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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훈/궁

궁 8부- 신군의 트라우마와 다락방

모놀로그 2011. 2. 6. 00:01

궁 8부는

갑자기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꺼번에 담는 바람에

터질 것 같다.

 

그때까지의 느릿한 전개와는 달리,

폭포처럼 많은 사건이 쏟아지는데,

 

그래서인지, 장소도 다양하다.

 

동궁전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궁으로, 궁에서 다락방으로,

다락방에서 승마클럽으로, 승마클럽에서 다시 신군의 암실로,

 

마구마구 비약하면서 그때마다 의미 있는 장면들이 정신없이

쏟아지고, 그만큼 등장인물들의 감정의 폭도 넓다.

그래서 그 이야기들을 따라잡기도 힘들거니와,

그 안에서 등장인물들의 변화무쌍한 감정의 폭을 이해하기도 벅차다.

 

하지만 굳이 요약하자면,

 

부부동반 친정나들이 이후로,

급속도로 가까와진 황태자 부부가 어찌어찌하여

다시금 멀어지게 되는가!

 

이것이 되겠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기 위해서

우리에게 이번엔 신군을 조금 더 클로즈업해서 보여준다.

사실, 그때까지 우리에게 제공해준 신군에 관한 정보는

 

채경이 알고 있는 정도밖엔 안되었다.

우리도 채경이가 아는 만큼 밖엔

그를 알지 못하고 있던 셈이다.

 

그런데, 처가 나들이를 계기로

채경이가 신군과 조금은 터놓고 지내는 사이가 되는 바람에,

우린 채경을 통해서 신군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작은 오솔길을 발견하는 셈이다.

 

채경이가 아는 것보다 더 잘 볼 수가 있다.

채경은 당사자이기 때문에

미처 놓칠 부분이 있겠지만

우린 보다 객관적으로 미세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드디어 신군의 트라우마 속으로 들어간다.

 

우린 5살짜리 신군을 만나게 된다.

아마 막 입궁하여 황태자가 된 신군이 아닌가 싶다.

혹은 황태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겁이 잔뜩 실린 커다란 눈을 가진

굉장히 유악하고 소심한 아이였다는 것을 우린 알게 된다.

이건 뜻밖이다.

 

다정했던 엄마가 갑자기 자신에게 더이상 엄마라고 부르지 말라고

강권하고, 황제가 될 몸이라고 세뇌하는데

 

그 광경이 어린 신군에겐 공포 영화에 나오는 유령들의 노래처럼

뇌리에 남아 있다는 것을 우린 알게 되는 것이다.

 

궁으로 돌아온 후에

친정 나들이 이전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신군과 채경 사이는 가까와지고, 허물 없어졌다.

 

한 밤중에 단 둘이 예정에 없던 야밤의 데이트까지 하며

전에 없는 분위기를 연출하는가 하는데,

이건 상당히 파격적이다.

 

신군이 자기 등짝을 호시탐탐 노리는 채경에게

만져보라고 들이대주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눈치 없는 공내관은 왜 부부의 정이 무르익어가는

깊은 밤에 그들 주변을 맴돌면서 방해를 하는건가??

 

그들의 적은 효린과 율군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사가의 분위기에 휩쓸려 있던 탓인가,

자기도 모르게 황후에게

 

엄마

 

라고 불렀다가 눈물 쏙 빠지게 황후에게 혼나는 바람에

새삼 우울증에 걸린 신군 위로 차원에서

채경의 눈물겨운 성대 묘사도 있었다.

 

자건거를 타고 궁 안을 질주하는 채경에게 한바탕 설교를 늘어놓는

공내관에게서 채경을 슬쩍 감싸주는가 하면,

 

채경의 말을 엉뚱하게, 즉 황족스러운 해석을 지레 하여

전용차를 마련해주기까지 한다.

 

노란 딱정벌레같은 폭스바겐은 어찌 그리

채경에게 잘 어울리는지??

 

하여튼,

8부의 초반은 갑자기 다정해진 부부의 므훗한 씬들이

쉬지 않고 우릴 즐겁게 한다.

 

대체 어쩌다 저들이 저렇게 된거지??
뭐 이유가 어떻든, 신군이 채경에게 다정해져가는 걸

지켜보는 것이 나쁠 건 없다.

 

채경은 마치 날개를 달은 듯 신군의 세계로 훨훨 날아간다.

 

신군이 사라지면

냄새로 알아낼 정도가 되었는지

아닌게 아니라 선녀의 날개옷 같은 옷을 입고

다락방까지 훨훨 날아가서

사뿐히 신군 앞에 앉기까지 한다.

 

신군은 온통 자신을 찾느라 난리법썩이 벌어진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마도 자신의 비밀 장소인 듯한

다락방에 홀로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는 사진을 보고 있다.

 

그게 바로 그의 누나인 혜명공주가 보내준거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무엇을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진 모르겠지만,

뭐 누가 보내준 사진이면 어떤가!

 

그는 그렇게 혼자서 미소를 지으며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게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날개옷을 입은 채경이

날아들어온다.

 

자기만의 은신처에 숨어서

잠시

숨을 쉬고 있었던 신군은,

 

난데없는 침입자에게

짜증을 내고 있었다.

 

채경이

다락방까지 밀고 들어올 때

그는

체념하는 듯하면서도

분명 짜증스러워보였다.

 

그런데

그 은신처를 뒤흔드는

채경의 바람이

 

결국은

두 사람의 몸싸움(?)에 이어서

묘한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그런데..

그 순간이 참 길고 섬세하게 묘사된다.

난 그때 흘러나오는 음악에 주목한다.

상당히 몽환적이기 때문이다.

 

분명 두 사람은, 그때 그 순간의 분위기에

취해 있는 것이다.

 

어둑한 다락방,

격자무늬창으로 흘러들어오는 저녁 무렵의 마지막 햇살..

 

그 햇살이 먼지투성이 다락방의 바닥에

그들을 위한 자그만 공간을 따로 만들어주고,

그 안에 그들은 누워 있다.

 

채경이는 갑자기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날개달린 옷을 입어서인가,

천진하게 신군을 유혹하며 

그 묘하고 매혹적인 순간을 한껏 만끽하고 있다.

그녀는 다음 동작을 요구하고 있다.

그녀가 원하는 다음 동작이 뭘까?

 

채경은 지금 꿈을 꾸고 있는걸까?

어째서 채경은 그런 꿈을 꾸는걸까?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그런 꿈을 꾸게 하였을까?

 

채경이가 꿈을 꾸고 있다는 건

신군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신군은 전혀 그녀의 유혹에 응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녀처럼 단순하게

그 순간을 즐기지 못한다.

 복잡하고 착잡해보인다.

 

그는 오히려

심한 갈등과 고뇌에 차 있는 것 같다.

 

난 그때 신군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건지,

왜 그토록 복잡한 표정으로

그러나 그 순간을 가능한 길게 끌면서

망설이는 건지 잘 모르겠다.

 

채경이가 그토록 노골적으로 신군을 유혹하는 건

아마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난 그래서 채경이도 잘 이해가 안간다.

 

다락방에서의 일막 전부가 내겐

좀 이해가 안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 장면은 참으로 아름답고 가슴 설렌다.

그리고 그렇게 미묘한 순간과, 미묘한 순간을 우리에게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여백을 주는 연출에도 감탄한다.

 

어쩌면 몇 초밖에 안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무척이나 긴 시간처럼 여겨지던 그 매혹적인 시간..

 

닿을 듯 말듯한 얼굴과

 서로의 호흡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입술..

 

분명히

서로의 심장의 두근거림까지 전해질 정도의 자세

 

등등을 지켜보는 우리가 잠시 숨을 멈추게 하는 힘이

그 장면엔 있다.

 

궁엔 그런 매혹적인 함정들이 참으로 많다.

 

  

그 순간은 그러나 효린에 의해서 산산조각나고

 두 사람을 현실로 돌아가게 만든다.

 

아직은

그런 순간에 몸을 맡기기엔

너무 이르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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