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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기-도스토에프스키vs톨스토이

모놀로그 2010. 11. 14. 15:10

조금 더 성장했을 때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가를 들라고 하면

도스토에프스키가 되겠다.

 

실은 그의 전집을 오래 전에 멋지게 포장해서

판매한 적이 있다.

 

난 그것을 사고 싶었지만,

관뒀다.

 

왜냐면 그렇게 겉이 번지르르한 책들은 대개

번역이 형편없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단

 

대갠 처음 읽었을 때의 번역이 그대로

그 작품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다른 책으로 읽으면

전혀 달라진 번역에 익숙해지기가 쉽지 않다.

 

내가 읽은 대다수의 작품들이 그러했다.

 

그래서 난 문고판을 좋아한다.

 

왜냐면 단행본으로 출판된 작품들은

번역이 영 개판인 것이다.

 

문고판으로 출시될 때,

그것이 정말 상당한 수준의 번역가들의

작품인가는

사실 알지 못했다.

 

그저

내가 처음 접했던 작품들이 대개가

문고판이었고,

 

그러다보니

이후에 단행본으로 읽으면

적응이 안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판단하건데

 

돌이켜보면

문고판 번역 이상의 단행본 번역은

일찌기 본 적이 없다.

 

지금은 사라졌는지 모르지만

 

내가 어렸을 때

가장 즐겨본 문고판이

동서문화출판사라는 곳에서 대거 출판된

작품들이고,

 

내가 읽은 책들은 대개가

그 전집에 속해 있다.

 

겉이 멋지게 포장된 전집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그래서,

쓸데없는데 돈을 쓰지 않고,

대신 번역가를 좋은 사람들은 섭외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자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그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번역을 능가하는

책은 이후로 없었다.

 

그것도

당시 무슨 잡지에 딸려나온 부록의 전집인데

 

일단 내가 접한 모든 고전 내지 애서들은

그 전집을 통해 알았다.

 

이후

다른 번역이 맘에 차지 않아 헤매다가

겨우 맘에 들은 게

바로 동서문화사이고,

 

거기서 나온 모든 책들을 웬만한 건

다 소장했다.

 

특히

도스토에프스키는

최고였다.

 

내가 좋아하는,

그의 다소는 희화적이고 냉소적인 문체를

잘 살리고

 

그의 다소는 그로테스크한 유머감각을

생명력 있게 소화한 번역들이다.

 

사실,

어떤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려면

그 작가의 정신세계와 그의 성격까지 파악해야 한다고 믿는다.

 

레마르크의 개선문이 그러한데..

 

그 무렵의 그의 허무적이고 냉소적인 독특한 작품 세계를

제대로 표현하려면

 

당시의 그가 처한 상황과, 세계사적 배경,

그리고 레마르크라는 인물의

성격까지 이해해야만

제대로 된 번역이 나오는 것이다.

 

어쩌면 그만한 감성을 지닌 번역가란 드물것이다.

 

그래서

전혜린씨가 번역가로는 따를 사람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생의 한 가운데'는

그야말로 기막힌 번역으로 유명한데,

 

다른 번역판은 읽어주기 힘들 정도로

루이제 린저가 창조한

 

니나 부슈만이란 여자와 주변 인물들을

짧고 간결하면서 냉소적이고 그러면서도

따스하고 열정적인 문장을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난 도스토예프스키를 제대로 번역하려면

그의 그로테스크한 유머감각과

기괴하면서도 지극히 종교적인

그의 문체를 알아야한다고 생각한다.

 

동서문화사의 번역가들은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를 내가 좋아한 이유는,

 

그는 한 마디로

문학계의 베토벤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다.

 

베토벤의 음악을

있는 그대로,

온 몸과 마음으로

그냥 이해했고

그래서 내 안에서 그래도 체회되어 받아들었듯이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러했다.

 

난 그를 이해했다.

그게 중요하다.

 

그냥 이해하는 것,

 

그래서

그의 독특한 문체와

그가 그려내는 그로테스크한 인물들,

 

그리고

다소는 우스꽝스럽다고 해도 좋을만한

사건들 속에서

서로 우왕좌왕하는 인간들,

 

그러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지독한 종교관,

 

그러한 것들을

너무나 좋아했다.

 

내가 제일 처음 접했고,

제일 좋아했으며

제일 많이 읽은 책은

물론

죄와벌이다.

 

그건

그 안에 담긴 이데올로기와 별개로

아주 재미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다양한 인물들이 나오지만,

어찌나 하나같이 생생한지...

 

한 명 한 명이 그대로 살아 숨쉬는 것 같다.

 

난 언제나

그의 작품에서

한 사람에게 특히 마음이 끌리는데

 

죄와벌에선

 

그 뭐시지인지..기억은 잘 안나지만

 

아무튼

 

라스콜리니코프의 여동생을 사랑하는

어떤 괴이한 인물,

 

즉 그의 작품엔 반드시 등장하는

선악의 경계선에 서 있는

묘한 인물들의 전형인

그 사람이다.

 

우찌나 좋아했던지

아주 미치고 팔짝 뛰게 좋아했다.

 

그런 유형의 인물들은

그의 작품엔 반드시 등장하고,

 

그럼 난 좋아죽는다.

 

반대로,

 

또한 그의 작품의 중심이 되는

고뇌하는 악의 상징같은 인물의 정반대편에 서 있는,

 

구원의 등불이랄까..

 

그런 인물들은 사실 좀 그렇다.

 

이를테면

죄와벌의 소냐,

 

카라마조프 형제의 알렉세이가 그러하다.

 

그런 인물들은

당시의 내게도 구원의 등불이 되어주긴 했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그런

 

사랑이라는 지극히 나약해보이지만,

가장 강력한 에너지를 담은 이데올로기로

대책없이 무장하고

이 세상에 맞서는 그들이

내겐 신기하면서도

동시에 위안이 되어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흘러

나도 때가 탔는지

 

작품 속에 순수사랑으로,

예수의 사랑의 본질이라고 해도 좋을

완존 투명한 영혼의

절대 사랑에

나도 모르게 멈칫하게 된다.

 

힘든 시절에 날 지탱했던

그런 사랑의 힘이

이제 와선

피하고 싶어지는 이유가 뭘까..

 

그만큼

절대 사랑에 대해서

회의적으로 된 걸까?

 

톨스토이는

귀족 출신으로 지극히 브르조아적이다.

당연히

그가 그리는 배경도

브르조아적이다.

 

어떤 종류의 절대 사랑,

종교적 믿음이 깔린 절대 사랑이

밑에 깔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로테스크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세계가

내게 힘을 주고 위안을 준다면,

 

톨스토이의 지극히 브르조아적인

배경을 뒤에 깔고 벌어지는 서사적인 소설들은

날 미칠듯한 절망에 빠뜨린다.

 

그래서

난 톨스토이를 두려워한다.

 

그의 작품은 굉장히 잔인하다.

 

가장 대표적인 게

 

안나 카레리나가 아닐까..

 

그 소설을 읽고 있으면

그 파괴적인 진실의 힘이

나를 조여온다.

게다가

너무나 담담하게 서술하기에

더욱 섬찟하다.

 

그에겐

도스토예프스키같은 유머감각은 없다.

다소 냉소적으로

귀족 세계를 바라보는 건 비슷한데,

 

도스토예프스키가 희화적으로 그린다면,

그래서

웃음이 나온다면

 

보다 사실주의를 기반에 둔 톨스토이의

문체는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그의 작품은 그래서

재미가 없다.

 

말하자면

소설적 재미 말이다.

대신에

무섭고 섬뜩한 현실 있는 그대로를

목격해야하는 고통을 감수해야한다.

 

같은 현실을 묘사하는데

 

어째서

보다

담담하고 무미건조하다고 해도 좋을

톨스토이의 작품 세계가

더 비극적이고

그가 보여주는 현실이 더 무참한 걸까?

 

그의 세계엔

소냐와 그녀의 가정 같은,

 

그 알콜 중독 아버지나

폐병장이에 미치광이 계모도 안나오고

그렇듯 비참한 환경도 나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더 비참하고

절망적으로 세상을 보게 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

난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머리를 쥐어 뜯으며

세상은 살 가치가 없다고 느끼게 되고,

 

사랑도 한조각 걸레만큼의 무게만큼도 안되는데도

우리가 목을 매고 있으며,

 

그 외

모든 것이

절망과

숨조이는 암울함으로 채색되는 것이다.

 

난 웬만한 작품은

맘에 들면

달달 외울 때까지 읽고 또 읽는 편인데,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은

대개가 그렇게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지만

 

톨스토이는 두어 번 읽고 나면

그 책이 만지기도 싫어진다.

 

그럼에도

내가 최고로 치는 작품은

 

그의

 

전쟁과 평화이니

참 묘한 일이지..ㅋㅋ

 

그것도 다 지난 시절의 이야기이고,

책과 담을 쌓은지도 참

오래되었으니

 

내 인생도 팍팍하구나..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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