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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 8부- 낙마사건과 태국행 본문

주지훈/궁

궁 8부- 낙마사건과 태국행

모놀로그 2011. 2. 6. 00:09

낙마 사건은 신율채의 관계에 한 획을 그은
기념비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첫째로...신군 입장에서보면


자기도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덧
채경과
그녀의 세계에 이끌려 들어가고 있었으며

친구로서 허물 없는 사이가 되고
연애 감정 비스무리한 것도 생길랄말락하던 차였는데다가

무엇보다 부부라는 필수 조건이 앞선 두 사람이기에
낙마 사건이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면,

다시 말해서 채경이 그 순간에
그에게 결핍된 부분
즉 무슨 사건이 터질 때마다 늘 혼자였고 혼자일 수밖에 없이
14년을 지내온 허기증을 채워주고
맘껏 들이마시게 해주었다면
두 사람 사이는 거기서 일단락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채경이 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남편이자 남몰래 연정을 품게된 신군에게
달려가서 만사 제쳐두고
그를 돌봐주기만 했다면

그래서 확실하게
우린 부부이며 동지라는 도장을 꽝~!
찍었다면
둘 사이는 확고부동하게
규정지어졌을 것이다.


즉, 신군은 채경이 것으로 일찌감치 낙찰된 뻔 했다.



but, 그러나

그렇게 순조로울 리가 있는가~!
마치 원죄처럼 두 사람 사이엔
두 개의 도랑이 가로놓여 있어
그것을 둘이 손에 손을 잡고 뛰어 넘어야 하는데
그러기엔 둘다 어리고 아직 마음도 하나가 아니며
무엇보다
그 도랑은 너무나 깊고 심연처럼 무서운 것들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그런 도랑이 있다는 사실을
알긴 알되
그 정체는 모르고 있다.
그 도랑의 이름은 효린과 율군인데
둘 다 만만치 않은 상대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같은 기억을 공유해가면서
그 심연같은 도랑을 뛰어넘을 준비를 차근하근 하고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부부라는 이름으로 지내면서 남들로선
즉 효린이나 율군으로선 알 수 없는 유대감과 친근감으로
차츰 묶여가고 있었는데
그또한 효린과 율군을 초조하게 만드는
그들의 도랑이며
그들의 힘이 미칠 수 없는 도랑이기에
둘 다 그 도랑을 메워 버리기 위해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두 어린 부부는
친정나들이를 계기로 처음으로
한 침대에서 몸을 맞대고 잠자리를 잠시나마(?) 함꼐 했으며

등짝으로 대변되는
스킨쉽으로 둘 사이의 장벽을 단숨에 허물어버린다.

청춘남녀가 한 침대에서 티격태격하며 몸을 맞대었다는 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아니나다를까
동궁전으로 돌아와 다시 법도에 따라 각각의 처소로 갈라진 그들은
둘이 함께 했던 시간을 잊지 못하고

허전함을 못이겨 자석에 이끌리듯이 서로를 찾고
예정에 없던
한밤의 데이트(?)까지 하면서 사이를 돈독하게 다진다.

이어지는 여러 사건들을 통해
차츰 채경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신군과,

처갓집 나들이 후유증으로
우울한 신군을 위해 푼수짓도 마다하지 않고
몸을 내던져 즐겁게 해주려는 노력하는 채경,

신군의 은신처인 다락방까지 진출하면서
무심하게 그러나 당돌하고 씩씩하게
신군의 높은 성벽을 하나씩 허물며 공격해들어가다가
마침내는 묘한(?) 상황까지 벌어지는데
그때 채경은 신군에게
'다음 동작'을 원할만큼까지 되어 있었다.


그에 화답하듯
'어이~!!'
혹은
'야~!!'
라고 부르는 대신
다정스레
비궁마마? 라고 불러주고 전용차까지 마련해주는 등,
은연중에 배려를 아끼지 않는 것도 모자라
럭셔리 승마클럽에까지 드디어 채경을 진출시키는 것으로
나날이 체경에게 다가가던
신군에겐 친물을 끼얹는 사건이었으니...
제정신이 번쩍 들었을 게 뻔하다.
제정신이 든다는 것은 요주의사항이다.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갈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다.



그 장면에서의 채경의 심리는
설명이 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단순히 홀로 괴로와하는 율군에 대한 딱함이
그의 곁에 있게 한 원인의 전부일까?

만일 그렇다면
후에
'신군의 곁에는 많은 사람이 있는데..뭘'
이라는 발언으로
신군에게 안가봐도 되냐는 율의 질문에
계란 사건 때와는 정반대되는 대답을 함으로써
(그때는 곁에 있어주는게 아내의 도리라고 하는 것으로
율의 속을 뒤집어놓았으니..)
율군을 기쁘게 하는 건 좀 앞뒤가 안맞기 때문이다.
별로 가깝지 않을 때조차
이럴 땐 아내인 내가...어쩌구 하던 채경이
이제 많이 가까와진 그 무렵에
신군은 많은 사람들이 돌봐주니까..
어쩌구하면서
아내의 도리를 외면하다니?



율군이야 기쁘건말건 채경의
그 발언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그때까지의 채경의 신군에 대한 마음으로 봐서

단순히
왕자님 두분이 모두 낙마했음에도
황태자에게만 사람들이 몰리고
율군은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것에 대한
오지라퍼 채경의 배려 차원이라지만,
(난 오지라퍼가 질색이다. 하지만 대다수 로코의 여주 내지 남주는
쓰잘데기 없이 넓디 넓은 오지라퍼이다.)

배려가 지나쳐
남편이 어떻게 되었는지 관심도 없이 내버려둔 채
데이트까지 즐기다가
뒤늦게야 신군을 찾은 채경이는
아무래도 앞뒤가 안맞다 못해
이해불가이기 때문이다.


그 전에 무슨 일이 그들에게 있었던가?


있었다.
그것은 무의식 중에
채경으로 하여금 선뜻 신군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한
중요한 요인이 된다.
물론 그것을 제공한 것은 율군이다.



승마 클럽에서 일어난 일이다.

효린과 신군이 마주친다.
그 광경을 멀리서 채경이 지켜보고 있다.

그것은 마치
신군이 계란 세례를 받은 날
채경을 찾았다가
율과 다정하게 앉아 있는(그렇게 신군에게 보이는)
광경을 목도했듯이

그러나 실제론
채경의 마음이 온통 신군 걱정으로 가득했었지만
그것이
그림 상으론 전혀 다르게 신군에게 비춰졌듯이

실제로의 효린과 신군은
멀리서 바라보는 채경이 생각하는 것 같은
그런 다정스런 옛사랑의 재회는 아니었다.
미련에 가득차서 서로 애틋해하는 장면도
물론 아니었다.

애틋한 것은 효린이었을 뿐이다.
두 사람 사이가 어느 틈엔가 서먹해져가고
나날이 자기에게서 마음이 멀어져가고 있음을
여자의 본능으로 알아채고
서운함을 토로하는 효린과
매정하게 돌아서는 신군이 채경을 배려하는 한 마디로
쐐기를 박는 장면이었다.

그게 멀리서 바라본 채경이 상상한 그림의 진상이다.


그러나
그 그림과 그 그림에 대한 율군의 잔인한 설명은
무의식 중에 채경의 뇌리에 새겨지는 것이다.
더우기 그건 계란 사건 이후
두번째로 듣는 말인데
그때 듣는 거와는 천지 사이로
채경에겐 상처가 된다.
왜냐면
계란 사건 때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둘 사이는 가까와졌고
가까와진 만큼
바라는 것도 많아졌고

그 무게 만큼
상실감도 커진 것이다.

'지금 니가 있는 그 자리는
니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
효린이 자리야~!!'

그런데 그 말은
묘하게도 신군에게도 해당이 된다.

그러니 효린과 율은
둘 사이의 숙명적 도랑일 수밖에 없다.


같은 승마클럽에서
이번엔 신군이 바라보는 그림,
즉 율과 함께 있는 채경이다.

그들 또한 신군이 눈에서 불꽃이 튈 만큼
다정스런 대화를 나눈 게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림은 그저 그림일뿐
내막은 다른 것이다.

율군이 채경의 속상함에 찬물을 끼얹다못해
대못을 때려 박는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을 뿐이다.

그림은 그림일 뿐인 것이다.
하지만 물론 신군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결과  두 사람 사이엔
어느 틈엔가
다시금 서로에 대한 불신이 싹트고 있던 무렵에
낙마 사건이 터진 것이다.



물론
그런 불신은
서로에 대한 갈구의 또다른 표현이며
서로에 대한 갈구를 무심결에 강화시키지만
어떻든
겉으론 다시 한장의 그림이 그려지는데
서로에 대한 매정함과 거리감이다.

그 매정함과 거리감이 형상화된 것이
낙마 사건이다.


엄밀하게 보자면
내면적인 갈등 요소와 무관하게
채경이의 행동은 오지라퍼 정도가 아니라
참으로 경박하고 유부녀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게다가 황태자비답지 않은걸로는 두말하면 입만 아프다.

그녀가 조금만 생각이 깊었다면
경호원들이나 달려온 의료진에게
율도 돌봐줄 것을 명령하고
자신은 당연히 남편의 상태를 살피고
그의 곁에 있어줘야 했다.

그런 사려깊고 정숙하며 조신한 황태자비다운 행동을
채경에게 요구한다는 건
물론 무리겠지만....

그녀는 남편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율에게 달려가 안절부절못하고 걱정하더니
여기까진 그래도 딱한 율군의 처지를 생각하면
이해할 만 하다쳐도
그 후에도
그와 즐겁게 노닐다가
뒤늦게 나타나서
그제서야 많이 다친 남편을 보고는 호들갑을 떤다.

그 결과
신군의 발작적인 신경질과 짜증을 옴팡 뒤집어쓴다.

여기서 신군의 난폭한 언행이 단지
채경에 대한 분노와 질투 탓이라고
단순하게 결론짓는 것은 또한
신군에겐 부당한 일이 되겠다.

다시금 신군의 입장에서 보자.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만
당시의 그에겐
경호원도 의료진도 내관도 상궁나인들의 호들갑도
필요없었다.

그가 원한 건
채경이었다.
채경의 푼수섞인 호들갑과 수선스런 염려의 외침이었다.
그가 그토록 비웃었던 그런 것들이
이제 그에겐 꼭 필요하게 되버린 것이다.
그것이 그의 결핍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
그의 외로움과 부족한 그 무엇을 채워주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자기 곁에 있어주길 바란 채경은
엉뚱하게
라이벌 의식이 점차로 팽배해가고 있는 율에게
자기가 원하는 그것을 주고 있다.

율군이 누구인가~!
운명이 꼬이지만 않았다면
실제로는 채경의 정혼자이며
무엇보다
가장 큰 그의 열등감인 황태자로서의 적통성 문제의
당사자인 것이다.

여기서 율군이 채경에게 끊임없이 속삭였던 그 말

'지금 니가 있는 그 자리는
니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
바로 내 자리야~!!'

이 말이 이번엔 신군을 치는 것이다.



그는 그 순간에 좌절감을 느낌과 동시에
분노하고 실망하는데
그 역시 승마클럽에서 본 그림이 무의식 중에
작동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가 그렇게 분노와 실망하는 자신에게 놀라면서
다시금 자신의 세계로 뒷걸음쳐버렸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세계가 문을 닫으면
갈 곳이 없다.

예전의 세계로 돌아가는 길 밖에...

그래서 그는
아마도 그동안 우울하거나 혹은 뭔가 결핍을 느낄 때마다
그렇게 해왔을 것이 틀림없는 행동을 한다.


암실에 틀어박혀서
효린의 사진을 인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이 하나 있는데
그는 그 작업에서
조금도 위로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의 기분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
습관적으로 효린의 사진을 인화해서 나열하는 것에서
이제 그 어떤 기쁨도 설레임도 얻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이미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 그에게
예전의 세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울적하고 착잡한 마음으로
암실에 주저 앉고 만다.



그리고
그런 그의 암울하고 답답하며 어정쩡한 세계에
새로운 세계의 주인공인
채경이 들어온다.

다락방에 이어 암실까지

신군의 예전 세계를 상징하는
어둡고 쓸쓸하고 침침한 곳을
무심하게 침범하는 채경에게
그는 냅다 소리를 질러 내쫓아버리는데
그것은 앞서도 말했지만
단지 분노와 질투 때문만은 아닌

두 세계 사이에서 오갈 데 없어진
자신에 대한 당황스러움도 가미된
울부짖음인 것이다.


새로운 세게는 더 나아갈 수가 없고
그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하며
혼란만 줄 뿐이고

이전의 세계는 이미 아무런 감흥도 더이상
주지 못하는
당황스런 시츄에이션에
태자 전하께서는 직면하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태국행의 임무가 주어진다.

여기서 잠깐~!!

그가 단지 질투심에서
채경을 홀로 놔두고 떠났다고 단정짓는 것은
우리의 신군을 너무 단세포적인 인물로
생각하는 것이다.

아주 중요한 장면이 하나 끼어드는데

바로 황후께서 무지한 서민 황태자비에게 불만을 터뜨리며
여전히 명문거족의 따님을 태자비로 맞아들이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하시는 것을
태자가 엿듣는 것이다.

비록 감정적으로는 혼란스럽다하나
신군이 단지 질투심만으로 채경을 홀로 두고
태국으로 가버렸다곤 생각한다면
글쎄?


그는 그렇게 가벼운 인물이 아니다.
공식 외국 방문에
단지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당연히 동반해야할 태자비를 두고 홀로 떠나는 것으로
그날의 상실감과 분노를  갚아줄 성품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공사를 구별할 수 있는
냉철한 인물로 교육받아왔고
그렇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적인 감정을 공적인 일에 개입시킬 정도로
가볍고 경박한 인물은 아니다.

오히려
그가 채경을 놔두고 간 것은
그녀에 대한 대단한 배려라고 보는 바이다.

황후에 대한 반발,
멋지게 어마마마의 우려에 한방 먹여주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채경이라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

그런 것이 신군에겐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는 혼자 있고 싶었다.

채경과 떨어져 있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암실에서 그가 느꼈던 그 혼란스러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불투명한 채
그 사이에 어정쩡하게 끼어버린
혼란스런 자신의 감정을 정리할 시간도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선
일단 채경과 떨어져 있을 필요성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즉,

태국행을
단지 신군의 질투심으로 보는 단세포적 사고는 안될 말이며
아주 복잡한 그의 심리가 반영된 결정으로 봐야할 것이다.
또한
암실에서 그가 체험했던
예전 세계에 대한 자신의 무감흥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자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효린과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서
태국행은 필요악이었던 셈이다.

일석 삼조라고나 할까?


그리고
실제로 그 잠시 동안의 이별이
그들에게 많은 것을 준다.


그리움이다.

둘 다
상대의 부재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 가를
절실하게 체험하고
그 부재로 인하여 그리움을 느끼는 것은

무작정 부부로 출발하였기에
필요불가결하게
친구에서 연인으로 그리고 참다운 부부로

이렇게 거꾸로 관계를 발전시켜야할 그들에겐
필연적 과정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움을 통하여 깊어가는 마음을...



추신:
채경의 전화를 끝내 보이콧하는 마음은
자신의 그리움에 반발하는 잔인한 인내 플러스
기존의 신군이라는 인물의 성격에 아주 들어맞는 것으로
그렇게 신기하거나 지독한 일로 보이진 않는다.

그는 이미 자기도 모르게 빠져들고 있던
채경이라는 인물에게서
다시 빠져나오려고 기를 쓰고 있던 중이니까..

채경은
멀리 출장간 남편에게 전화를 거는 아내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그는 기존의 세계로 뒷걸음치면서
그녀의 아내 행세에 가세하기를 주저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그녀의 남편 노릇을 할 준비가 덜 되었음을 보여주며
또한 언제까지 그녀의 남편일 수 있을지 자신 없음까지 보여준다.

그래서 낙마 사건은
중요한 획을 그은 사건이 되는 것이다.

왜냐면
신군은 그 이후로 내내
채경과의 사이에 선을 긋고
그 선을 넘지 않도록 기를 쓰고 노력하는 것이다.
마침내 백기를 들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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