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추억(3) 본문
방학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학교에 갔다가
친구뇬을 만났다.
그가 세종문화회관에서 하는
어떤 음악회에 합창단으로
출연한다면서
같이 가지 않겠냐고 했다.
당시엔 음대 학생들은
그런 아르바이트를 곧잘 했었다.
나도 한 적이 있을 정도니..ㅋ
우린 함께 공연을 보러 갔고,
공연이 끝난 후에
여럿이 어울려서
술을 마셨고,
그러다보니
시간이 늦었다.
다들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어쩐 일인지 우리 둘만 남았다.
우린 약속이나 한 듯이
집으로 가는 대신에 그냥 걷기 시작했다.
아무 목적지도 없이 그냥 걸은 것이다.
깊은 밤,
텅빈 시내를 가로질르며
무슨 얘길 그렇게 주고받았을까..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걷고 또 걸은 기억밖엔..
세종문화회관에서
남산까지 걸었다.
남산 길에서 잠시
커피를 마셨던 기억이 난다.
벌써 새벽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그런데
피곤한줄도 졸린 줄도 몰랐다.
그게 젊음인가?
20대 초반의 무모한 젊음이
그런건가?
밤새 걸으며 별별 얘길 다했는데
새벽에
거리에 있으면서도
피곤하지가 않다니..
지금
노상 아무것도 안하면서도
피로에 쩔어사는 날 보면
막 대학에 입학했을 때의
그 발랄함이
새삼 그립다.
내게서 사라진 것들..
건강함.
청춘의 향기와 무모함..
그 따사로움들..
새벽빛이
어둠을 비집고 조금씩 밝아올 때
우린 다시 걷기 시작했고,
그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때까지 우린 손도 안잡는 사이였던 것이다.
난 그가 내민 손을 잠시 바라보다가
천천히 잡았고
우린 그렇게 손에 손을 잡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 걷는 여행은
결국
그 친구뇬이 사는 과천의 아파트까지 이어졌으니
대단하다.
우린 그 친구네 집에서
아침 비슷한 걸 얻어먹고,
잠시 있다가
다시 시내로 나왔다.
이번엔 명동을 데려갔다.
그리고 거기서
겨우 헤어졌다.
거의 24시간에서 몇 시간이 부족한 시간을 함께 보낸 것이다.
난 왜
그걸 잊고 살았을까?
그런 순간이 내 인생에 있었다는 걸
왜 까맣게 잊었을까?
그와 헤어진 후에
간간히 들려오는 그의 소식을 들으면서도
왜
난 저런 순간들을
전혀 떠올리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