잘못했어'
라고 사과하는 것도
엄밀하게는
두개의 천년을 거슬러 올라가
가진에게 잘못한 것을 사과하는 의미를 담아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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