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비비안 리' 본문

모놀로그/작품과 인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비비안 리'

모놀로그 2011. 12. 15. 01:04

소녀 시절에 난 남자 배우들보단

오히려 여자 배우들을 더 좋아했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여배우가 '비비안 리' 일 것이다.

 

물론, 난 그 여자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처음 보았다.

 

어린 시절의 좋은 점이란 그런 걸까?

 

지금 보면 어쩐지 엉성하고, 유치하기까지한 그 영화가,

어찌하여 그땐 그토록 가슴 떨리게 멋지게 보였을까??

 

특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를 처음 봤을 때, 그 설레던 마음이 지금까지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비비안 리라는 여배우일 것이다.

 

바람과..는 시작부터 강렬한 색채감과

마음을 달뜨게 하는 테마곡으로 혼을 빼놓는다.

 

 

 

 

 

 

물론 난 당시 나이가 나이였으니만큼 영화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었다.

 

그러니까

그 영화가 마가렛 미첼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시대 배경은 미국의 남북 전쟁이라는 것에 대한 건

전혀 모르는 채로 무턱 보았던 것이다.

 

그러니 처음 봤을 때 난 아무 생각 없었다고 하는 편이 좋겠다.

그래서 이 영화가 재밌었는지도...

 

원작을 탐독하면서

미국 남부 문화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훨씬 이후이다.

 

노동력에 대한 댓가를 치루지 않아도 되는

수많은 흑인 노예들을 거느린 남부의 대농장주들이

그 무상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재배한 목화 덕분에

막대한 부를 이루고,

그 부를 또한 배경으로

남부 문화라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선 다소 이례적인 시대를 향유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와,

남부의 문화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마치 유럽의 봉건제도를 방불케하는

매우 귀족적인 문화라고 볼 수 있다.

 

 

목화를 무한하게 생산해내는 농장은

영국 귀족의 장원과 같고,

그 정점에 있는 대저택은

장원의 성 같다.

 

그 안에선 대농장주들의 가족이

흑인 노예를 거느리고

어떻게 하면 최대한 멋있게 놀고 먹을 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에 골몰한다.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레트 바틀러의 입을 통해 피력했듯

'가진 건 목화와 오만'

뿐이었던

그 남부 귀족 문화가 남북 전쟁을 치루면서 붕괴해가는 과정을

세심한 묘사를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시대적 배경이 바로

그 남북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이다.

 

 

 

 

 

 

아무튼,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화면에 나타난

이 여인에게 난 한눈에 반해 버렸다.

 

그녀가 눈부시게 아름다와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사실, 미모로만 따지자면

이 영화에서의 비비안 리는

이후에 찍었던

'애수'보단 못하다.

 

첫 장면에서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어쩌면 비비안 리가 아니라

미국 남부의 어느 한가한 오후,

타라라는 농장주의 딸인 스칼렛 오하라가

자신의 흠모자들을 양쪽에 거느리고

앉아서 행복해하던 첫 등장씬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상한 일이지만

바로 그 첫장면만으로

 

작품이 가진 에너지와 스칼렛 오하라라는 캐릭터가

확 끼쳐왔던 것이다.

 

 

 

 

 

 

 

 

 

 

 

 

 

 

 

 

 

 

 

 

 

 

 

 

한 가지 재미 있는 건,

어려서 그랬을지 모르지만

이 의상이 무엇보다 나를 매혹시켰다.

 

마치 인형들이 입고 있는 드레스같지 않은가??

 

난 이런 드레스를 입은 이쁜 인형들을

유아기에 많이 가지고 놀았었다.

 

그런데

인형들이나 입을 줄 알았던 의상을

실제로 보고 입을 딱 벌렸다.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비비안 리에게 홀라당 반한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저 의상이었던 것이다.

 

소설을 통해서야,

저런 의상이 한때 미국에서도 남부에서 유행하였고,

'후프' 라는 걸로 스커트를 저렇듯 부플리게 만들었음도 알았다.

 

남부 시대의 후프는

유럽이나 미국 북부보다 더 크다.

 

그만큼 남부 시대의 귀부인들은

유난스레 외형적인 아름다움에 치중하였고,

그것은 그 시대의 여성들에겐

그런 외형적이고 비실용적인 아름다움이 허용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머리를 묶은 빨강 리본이

숱많은 머리털 속에 파묻혀 있음에도

아니 그래서 강렬하고

 

아름다운 건지 개성적인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너무나 매혹적인 비비안 리의 얼굴,

 

그리고 바로 저 드레스가

나를 첫 순간에 사로잡았고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니..

 

갑자기 그 순진했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사소한 걸로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시절이 아닌가!

 

사실,

스칼렛 오하라도

이후로 저 순간을 무척 그리워한다.

 

그녀에겐 저런 시간들이

그야말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기 직전이었으니 말이다.

 

든든한 부모와,

수많은 흑인 노예와

엄청난 재산,

그리고 숱한 구애자들을 거느린 채

마음 속으론 사모하는 남자까지 가지고 있던

철없던 시절..

 

그 모든 것을 잃어가면서

비록 씩씩하게 세상과 싸워서 이겼다고 믿으면서도

꿈속에선 안개 속을 어린애처럼 달리며

울부짖던 스칼렛은

 

바로 저렇게 아무런 걱정 근심 없었던

행복한 시절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래서 난 더더욱 이 도입부를 좋아한다.

나도 그러니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이런 기법을 자주 쓴다.

 

물론, 난 어린 마음에도

이런 영상에 그저 사족을 쓰지 못했었다.

 

그래서 지금도 이 영화엔 향수를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영화가 아니라

이 영화를 처음 보았던

어린 소녀의 마음이

그리워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비안 리라는,

 

내가 제일 좋아했고,

내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여배우의

전성기의 모습도 이 무렵이다.

 

후에 알았지만,

그녀는 너무나 일찍 무르익었고

너무나 빨리 시들어버리며

너무나 빨리, 그리고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