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올인의 배우들 본문
난 '올인'이라는 드라마가 너무 재미 없어서
몰입해서 보지 않았다.
9회 정도까진 그래도 나름 봐줄 만 했지만
이후로 심하게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기회가 있어서 다시 보았는데,
이번엔 아주 찬찬히 열중해서 보았다.
그리고 왜 내가 올인이 재미없었는지 몇 가지 이유를 찾아냈다.
올인은 일단 원작을 토대로 만들었다지만,
그러나 창작에 가깝다.
당시로 볼 땐 스케일 크고,
다양한 이야기 담긴
꽤 멋질...수 있는 드라마이다.
이병헌, 허준호라는 내가 좋아하는
연기 잘하고 매력적인 두 배우와,
송혜교라는 이쁜 여배우가 가세하고,
거기에 감초역으로 등장하는 배우들도 전부 연기파이며,
우리가 잘 알기 힘든 노름, 도박, 하우스,타짜.
그리고 긍극적으론 카지노와 호텔이라는 세계가 주축이다.
조폭과 나이트클럽같은 어둠의 세계와,
그들을 필요로하는 상류층과의 결탁은 물론 있고,
거기에 주인공들의 절절한 사랑 얘기가 있으며,
짙은 우정과 의리 등등도 버물린
자못 흥미진진한 소재를 가진 영화이다.
당대에 히트를 친 이유를
이만하면 알 것 같다.
그런데 왜 지루할까...
물론 올인을 재미있게 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내겐 지루했지만.
지루한 이유를 찾아보자니.
일단 캐릭터들이 전부 문제 투성이이다.
김인하말인데,
그는 참...가슴 아픈 캐릭터이다.
원하는 거라곤
단지 사랑하는 여자와 작은 집 하나 짓고 같이 사는 것 뿐이다.
천재적인 도박꾼이지만,
그는 그런 세계는 한사코 피하고 싶어한다.
대신에 그 재능을 한껏 살려서
카지노에서 인정받고 간부가 된다.
그 카지노에는 친하게 지내는 형도 있고,
무엇보다 그에겐 불멸의 사랑인 연인도 있다.
제주도 호텔 카지노에서 보낸 짧은 세월이
그에겐 황금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세상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는 이른바 위험한 인물이다.
조용히 살고 싶어도 그게 안되는 위험한 인물..
자긴 아무런 욕심도 없고, 야심도 없는데
도무지가 세상이 자길 가만두지 않아서
그 세상의 물결에 휩쓸려
노상 떠돌며 자기 의지와는 상관 없는 역할을 하고 다녀야하는
기구한 인생..
그런데 별로 그게 기구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이병헌이 너무 무게를 잡는다.
캐릭터의 방향을 좀 잘못 잡은게 아닌가 싶다.
그는 말로는 양아치라고 자신을 일컫고,
가끔은 주먹을 휘두른다.
하지만 양아치가 아니라는 게 문제다.
그는 도무지가 정체가 불분명하다.
아니 캐릭터의 성격이 불분명하다.
예전의' 바람의 아들'에서처럼 확실하게 양아치짓을 하면서
양아치타령을 하던가,
뭐 확실한 중심이 있어야하는데
그게 없다.
그가 어떤 인물인진 알겠다.
과묵하고, 애정깊은 성격이다.
의리를 중요시하고, 자기 젊음을 혈기에 찬 과오로 인해
감옥에서 소비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나름 애쓴다.
그런데 너무 과묵하고, 너무 무표정하고, 너무 느릿해서
답답하다.
물론, 그게 이병헌이 잡은 김인하라는 캐릭터의 기본 그림일 순 있겠다.
그런데 재미가 없는 것이다.
둘째로 송혜교이다.
그녀도 재미가 없다.
어린 시절엔 분위기 있으면서 말수 적고
그럼에도 도도하고 독립적인 느낌이었던 민수연이,
송혜교로 바뀌더니 굉장히 경박해졌다.
명랑하고 말광량이처럼 나온다.
그러다가 잠깐 사랑하고 실의에 빠지고,
또 사랑하고 실의에 빠진다.
그녀는 열심히 일하는 청춘이다.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재능도 있고,
노력도 한다.
그런데 왜 도무지가 캐릭터에 매력이 없는걸까?
이해를 못하겠다.
캐릭터로만 보자면,
김인하보단 허준호나 임대수가 매력적이고,
송혜교보단 최정윤이 선명하다.
또한 내가 무척 좋아하는 최준용(이름이 맞나 모르겠다)씨가 빛난다.
그 외의 인하의 친구들은 양아치짓을 하고 돌아다닌 사람들치곤
하나같이 소심하고 샌님들같아서 도무지가...
대체 그런 과거를 지닌 남자들이 어찌 그리 눈물도 많고,
하나같이 나약해빠졌는지 신기하다.
나이트 클럽의 화려한 장막을 들추고 들어가면 나타나는
남루한 3류 집단을 상징하는 듯한
구석방에서는 그러나
오히려 인간 냄새가 난다.
거기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이 제일 재미 있다.
중견배우들의 감칠맛나는 연기가 그마나 극을 살린다.
자, 그럼 메인 주인공말고 서브 주인공들을 보자.
실은 여기서도 많은 문제가 발생해서
결과적으로 올인이 재미가 없는 것이다.
박솔미는 뭔가 있어보이는 등장을 한다.
카지노과 호텔의 왕인 아버지를 둔,
유학생으로 나타난다.
그런 그녀가 호텔과 카지노 경영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동시에 딜러로 일을 하기도 하고,
작업을 걸어오는 최정원을 세련되게 요리하면서
관능적으로 춤을 추기도 하고,
쿨하게 돌아서기도 하는 등
굉장히 멋진 여자이다.
이윽고 귀국해선 카지노에서 정체를 숨기고 딜러로 일한다.
그러다가 카지노의 책임자가 된다.
이후로 그녀가 하는 일은 입술을 깨물며
항상 어딘가를 향해 분주하게 걷는 모습이다.
대체 어딜 그렇게 가는건지
그녀는 나오는 장면마다 전화를 하던가, 입술을 깨물며
열심히 걷는다.
박솔미씨는 키가 크고 늘씬하며 걸음걸이가 이쁘다는 걸
올인을 통해 지겹게 알았다.
너무 많이 보여줘서 말이다.
그래도 박솔미는 좀 낫다.
그렇게 올인에서 비중 있는 캐릭터는 아니다.
제일 에러가 바로 지성이다.
이상한 일이지만,
대개 드라마를 보면 서브 남주에게 복잡한 성격들을 부여한다.
궁에서도 신군보단 율이 더 이중적이고 복잡하다.
천년지애에서도 소지섭보단 김남진 역이 훨씬 난해하고 복잡하다.
그리고,바로 올인에서도 그러하다.
김인하가 재미 없는 캐릭터다보니.
지성에게 시선이 간다.
그는 꽤 재미 있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처럼 한 인간 안에 선악이 공존하기도 힘들다 싶을 정도로,
야심을 위해선 못할 짓이 없는 아버지에 대한 혐오감에 몸부림치며
반항하다가
사고를 치고는 외국으로 가는 모양이다.
강오수처럼, 그도 힘있는 아버지 덕분에 슬쩍 빠져나와선
강오수와는 달리 별 죄의식 없이
외국에 가서 잘먹고 잘 산다.
말로는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하지만,
그것도 안하면 사람인가?
지성이라는 배우 자체가 준수하고 선하게 생겼다.
연기라고까지 말한 건 없지만
그런대로 안정감 있는 배우이다.
하지만, 그에겐 캐릭터를 창출할 능력이 부족하다.
말하자면, 어떤 역을 주면 그런대로 해내지만,
캐릭터를 생명력을 지닌 생생한 인물로 재창줄하는 건
그에겐 역부족이란 뜻이다.
그에게 대본을 주면,
차분하게 대사를 외고,
자연스럽게 그 역을 해낸다.
그게 전부이다.
시시한 배역을 줘도 빛나게 하는 배우가 있는 반면,
좋은 역을 줘도 담담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배우가 있는데,
지성은 후자쪽이다.
맛있는 청혼에선 제일 눈에 띄던 지성이지만,
막상 대작의 주인공 자리에 오를 재목은 아니다.
그럴만한 그릇이 아니란 뜻이다.
그래서 두얼굴의 싸나이,
두 마음의 싸나이
최정원이라는 어려운 캐릭터,
굉장히 매력적이어서 잘만 했다면
단조로운 김인하를 누를수도 있었을텐데,
물론, 아무리 단조로운 척해도
상대는 이병헌이니 힘든 일이지만,
어떻든 이병헌과 맞서긴 해야할 것 아닌가.
김인하라는 그냥 팔자 센 주인공이기만 할뿐인 이병헌에 비해서,
도무지가 복잡하고 캐릭터의 매력으론 한수 위에 있는
최정원역을 어찌 그렇게밖에 못한단 말인가!
이병헌이 최정원역을 했다면??
상상만 해도 전율이 흐른다.
어쩌면 그게 더 나을 뻔 했다.
내 안엔 내가 너무도 많아..
라고 몸부림치며 괴로와하기도 해야하는
최정원역인지라,
과연 지성도 가끔 괴로와한다.
그가 괴로와하는 방법은
창밖을 바라보며 술 한잔 마시거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이다.
그것도 노상하니
자기도 지루한지 나중엔 그것도 집어치운다.
그렇다고 그렇게 얄밉지도 않다.
얄밉게 여기기엔 너무 단정하고 유약해보여서
오히려 안쓰럽다.
이렇게 올인의 주요 주축들이 밋밋하니
극이 재미 있을 수가 있겠는가?
올인은 긍극적으로, 인하라는 사람의 사랑과 우정 이야기이다.
거기까지 가기 위해
기나긴 길을 돌지만,
그가 추구하는 건 그것이다.
그래서 그는 괴롭다.
사랑은 그의 의지와는 달리 자기가 자꾸 가해자가 되고,
우정은
그가 제일 집착하는 부분인데,
말하자면 최정원과 김인하의 기나긴 애증과 은원의 시간이
올인에선 비중이 크다.
하지만
김인하는 무게를 잡고 다니고
최정원은 졸음을 참고 있어서
난 그걸 미처 알지도 못했다.
대체 김인하와 최정원이 왜 저러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가
나중에야
아, 그랬구나..
이랬을 뿐이다.
그래서 올인은
사랑도, 우정도, 재미가 없다.
그나마 허준호와 최준용이 극을 받쳐주고,
임대수역의 조폭과 최정윤의 사랑 얘기가
처절하니 돋보일 뿐이다.
허구헌날 소리만 벅벅 지르는 최정원의 아버지 역을 하는
이덕화씨의 식상한 연기도 재미없고,
착한 척하는 그의 아내도 재미없다.
조경찬씨는 그대로 중후한 맛은 있지만
역시 뭐가 있어보이는가 했는데 아무것도 없다.
이게 올인의 주요한 특징이다.
뭔가 있어보이는데
실은 아무것도 없는거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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