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나의 독서기 -백과 사전 해프닝 본문
왕년에 영화광 아닌 사람 없듯이
왕년에 독서광 아닌 사람도 없다.
특히나 한참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엔
다들 독서에 한번쯤은 빠져드는게
당연지사다.
물론,
나도 사춘기 시절에 독서광이었다.
한참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목까지 차오를 무렵,
온갖 것에 대한 지식에 굶주림을 느끼고
그것을 채우기 위한 가장 보편적인 방법으로
독서를 택한다.
하지만,
난 실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독서광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신기한 일이지만
교직에 있던 엄마 덕분일 것이다.
집엔 엄마가 학교에서 가져온 갖가지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게다가 부모님도 독서를 즐겨서
서고엔 책이 쌓여 있었다.
우리 집에서 가장 유명한 일화가
나의 백과사전 독파사건이다.
어느 여름 방학이었다.
중딩 무렵 같은데,
난 부모님의 서고에서
오랜 시간 아무도 손대지 않아 먼지가 가득 쌓인
낡은 백과 사전을 발견했다.
무심코 그것을 끄집어 내어
첫장부터 읽기 시작한 이후,
난 어느덧 그것에 빠져버렸다
이후로
밤낮을 잊고 백과 사전 읽기에 몰두,
어느덧
그것을 독파한 것이다.
사실,
내가 지금도 어렴풋이 간직하고 있는 얼마 안되는 지식들은
그때 그렇게 백과 사전에 빠져 지내며 얻었던 지식들이
기억과 세월의 채에 걸러져서
남은 찌거기쯤 되겠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아니라
그렇게 백과 사전을 통독하다가
맘에 드는 사진이 있으면,
것도 주로 배우 사진들..ㅋㅋ
그것들을 모조리 오려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들통나면서
난 하마터면 집에서 쫓겨날 뻔 했다.
그만큼 디지게 혼난 것이다.
부모님으로서는
백과 사전에서 사진이란 사진은 모조리 도려내어
책을 너덜거리게 만든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셨을 것이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미친 짓이었다.
이후로,
다시
이번엔
인물 사전을 사들였는데,
세상에서 가장 재미 있는 책(?)을 꼽으라면
바로 그때 내가 다시 달려들어
통독했던 바로 그 인물 사전일 것이다.
난 그건
몇번이고 통독했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왜 하필 사전을 그렇게 좋아했는지 모를 일이다.
사전이란 것은,
한 마디로
가장 피상적이고
가장 정형적인 사실만 늘어놓는
그야말로 쓰잘데기 없는 책이라는 걸
이젠 알기 때문이다.
그것만큼 진실과 거리가 멀면서
그것만큼 단조롭고 진부한 사실만 열거한
무의미한 활자도 드물것이다.
하지만
어렸을 때 뭐 그리 깊이 생각하나?
그저
그것을 통해
난 많은 인물을 알았고,
또한 내가 평소 관심 있었던 인물에 대해서도
그것을 통해
더 자세히 알았지만
오히려 해가 되었으면 되었지
별로 득은 없었던 것 같다.
이후로
이번엔
무지하게 비싼 소장용
20권짜리 백과 사전을 사들였는데,
흐흐..
난 그때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것에 접근하기란 쉽지 않았다.
한번 범죄를 저지른 인간은
언제나 예의 주시를 받는 법이다.
일찌기 멀쩡한 백과 사전을
난도질한 전력이 있는만큼
부모님은,
지난 번 책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비싸고
당시의 유명 브랜드였던
그 사전들에 내가 접근하는 걸 막았고,
동시에
난 호시탐탐 그것들에게 다가갈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몰래 잠시 훔쳐보니
눈이 돌아갈 만큼 멋진 그림들이 그것도
번쩍 거리는 종이에
잔뜩 담겨 잇는 게 아닌가~!
난 당시엔 그림에도 심취해 있었는데,
유명 화가들의 그림이
멋진 색감으로
부록처럼 딸려 있는 그 사전은
그야말로 나의 로망이었다.
난 그 그림들은 모조리 도려내려고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그 기회가 왔을 때
난 일단 도려내고 보았고,
물론
후에
다시 들통나서 완존 죽음이었지만,
그래서
난 백과 사전킬러로
좀 이상한 애로 찍혀서
부모님이 심각하게 걱정할 지경이었지만,
그러나
원래 부모님이란 분들은
모든 걸 극단적으로 생각해서
별 것도 아닌 일로도
자식의 인생이 끝장나는 걸로,
혹은 인격장애자로 몰면서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한때
이상한 짓을 좀 하거나
일탈을 좀 한다고해서
자식이 그대로 파멸하는 것처럼
난리를 피우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그저
하나의 인간,
혹은 성인으로 가는 길목에서 발생하는
아주 미세한 접촉사고일뿐이다.
그런 접촉사고를
인사사고라도 되는 듯
온 세상이 무너질 듯한 대형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게
바로 부모님들인 것이다.
나도 그런 부모님을 보면서
내가 좀 이상한 애구나 라고
심각하게 받아들였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지 않는가~!
살다 보면
어린 시절..
일탈을 하고
그것으로 인해
무슨 대단한 범죄라도 저지른 듯 스스로도 자책하고
가슴을 두근거리며
벌을 서고..
그러나
지나고나면
그런 건 참 달콤한 꾸짖음이다.
우리가 성인이 되어 직면해야 하는
이 세상이라는 거대한 괴물과의 싸움에 비하면
그런 귀여운 일탈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아무튼
어린 시절의 나는
그렇게 백과 사전을 좋아해서
걸핏하면 끼고 살면서
난도질을 해서
책들을 망치는게
주요 취미 생활이었으니..ㅋㅋ
영어 사전을 그렇게 독파했다면
지금쯤....
우라쥘!
영어를 잘해야 인정받는
이상한 시대, 혹은 나라에 살고 있으니
이런 우라질 생각도 떠오르는구만~!!
아무튼
내가 가장 인상적인 건
백과 사전 해프닝도 있지만
그보다 더 어린 시절,
즉 초딩 1년 무렵에 읽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이니
참 조숙하기도 하지.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실은 그건 어린이용 신화집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어린이용 신화집이라고 하기엔
또한 그렇게 쉬운 내용만도 아니다.
아다시피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게
애시당초 그렇듯 달콤하지만은 않다.
아라비안 나이트가 어린 시절에 읽었던 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실은 난잡하고 선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듯이,
그리스 로마 신화도
원작은 그렇게 재밌지만은 않다.
하지만
내가 읽은 건
꿈을 키워줄만큼
아름답게 꾸며진,
어린이용이었고,
게다가
눈을 황홀하게 하는 삽화들이 곁들여 있었다.
그래서
난 일찌감치
아폴로니,
비너스, 혹은 아프로디테니
큐피트니
헤라클레스니
제우스니 헤라니
또한 그외
수많은 여신들,
땅의 여신 데메테르,
아폴로가 사랑한 다푸네와
월계관에 얽힌 이야기,
큐피트가 자기 꾀에 빠져 사랑한
아름다운 푸시케 등등
가슴 설레는 이야기들을
아름다운 그림과 더불어
일찌감치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어린 맘에도
가장 인상적인 스토리가
바로 피그말리온이다.
괴팍하고 고독한 조각가인 그가
어느날 심혈을 기울여 만든
아름다운 조각품을
다름 아닌 지가 만든 조각품에 그만 홀랑 반해서
허구헌날 그것만 들여다보다가
결국은
신에게 빌어서
그게 정말 인간이 되었다나 뭐라나..
그런데
그 얘기가 왜 그리도 인상적이던지..
세상의 그 무엇에도 마음을 줄 수가 없어서
혹은 마음에 차는 것이 없어서
홀로 숨어 살면서
작품 만들기에만 골몰하다가
자기가 만든 여인상을 사랑하게 된다는 얘기는
참 매혹적이지 않은가?
그리고
안드로메다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페르메우슨지 뭔지 그 비스무리한 이름을 가진
영웅이 사랑한 여자인데,
컥
머리카락이 보랏빛이었다나 푸른색이었다나 뭐라나
어린 맘에도 상상만해도
너무나 아름다워서
아니
괴상해서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했다.
아무튼
나의 어린 시절을 지배한 건
바로 그 백과 사전과,
어린이용 그리스로마 신화집이 아닐까 싶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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