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궁 8부- '그 녀석만은 안되'에 담긴 의미는 뭘까.. 본문
낙마 이후
오지라퍼 채경의 우려의 결과는
대일밴드 하나로 해결되는
희극적인 장면을 낳는다.
즉,
실제로 율군의 상처는 그다지 대단치 않았다는 말씀..
대신에
아내인 채경이 왈,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으니 걱정할 거 없다는
신군은
꽤 부상이 커서
적어도 대일밴드 한장으로 해결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신군은
과연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였지만,
정작 그가 원한
그의 아내는
대일밴드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들이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전각을 지나치면서,
아니 적어도
신군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장면을 멀찌기에서 바라보면서
신군은
중얼거린다.
안되...
그 녀석만은 안되..
그리고 그는 쓸쓸하게 동궁전으로 돌아간다.
그가 중얼거린 그 짧은 말은 참으로
의미심장하고 난해하다.
해석의 범위가 너무 광대하달까?
난 원작을 전혀 보지 않았기에
오로지 드라마 상으로만 보자면,
난 신군이 때가 되면
황태자위에서 물러날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자신의 말대로
사춘기 소년의 반항기로 치부되지 않도록
자신의 의사가 무게를 가지고 받아들여질 정도의
나이가 되고, 때가 무르익으면
그는 자신의 황태자위를
율군에게 넘겨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보여지며,
실제로도 율군에게 그렇게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혼인이다.
그는 혼인 전부터 이혼을 먼저 언급했었다.
그가 순순히
자기와는 천지 차이로 걸맞지 않는
채경 같은 아이와 혼인할 것을 승락한 이면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자기는 언젠가는 황태자를 그만둘 것이고,
따라서 자기 의사를 배제한
조부들과의 약속에 의한 채경과의 혼인 관계도
자연히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닌가 싶다.
채경은 이신의 아내가 아닌
황위를 이을 황태자비로 맞는다는 것이
선황의 유지였던 것이다.
사실
그 부분은 참 혼란스럽기 찍이 없다.
드라마 상으로도 들쑥날쑥해서
헷갈린다.
일단 혼인을 했으니
부부임에는 틀림 없다.
그러나
공식적이고 형식적인 부부일 뿐이다.
황태자와 그의 비이지,
이신과 신채경의 결혼은 아닌 것이다.
황태자위를 버리고
평범한 황족으로 돌아갈 경우에는
그 혼인을 무효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무효화하는 것이 힘들다면 적어도 평범한 황족으로서
이혼하는 것이 황태자가 하는 것보단
덜 이슈가 될 것이고,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을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별 이의도 없이
그 말도 안되는 혼인에 순순히 응한 게 아닌가 싶다.
어차피 머잖아 그만둘텐데
굳이 어른들과 싸우는 건 피곤한 일이니까.
그가 태국에서 돌아온 후,
언젠가는 황태자를 그만둘 것이며 그렇게 될 경우
체경을 집으로 보내주겠다고 한 것을 보면
그는 황태자에서 물러나는 순간
채경과의 억지 결혼도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즈음엔 결혼 초기와는 달리
채경에게 많이 기울어진 상태임에도
그 결혼을 지속할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 중에는 효린의 경우와 같이
채경을 위한 배려도 작용한 것 같다.
그는 채경을 위해서라도 궁에서 내보내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만약
그가 황태자위를 율에게 넘기고,
채경과는 더이상 형식적 부부관계를 지속할 이유가 없어
그가 늘상 부르짖는대로 이혼할 경우,
채경과는 다시 남남이 되는 것까진 참겠는데,
(그들은 사이좋게 남남이 된 이후까지 의논하지 않던가.ㅎㅎㅎ)
당시
그의 시선으로 보면
채경과 율군은 매우 가깝게 지내고 있다.
아니 그 친밀함의 도가
그가 보기엔 지나칠 정도이다.
물론 같은 반 친구이기에 격의 없이 지낸다지만,
법도가 생명인 궁안에서조차
친구 사이로 지낸다.
학교에선 친구라하나,
엄연히 궁안에선 황태자비와 그의 사촌 시동생 사이인 것이다.
푼수 채경에게 그런 법도를 지켜주길 바라는 것까진
포기했을지라도,
황족이고 법도를 잘 아는 율조차
황태자비이자 형수인 채경을 격의 없고 사적으로 대하는 것이다.
신군의 입장에선
채경의 자신에 대한 감정은 확실치 않고,
둘은 실제적인 부부도 아니며,
율은 채경에게 특별한 감정을 지니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둘은 틈만 나면 함께 있으며, 함께 있는 것이 즐겁게 보인다.
그렇다면 둘이 서로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혹은 그렇게 노상 붙어 있다보면
좋아하는 사이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실제로는 전혀 그럴 염려가 없었지만
채경의 마음을 잘 모르는 신군으로선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다.
마치 채경이 효린에 대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제멋대로 신군은 효린을 잊지 못하고 있다고 단정짓고 있듯이..)
신군도 자신이 채경을 아내답게 대우해주고 있지 않다는 것,
자기 마음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자신이 그녀를 방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채경이 정에 굶주리고 외롭고 답답한 궁안에서 그나마 유일한 친구이자
자상하게 대해주는 율에게 마음이 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율은 일이 꼬이지만 않았다면
채경의 정식 정혼자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황태자위를 율에게 넘겨주고
약속대로 혼인 관계도 청산할 경우,
율이 채경을 조부들의 약속을 내세워서
채경을 다시 자신의 비로 맞아들이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채경의 자신에 대한 마음을 확신하고 있지 못한 신군으로선
그럴 경우를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데,
그건 고지식하고 결벽증 심한
그로선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적어도 한때나마 자신의 아내였던 채경이
이번엔
다시 율군의 아내가 된다?
율은 생판 남이 아니다.
그의 사촌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때 자신의 아내였던 채경이
자칫 자신의 사촌의 아내가 되는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른다.
율군은 신군을 잘 모르지만,
(율은 그저 신군의 겉모습,차갑고 냉정하고 이기적인 겉모습이
그의 전부라고만 생각할 뿐 이면의 신군은 보려고 하지 않는다.)
반면에
신군은 율이 어떤 성격인지 잘 알고 있다.
어린 시절의 그 오만한 꼬마를 기억하고 있는 신군이다.
뿐만 아니라 율은 종친들의 지지 기반이 탄탄하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종친들을 설득해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일을 진행시킬 수 있다.
이점에선 율도 같은 생각이었으니 신군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핵심은
채경의 마음이다.
하지만
신군은
낙마 사건으로 다시금
채경의 마음의 향방을 잃은 상태이다.
채경만 그 괴상망측한 일을 오케이하면,
아니 오케이할 정도로 율을 좋아하게 된다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도 있는
끔찍한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그녀석만은 안되...
라고 한 것이 아닐까?
아무리 그래도
넌 내 아내였어.
그런데
그 녀석은 널 좋아하는 것 같아.
니 마음은 알 길이 없어.
나보다 그 녀석을 더 걱정해주는 너...
설사
내게 가끔 잘해준다해도
넌 원래 그런 애니까
날 좋아해서 그러는 거라는 확신을 난 가질 수가 없어.
게다가 넌 궁에서 나갈 궁리만 하고 있어.
내 곁에 있는 것이 별로 행복해보이지가 않아.
나도 널 행복하게 해줄 인간이 못되.
난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면 애초에 시작을 안하는 놈이거든.
그래서 너에게 쉽사리 접근할 수가 없어.
아무리 니가 내 옆에 없는 것이 생각만 해도
견딜 수 없다해도..
어쨌든
난 언젠간 널 놓아줄거야.
이 숨막히는 궁에서 널 놓아줄거야.
넌 천성적으로 궁안의 인형이 될 수 없는 아이니까.
그런데
그렇게 율과 가깝게 지내다가
둘이 좋아하게 되어
니가 다시 율에게 가는 일이 생기면 어쩌지?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
그러니 안되...
그 녀석만은 안된다고...
그런 뜻이 담긴 말은 아닐까?
물론,
이건 바로 그 순간까지만의 얘기다.
황태자위를 지키겠다고 결심하기 전까지의
신군의 마음이고,
아직은 채경을 잘 모르고,
채경의 마음도 잘 모르며,
자신의 마음도 잘 모르는 상태의
그야말로 카오스의 한 가운데 있는
신군의 마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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