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동물병원 앞을 지나가다가.. 본문
어제 저녁,
산책겸 쇼핑을 위해 집을 나섰고,
난 걷는 것을 좋아하므로
걸었다.
내가 걷는 코스는,
산책을 위한 길이 따로 있고,
쇼핑을 위한 길이 따로 있는데,
어젠 두 가지가 겸해졌기에
난 번화가로 나갔다.
그 길로 가면
우리 강아지를 죽게 한 그 병원 앞을
꼭 지나치게 된다.
난 이상하게
그 병원 앞을 지나칠 때면 나도 모르게 그 안을 들여다보는 습관이 있다.
어제도 그랬다.
대개는 환자가 없을 때가 많다.
하지만 어제는 진료대 위에 환자 개가 누워 있었다.
보호자들인 듯
두 어명의 사람들도 있었다.
난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
뭔가가 내 발길을 멈추게 하였다.
이상하다.
뭐였을까..
하여튼 순식간에 지나쳤으면 안봐도 좋았을
광경을 난 보게 된 것이다.
그 의사는 진료대 위의 강아지에게 심장 마사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난 진료대 위를 보았다.
뻣뻣해진 다리가 보인다.
심장 마사지를 해도 전혀 반응이 없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뛴다.
강아지는 이미 죽은 것이다.
뻣뻣해진 다리와 무반응이
죽음의 비정한 정지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그 강아지는 조금 전까지 살아 있었던 것 같다.
왜냐면,
그 강아지는 옷을 입고 있었다.
요즘 날이 추운 지라 웬만한 애완견들은
주인의 품에 안겨 외출해도 옷을 입는다.
우리 테리는 아예 밖에 안내보내고 있다.
일체 외부출입 금지 상태이다.
그런데
그 강아지가 입은 옷이 내 심금을 울린 것이다.
그 강아지가 입은 옷은
얼핏 보기에 남루했다.
그렇다...
우리 떠난 녀석도 서너살 무렵엔,
집에서 저런 옷을 입었었지...
엄마는 안입게 된 옷들을 마구마구 도려내어
우찌우찌해서 그럴싸한 옷 비스무리하게 만든 후에
그걸 녀석에게 입히곤 했다.
그럼 어찌나 우스운지.
그 초라한 옷을 걸치고 돌아다니는 녀석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우린 배를 잡고 웃었다.
하지만 그 추억은 지금은 가슴이 아프다.
왜냐면..
그런 옷은 사실, 아무도 안입힌다.
그냥 엄마가 장난 삼아 만들어 입혀본 것이다.
녀석이 만일 사람이라면,
그런 옷은 안입겠다고 난리를 피웠을 것이다.
하지만 강아지들은 뭔가를 입히면 그냥 순순히 입는다.
그게 뭔지 모르니까..
그래서 녀석은 그런 웃기는 옷을 입고 돌아다녔던 것이다.
그런데
어제 병원에서 본 그 강아지도
바로 그런 옷을 입고 있었다.
요즘엔 강아지들 옷도 굉장히 세련되어간다.
게다가 값은 장난 아니게 비싸다.
하지만
그 강아지는 우리 녀석처럼
아무거나 걸치고 있었다.
아마 날이 추우니
대충 몸만 가리게 아무거나 입힌 것 같다.
진료대위의 강아지는 시츄같았다.
그리고 몸집이 컸다.
그 큰 몸집에 댕강 짧은 웃옷을 대충 걸친 녀석이
갑자기 죽어버린 것이다.
이유가 뭘까..
난 멍하니 서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는데,
다음 순간
그 강아지를 바라보고 서 있던 여자가 돌아섰다.
난 보았다.
아직 젊은 그 아가씨의 얼굴이 온통 눈물로 뒤덮인 것을..
그리고 그 아가씨는 거의 광란 상태에 빠져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내 시선은 이제 좀더 멀찌기 서 있는
다른 사람에게로 이동한다.
그 사람은 남자이고,
그 아가씨의 아버지 같다.
그 사람도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하지만 울고불고는 하지 않는다.
남자들은 그렇다.
내 동생도, 그토록 사랑했던 떠난 녀석이
임종하는 순간에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동생 녀석은 마우스를 마구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강아지가 숨을 거두자,
곧바로 강아지를 안고 병원으로 간 것이다.
난 사랑했던 강아지의 주검을 곁에 둔 채로
운전해야했던 동생의 심정을 상상하기가 두렵다.
그날밤
동생 녀석은 밤새도록 술을 마셨단다.
그 중년 남자도 울고불고하는 딸과는 달리
아연하게 서 있을 뿐이다.
두 사람의 표정으로 봐선,
그 강아지는 급사한 것 같다.
입고 있는 옷이나
분위기로 봐서
멀쩡하던 놈이 갑자기 죽은 것 같다.
왜..??
강아지는 너무나 쉽게 죽는다.
인간들은 임종하기가 굉장히 힘들다.
티비에서 보듯
할 말 다 하고
고개를 툭 떨구는 건 말도 안 된다.
대개는
길면 일주일 넘게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
이윽고는 임종하는 것이다.
하지만
강아지들은 그렇게 강하지가 못하다.
그들의 생명은 너무나 힘없이 스러진다.
난 이윽고 병원 앞을 떠나
다시 발길을 재촉했다.
갑자기 더 어두워진 것 같고,
더 추워진 것 같았다.
난 떠난 녀석과,
집에서 뛰어놀고 있는 테리를 생각했다.
얼굴이 온통 눈물로 뒤덮여서 어찌할 바를 모르던
그 아가씨를 생각했다.
나도 그 아가씨처럼 울고 있었다.
생명은 너무나 가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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