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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가 지닌 한계, 그 잔인함 본문
드라마...
난 가끔 드라마가 소름끼치게 싫을 때가 있다.
아주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라할지라도,
내심 화를 내면서 보기도 한다.
왜냐면
드라마란 긍극적으로 픽션이며,
동시에 모든 상황이 주인공을 위해 전개되고, 그러기 위해
필연적으로 주변 인물들을 짓밟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살리고 싶은 주인공 캐릭터나, 혹은 관객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
인간성을 버리기 때문이다.
아니
인간의 도리를 저버린다고나 할까?
아주 가끔,
정말 진부한 표현으로 가뭄에 콩나듯,
두루두루 주변인물들까지 포용해주고
그들을 주인공을 위한 희생물로 전락시키지 않는 작풍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런 작품을 쓸 수 있는 작가는
정말 드물다.
드라마란 상품이다.
예술 작품이 아니다.
많이 팔리는 게 최우선이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알려지지 않으면
결국 먼지 속에 파묻히고,
소수의 열광 속에서
사라진다.
당대의 명품이지만,
몇 세기가 흐른 뒤에
그 진가를 인정받고
뒤늦게 명품의 반열에 오르는
예술 작품도 아니다.
그저 일회적 소모품이다.
자기가 대단한 예술 작품 내지는,
길이길이 드라마사에 남을 명작을 쓰겠다는 마인드로
극본을 쓰는 작가가 몇 명이나 될까.
어쩌면
그래도 몇몇
인정받는 작가들은
바로 그,
주변 인물을 스토리나 시청률, 혹은 주인공을 위한
희생물로 전락시키지 않고,
가치관을 매몰시키면서도 그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우매한 무늬만 작가인 사람이 아닌,
정말 작가다운 작가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흥행에 성공하느냐 마느냐는 둘째치고,
일단 그런 깊이를 가지고 있다면,
설사 그 작품이 내 취향이 아닐지라도
난 그 작가를 인정할 것이다.
이를테면
노희경 작가 같은 사람이 그럴 것이다.
또는 상두야 학교가자
라는 작품도 그렇다.
정말 손에 꼽을만한
몇몇 작품에서
그 작가들은
인간이라는 것,
사랑이라는 것,
도리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
난 몇 년 전부터
가볍고 즐거움을 주는 드라마만 골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풀하우스도 그 중 하나이다.
그 드라마는 정말 재미있다.
궁처럼 마음에 스트레스나 아픔도 주지 않는다.
무겁지도 않고,
적절한 에피소드가 잘 버무러져서
정말 즐겁게 편안하게 볼 수 있다.
극악한 인간도 없고,
싸가지가 없어서
스트레스 무지하게 받게 하는
공주님도 없다.
이를테면,
풀하우스의 공주님은,
옥탑방의 공주님과는 다르다.
옥탑방의 공주님이 완전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노골적인 악역이라면,
풀하우스의 공주님은
그 정도는 아니다.
겉만 번지르르할뿐,
내면은 극도로 빈약한 텅텅 빈 불쌍한 공주님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게 아마
풀하우스의 장점일 것이다.
극악무도한 인간이 없다는 것,
타당성이 그렇게 없지도 않다는 것,
무엇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볍게 웃으면서 즐길 수 있다는 것,
뭐 그 정도면
호흡도 마지막까지 잘 끌고 나가며
흠잡을 구석도 별로 없이
말 그대로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즐길 수 있는 드라마라는 점이
장점이다.
게다가
얼핏 보면
무리하게 희생당하는 캐릭터도 없어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얼핏 보면 그렇게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다.
거슬릴 정도가 아니라 그냥 대충 넘어가지만,
풀하우스 역시
옥탑방이 범하는,
그리고
궁이 범하는 중대한 실수를 답습한다.
그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닌 짓들을
주인공들이 태연히 자행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단지
스토리를 위해서 말이다.
궁은 스트레스를 심하게 줄 정도로
아예
스토리를 위해
주인공들까지 망가뜨리는 바람에
두드러지지만,
비교적 무난하게 보이는 풀하우스나, 옥탑방도
사실 혐의가 짙다.
풀하우스에서,
여주인공인
한지은은,
툭하면 이영재를 불러내서
자기 실연담을 하소연하는 한은정에게
이런 말을 한다.
'사랑하는 사람 있다면서요. 그 사람 불러내면 되지, 왜 자꾸 이영재씨를 불러내요?
좋아하는 사람 불러내면 되자나요~!!'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을 한 한지은이
바로 같은 짓을 한다.
한지은이나,
옥탑의 여주인공,
궁의 채경이까지
같은 짓을 한다.
다시 말해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해 받은 아픔을 토로하며
눈물짓는다는 점이다.
한지은이 한 말,
왜 좋아하는 사람 놔두고,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을 불러내냐고
항변하는 그 말이
고대로 한지은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한은정은 좀 낫다.
적어도 그녀는
이영재가 자기를 사랑하는 건 모르니까.
하지만
채경이도, 정다빈도, 한지은도
자기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남자들이,
자기가 힘들 때마다 찾는 그 남자들이,
자기의 아픔을 토로하고
그 앞에서 눈물 쥘쥘 짜는 것으로
그 가슴을 찢는 남자들이
자기를 사랑하는 걸 알고 있으니 말이다.
한은정보단 한지은이
훨씬 악질 아닌가?
그렇다.
대개의 어주인공들은
참 잔인하다.
우린 물론
남주에게 홀릭해서
그 남주와 대립하는 여주가
남조에게 어떻게 대하던
별로 관심을 안가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남조를 욕하기도 한다.
왜냐면
그 남조들은 대개 악역, 혹은
두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방해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를 단순히 장치로 보지 않고
정말 살아 있는 인격으로 본다면
과연
작가가 그린 그런 상황이
타당한가?
자기를 사랑하는 남자 앞에서,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로 인해 받은 아픔을 토로하며
눈물을 흘리는게
인간으로서 할 일이냔 말이다.
애써 눈감으며
그런 상황을 넘어가주지만,
따지고보면
참 비인간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정말 좋은 작품이라면,
그런 희생자가 없어야 한다.
거짓말에선 그런 희생자는 없었다.
또한
거침없는 사랑에서도 그러했다.
아주 드물게
그런 희생자가 없는 작품이 있다.
그리고,
실은
그런 작품이 좋은 작품이다.
하지만,
그런 능력을 가진 작가는 드물다.
아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도 못한다.
그저
으례적으로
삼각관계를 만들어놓고,
아무 생각 없이
주변 남자는
방해자로,
여주의 사랑의 실패담을 들어주는 장치로 전락시킨다.
하지만,
그건 실은
여주를 전락시키는 것이다.
왜냐고?
그 여주들은
교묘하게 그 남자들을 이용한다.
다시 말해서
그 남자로 하여금 포기하게끔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줄곧 희망고문을 한다.
그러다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말해서
그 남자가
이제 다 되었다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 순간
뒤통수를 친다.
한지은도,
정다빈도,
그리고
채경이도 그런 짓을 한다.
마지막회가 되야
겨우
난 널 사랑하지 않으니까
이제 그만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때까진
남주에게 받는 사랑의 상처를 보상받을 대상으로
놔주지 않다가
이제 필요없어지면
그제서야
포기하라고 한다니
그게 인간이냐고~!!
물론,
그건 작가의 한계이다.
그렇게밖엔
갈등구조를 끌어갈 수밖에 없는
그들의 빈약한 상상력과,
가치관,
그리고
그만큼의 생각이 없는
다시 말해서
아무 생각 없는
사랑에 대한 마인드이다.
그래서
불쌍한 남조들은
처음엔 그럴 듯하게 개폼잡고 나오다가
점점 수렁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나중엔
아주 비참한 꼬라지로
물러서야 한다.
여주들의 희망고문으로
질질 끌려다니며
뒷수발 실컷 들고
삽질만 무지하게 한 결과가 그것인 것이다.
만일
드라마가 아닌
실제 상황이라면,
그런 여자들은 모조리
욕을 먹어도 싸다.
가끔 여기저기 연애 상담란에 울고불고하며 올리는 글에 나오는
어장관리와 다를 게 뭐가 있냔 말이지.
사실,
그런 드라마를 단순하게 웃고 즐기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을 때가 있다.
그런 점에서
난 로코 중에선
삼순이를 높이 친다.
적어도
삼순이엔
그런 얄팍함이 없다.
아니
사랑에 대한 가치관이 참 깊다.
그리고
희생당하는 캐릭터도 없다.
아무리 주변인물이라도
절대로
주인공으로 인해
희생당하지 않고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정당함과
주관을 지켜주는 것,
그건 정말 대단한 능력일 것이다.
풀하우스는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는 점에서,
궁은 신군이 멋지고
화면이 아름답다는 이유로,
또한
옥탑도 그저 그렇게 적당히 재미있다는 이유로
작가들의 그런 무책임함을
눈감아주는 건
사실
양심에 무지하게 찔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에
불새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그 드라마는 정말 내 혈압을 무지하게 높이는데 일조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작가의 그 얄팍한 사랑에 대한 가치관,
스토리를 위해 인간성을 말살하면서도
그걸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무지함이 화가 나서이다.
그냥 눈감아줄만큼
재미 있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그 드라마의 여주는,
실은 전남편을 사랑하면서도,
그에게 돌아갈 수 없다는 이유로,
자기를 따라다니는 재벌2세의 구애를
애매한 태도로 받아들이는 듯 마는 듯 한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그에게 시집갈 궁리를 한다.
켁~!
그녀는 분명
전남편을 사랑한다.
설사
사랑하지 않는다고 쳐도,
자기 전남편의 상사와 결혼하겠다는 발상은
어디서 나오는걸까?
아무런 고뇌나
성찰도 없이
그 여주는
전남편을 적대시하고
파멸시키려고 기를 쓰는
그 재별2세와 결혼하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그 이유가
바로 그 전남편을 잊기 위해서라나 뭐라나..
살다 별꼴을 다본다 싶어서
중간에 보기를 때려쳤지만,
그 작가는 내게 이를 갈게 만들었다.
비슷한 예가
무수히 많다.
여주들은
보는 사람을 애틋하게 만들기 위해
남주에게 가는 대신
그 남주의 사회적 라이벌에게 시집가지 못해 안달한다.
그것도 눈물콧물 짜면서..
나참
그게 말이 되나?
드라마에 나오는 남자가
남주랑 남조밖에 없으니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겠지.
하지만,
그런 작품은 모두 쓰레기이다.
무엇보다
여주를 쓰레기로 만드는 짓이니까.
주변 인물을 희생시키지 않는
좋은 작품을 보면 될 거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굳이
그런 드라마 보면서
실실 웃으며
한편으론 찝찝해하는 내가
제일 바보인지도 모르겠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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