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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2)-드라마적 재미와, 캐릭터, 배우들, 그리고 대사

모놀로그 2013. 2. 9. 08:27

 

드라마를 보고 뭔가를 쓰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게 한다면,

그것엔 수천가지의 이유가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도 내겐 그 드라마는 성공작이다.

성공작이라는 것은 완벽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기 때문에 뭔가를 쓰고 싶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아일랜드에 대해서 내가 뭔가 쓰고 싶었다면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우선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 재미있다는 것은 참 중요하다.

아무리 대단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수작이라해도

내가 재미를 느낄 수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건져낼 수 있는 캐릭터의 매력이나,

그들을 통한 메시지라는 것은,

사실상 그다지 대단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드라마가 지닌 큰 사명은 재미이다.

그런데,

아일랜드가 주는 재미는 좀 특별하다.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그 원인이 내게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일랜드는 내게 일정한 거리 이상으로 접근하기를 용납하지 않는다.

난 작가가 내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나,

캐릭터들의 사연이나

그들의 관계가 빚어내는 드라마에 몰입할 수가 없다.

몰입하기 힘든데 재미있다??

그리고 그게 아일랜드에 내가 느끼는 매력이다.

이것은 새로운 경험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인물들 모두가 매우 흥미로운데,

그중 누구에게도 몰입하거나, 공감하거나, 애정을 느끼지 못함에도

드라마가 재미있는 경우는 별로 없으니 말이다.

그게 내가 아일랜드에 대해서 뭔가 생각하게 만들고,

그 생각이 대체 뭔지 파헤쳐서 쓰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켰다면

난 일단은 만족하는 것이다.

 

둘째로,

내가 인작가의 다른 작품인 네멋보다 아일랜드를 선호하는 이유이다.

 

난 타고나길 냉소적 브로조아이기에

네멋같은 작품은 감성적으로 거부감을 느낀다.

유명한 작품 중에서 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안되는 작품이 있다면

그것이 네멋이다.

반면, 아일랜드는 어떻든 내가 거부감을 가지지 않을 뿐 아니라

흥미를 느낄 요소가 꽤 많다.

 

 말초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처연함을 난 견딜 수가 없다.

드라마 아일랜드에서

그런 역할을 담당한 시연같은 경우,

그리하여 내가 가장 회피하고 싶은 인물이지만,

그럼에도 내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최종적으로 그녀의 지랄타령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랄이라는 말은,

온갖 상황을 단숨에 정리해버리는 묘한 늬앙스를 지니고 있다.

그 안엔 체념과 순응과 반항과 짜증과 유머가 담겨있다.

 

시연이 처한 상황이 너무나 지랄스러움에도,

당사자가 순순히 그 지랄스러움을 매우 거칠게 지랄이라고 인정하는 순간,

난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처연한 상황이 주는 역겨움을 비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아일랜드는 그 지랄스러움이 매우 감각적이고 시적인

대사로 표현된다.

 

그토록 시적인 대사들이

매우 처연한 순간마다

처연함을 담당한 인물들의 입을 통해 쏟아질 때,

그것은 어쩌면 매우 오글거릴 수 있음에도

 

그 대사로 인해서

극중인물을 절제시킴과 동시에

지켜보는 나까지 어떤 종류의 지겨움에서 지켜주는 체험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아일랜드에서 느끼는 재미는

캐릭터보다는 그 캐릭터들이 가끔 읇조리는 '대사'들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아일랜드에서 느끼는 재미는

캐릭터보다는 배우들이다.

 

왜냐면,

긍극적으로 아일랜드는 캐릭터의 실패요,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유가

배우들의 성공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나영은,

내가 한국 여배우 중에선 보기 드문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평소 생각해왔지만,

막상 그 여자의 작품은 아일랜드가 첨이다.

 

그리고,

아일랜드에서 난 비로소 이나영이라는 여배우가

내가 생각한 것처럼 인형처럼 예쁘고, 우아한 백치미가 머리끝부터 발치까지 흘러내리는

고혹적인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상당히 컬트적이고 그로테스크하다.

그리고 거의 중성적이기까지하다.

매우 아름다움에도 여성적이지 않았다.

 

따라서 중아라는 역을

다른 배우가 하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지만,

이나영이 중아를 연기함으로써

아일랜드는 실패하고 만다.

왜냐면,

현빈이라는 복병을 만났기 때문이다.

 

 

 

난 아일랜드 방영시

현빈이라는 이름이 온통 도배된 것을 보았었다.

따라서 아일랜드는 현빈이 스타덤에 오른 작품이다.

 

그런데,

현빈이 담당한 강국은

아일랜드에서 가장 평면적이고 매력없는 캐릭터라고 나는 생각하기에,

단지 비주얼적으로 이나영과 가장 조화를 이루는

강렬한 외형적 조건으로 인해

작가가 그토록 말하고 싶어한

 

중아와 재복의 사랑 이야기에

공감하고 설득당한 시청자가 아마도 드물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난 개인적으로

재복이라는 캐릭터를 제일 좋아한다.

참 보기드문 캐릭터이다.

 

그리고 그 캐릭터를 연기한 김민준도

비주얼적인 면에선 남부럽지 않다.

그런데,

 

김민준은 자신의 비주얼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집중력과

배우로서의 에너지가 매우 부족하다.

그리하여

단순하고 굵직한 꽃미남 현빈에게

완전히 눌러

거의 보이지도 않는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해야하는 재복은

아마도 처음부터 외곽으로 밀려나지 않았을까?

 

나 역시 캐릭터 중에선 재복에게 가장 매력을 느끼면서도

뭔지 모르게 겉도는 느낌을 받기에

그와 중아의 사랑엔 도저히 몰입할 수도

설득될 수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강국과 중아의 관계에 남들처럼 푹 빠져서

커플놀이를 했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우선,

강국이라는 캐릭터의 평면성이

현빈이라는 배우의 매력도에 묻히면서

이도저도 아니게 된 것이

마땅치 않았다.

동시에

비주얼적으론 잘 어울리는 중아와 강국,

그리고 그들의 참으로 건조한 관계가

재복과의 사랑보단 훨씬 끌렸던 것도 사실이다.

 

동시에,

어찌하여 강국은 그토록 중아에게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내 눈엔 명확하게 보이는 그들의 관계의 한계가

강국에겐 끝내 인식되지 못함으로써

내겐 그가 아둔하게만 보이는 탓이다.

 

경호원 강국의 누군가를 지켜주고 싶어하는 강박관념과,

어떤 경우에도 외면적인 '멋있음'에 연연해하는 치기어림은

결코 중아에게 어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복과 중아의 관계가

극의 중심이었다고 난 생각하지만,

 

 

 

외면적으로 잘 어울리는

중아와 강국처럼,

역시 재복과 시연의 관계가

아일랜드에서 또다른 매력이다.

 

재복 또한 중아보단

시연과 함께 있을 떄

훨씬 돋보이고 캐릭터의 매력이 살아난다.

 

서로 사랑하는, 혹은 사랑하게 되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들보다,

 

서로 사랑하지 않는,

혹은 사랑할 수 없음에도

서로 연민하는 인물들의 관계가

매력적이었던 독특한 드라마 아일랜드..

 

워낙 오래 전 드라마인지라,

당시에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이 시점에서

나라는 인간이 본 아일랜드는

이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