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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비비안 리' (2)

모놀로그 2011. 12. 15. 12:12

내가 어릴 땐,

'주말의 명화'니 뭐니해서

티비에서 옛날 영화들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런 프로가 있는진 모르겠다.

웬만한 영화는 아주 고전이라 할지라도

쉽게 구할 수 있고, 볼 수 있는 요즈음에도

티비에서 주말에 영화를 보여줄까?

 

아무튼,

어린 시절엔 그 주말 명화가 내 최대의 관심사였고,

물론

지금은 세상에서 사라진 유명한 미녀 배우들,

물론 외국 여자배우들이지만

그 세계적인 미녀들을 보면서

어린 맘에 감탄하곤 했다.

 

하지만

비비안 리는 어린 마음에도 다른 여자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20세기 초반의 미녀들 중에서도

분위기가 독특하다.

 

그래서 내가 홀라당 반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금 보면

어릴 때 내가 느낀 것만큼 대단하게 보이진 않는다.

나도 이제 어린 소녀가 아니고,

시야가 그렇게 좁지도 않으며

무엇보다 외국 여배우들을 보는 시각이 좀 달라졌다.

 

한 마디로 식상해졌다고할까?

 

하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비비안 리를

이렇게 캡쳐해서 블로그에 올릴 수 있게 되고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코르셋을 조이는 장면은 내겐 신기했다.

외국 여자들이 어찌하여 드레스만 입으면 허리가 그토록 날씬한가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고나 할까??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재미 있었던 장면이다.

 

문제의 원유회에서 애슐리를 꼬시려고 잔뜩 벼르는 스칼렛의 이 모습은

정말 매력있다.

 

또한 이어지는 트웰브 오크스에서의 원유회는

이 영화에서나, 스칼렛 오하라의 인생의 중대한 변곡점이 되는 장면이라

긴 시간을 할애하는데,

 

말하자면

정점에 이른 남부 문화가 붕괴를 앞두고 벌이는 성찬 같다.

 

스칼렛 오하라의 인생도

남부의 붕괴의 궤도에 휘말리게 된다.

 

허영심 강하고 무엇하나 부러울 것 없는

남부의 귀부인으로서,

사교계의 꽃으로서,

청춘의 특권을 마구 향유하던 한 시절이

남부와 함께 그 운명을 마감한다.

 

 

 

 

 

 

 

 

 

이 모습은 내겐 어찌하여 이런 미모가

21세기에서 사라져버린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헐리우드에서 이름을 날린 여배우들은 대개 영국 출신이다.

하지만, 더이상 이런 찬란하면서도 당시의 트렌드에선 전형적인 미모는

씨가 말라버린 것 같다.

 

 

 

 

 

 

 

 

 

 

 

비비안 리와 다른 미녀 배우를 구별 짓는 것은

그녀의 웃는 얼굴이다.

난 이렇게 이쁘게 웃는 여자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심각한 얼굴의 비비안 리는 다소는 전형적으로 보이지만,

웃는 얼굴은 굉장히 요염하면서도 천진하고 요정처럼 깜찍하기까지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비비안 리는 이른바 글래머는 아니지만

선이 섬세하고 아름답다.

기다란 목에서 가슴으로 흘러내리는 선과 쇄골이 기막히고,

특히나 그린 것 같은 어깨가 조각같다.

 

 

 

 

 

 

 

 

 

 

 

 

 

이런 표정의 비비안 리는,

내겐 묘한 느낌을 준다.

 

웃을 떄완 전혀 다르다.

20세기 초반 미녀들이 지닌 공통적인 느낌이 없진 않지만

이후 그녀의 연기가 미모보단 성격 배우로서의 면모를 내세우게 될 싹이 보인다.

 

거의 하드보일드한 서늘함이 있다.

전형적인 요염함을 느끼게 하지만 한편으론 지나칠 정도로 섬세하여

병적인 느낌마저 준다.

 

비비안 리의 가장 큰 매력이자 개성이

바로 기막히게 섬세한 용모와,

그 밑바닥에 흐르는 그다지 건강하지 못한, 퇴폐적인 느낌,

그리고 청순함과 요염함의 묘한 배합이다.

 

한 마디로 전혀 다른 요소들이 뒤범벅이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말년의 비비안 리는

저 얼굴의 밑바닥에 흐르는

선병질적인 면을 살려

퇴폐적이고 염세적인

독특한 연기 세계를 엿보이는데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의 블랑슈같은 역을 맡을 수 있는

싹이 엿보인다.

그런 점에서 다른 미녀와 차별화된다.

 

동시에

어떻게 인간이 저렇게 생길 수가 있을까 싶다.

 

눈빛은 스칼렛 오하라처럼 푸른 눈이라기 보단

잿빛에 가깝다.

옅은 가지색이다.

한국 사람으로선 흉내낼 수 없는 기막힌 눈이다.

 

광대뼈가 살짝 도드라짐과 동시에 살짝 패인 뺨이 빗어낸 얼굴 선이

저때만 해도 아직은 젊어서

곱게 보이게 하지만

 

자칫 망가지면

굉장히 병적인 느낌을 줄 것만 같다.

 

저 시절의 비비안 리는,

일과 사랑에서 인생의 정점에 이르렀을 무렵이다.

 

하지만 항상 클라이막스는 내리막길의 전단계이다.

저때야 물론 난 그런 걸 알지 못했음에도,

또한 어린 마음에도

참 아름다운 얼굴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뭔지 모르게 범상치 않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이후로 펼쳐진 그녀의 삶에 닥쳐올 갖가지 풍파가

어딘지 모르게 불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비비안 리는,

세기의 미녀의 반열에 오르지만,

동시에 단순한 미녀 배우라기엔

매우 위태로운 느낌을 풍기며

거의 그로테스크한 내음을 벌써부터 뿜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