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비비안 리' 본문
소녀 시절에 난 남자 배우들보단
오히려 여자 배우들을 더 좋아했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여배우가 '비비안 리' 일 것이다.
물론, 난 그 여자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처음 보았다.
어린 시절의 좋은 점이란 그런 걸까?
지금 보면 어쩐지 엉성하고, 유치하기까지한 그 영화가,
어찌하여 그땐 그토록 가슴 떨리게 멋지게 보였을까??
특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를 처음 봤을 때, 그 설레던 마음이 지금까지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비비안 리라는 여배우일 것이다.
바람과..는 시작부터 강렬한 색채감과
마음을 달뜨게 하는 테마곡으로 혼을 빼놓는다.
물론 난 당시 나이가 나이였으니만큼 영화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었다.
그러니까
그 영화가 마가렛 미첼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시대 배경은 미국의 남북 전쟁이라는 것에 대한 건
전혀 모르는 채로 무턱 보았던 것이다.
그러니 처음 봤을 때 난 아무 생각 없었다고 하는 편이 좋겠다.
그래서 이 영화가 재밌었는지도...
원작을 탐독하면서
미국 남부 문화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훨씬 이후이다.
노동력에 대한 댓가를 치루지 않아도 되는
수많은 흑인 노예들을 거느린 남부의 대농장주들이
그 무상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재배한 목화 덕분에
막대한 부를 이루고,
그 부를 또한 배경으로
남부 문화라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선 다소 이례적인 시대를 향유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와,
남부의 문화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마치 유럽의 봉건제도를 방불케하는
매우 귀족적인 문화라고 볼 수 있다.
목화를 무한하게 생산해내는 농장은
영국 귀족의 장원과 같고,
그 정점에 있는 대저택은
장원의 성 같다.
그 안에선 대농장주들의 가족이
흑인 노예를 거느리고
어떻게 하면 최대한 멋있게 놀고 먹을 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에 골몰한다.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레트 바틀러의 입을 통해 피력했듯
'가진 건 목화와 오만'
뿐이었던
그 남부 귀족 문화가 남북 전쟁을 치루면서 붕괴해가는 과정을
세심한 묘사를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시대적 배경이 바로
그 남북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이다.
아무튼,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화면에 나타난
이 여인에게 난 한눈에 반해 버렸다.
그녀가 눈부시게 아름다와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사실, 미모로만 따지자면
이 영화에서의 비비안 리는
이후에 찍었던
'애수'보단 못하다.
첫 장면에서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어쩌면 비비안 리가 아니라
미국 남부의 어느 한가한 오후,
타라라는 농장주의 딸인 스칼렛 오하라가
자신의 흠모자들을 양쪽에 거느리고
앉아서 행복해하던 첫 등장씬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상한 일이지만
바로 그 첫장면만으로
작품이 가진 에너지와 스칼렛 오하라라는 캐릭터가
확 끼쳐왔던 것이다.
한 가지 재미 있는 건,
어려서 그랬을지 모르지만
이 의상이 무엇보다 나를 매혹시켰다.
마치 인형들이 입고 있는 드레스같지 않은가??
난 이런 드레스를 입은 이쁜 인형들을
유아기에 많이 가지고 놀았었다.
그런데
인형들이나 입을 줄 알았던 의상을
실제로 보고 입을 딱 벌렸다.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비비안 리에게 홀라당 반한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저 의상이었던 것이다.
소설을 통해서야,
저런 의상이 한때 미국에서도 남부에서 유행하였고,
'후프' 라는 걸로 스커트를 저렇듯 부플리게 만들었음도 알았다.
남부 시대의 후프는
유럽이나 미국 북부보다 더 크다.
그만큼 남부 시대의 귀부인들은
유난스레 외형적인 아름다움에 치중하였고,
그것은 그 시대의 여성들에겐
그런 외형적이고 비실용적인 아름다움이 허용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머리를 묶은 빨강 리본이
숱많은 머리털 속에 파묻혀 있음에도
아니 그래서 강렬하고
아름다운 건지 개성적인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너무나 매혹적인 비비안 리의 얼굴,
그리고 바로 저 드레스가
나를 첫 순간에 사로잡았고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니..
갑자기 그 순진했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사소한 걸로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시절이 아닌가!
사실,
스칼렛 오하라도
이후로 저 순간을 무척 그리워한다.
그녀에겐 저런 시간들이
그야말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기 직전이었으니 말이다.
든든한 부모와,
수많은 흑인 노예와
엄청난 재산,
그리고 숱한 구애자들을 거느린 채
마음 속으론 사모하는 남자까지 가지고 있던
철없던 시절..
그 모든 것을 잃어가면서
비록 씩씩하게 세상과 싸워서 이겼다고 믿으면서도
꿈속에선 안개 속을 어린애처럼 달리며
울부짖던 스칼렛은
바로 저렇게 아무런 걱정 근심 없었던
행복한 시절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래서 난 더더욱 이 도입부를 좋아한다.
나도 그러니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이런 기법을 자주 쓴다.
물론, 난 어린 마음에도
이런 영상에 그저 사족을 쓰지 못했었다.
그래서 지금도 이 영화엔 향수를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영화가 아니라
이 영화를 처음 보았던
어린 소녀의 마음이
그리워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비안 리라는,
내가 제일 좋아했고,
내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여배우의
전성기의 모습도 이 무렵이다.
후에 알았지만,
그녀는 너무나 일찍 무르익었고
너무나 빨리 시들어버리며
너무나 빨리, 그리고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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