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장국영의 눈빛과 그의 죽음-2008.07.30 본문
어렸을 때
난 장국영팬이었다.
당시는 홍콩느와르가 한국에서 판을 칠 때라
마치 지금의 한류가 아시아를 휩쓸듯이
홍콩 배우들과 그들의 영화가
한국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을 무렵이었다.
당시의 대세는 주윤발이었던 것 같은데,
난 이상하게 주윤발보단
장국영쪽에 더 끌렀던 것 같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뒷북치는 건 지금이나 그때나 비슷해서
한참 영웅본색이니, 천녀유혼이니
떠들썩할 땐
관심도 없다가
어느날 무심코 빌려다본 천녀유혼을 보고
그야말로 뻑이 가버린 것이다.
천녀유혼은 뒷부분의 혼란스런 컴퓨터 그래픽에 의한
귀신과의 싸움 같은 것은 전혀 내 취향이 아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색채와,
전편에 걸쳐 흐르는 신비로운 음악,
그 음악과 어우러지는 영상미,
그리고
어리버리한 장국영이 귀여워서
좋아했다.
이상하게 난 마이너적 감성을 가진건지 모르지만
그 영화에서 실제로 유명한 건
장국영이 아니라
아름다운 귀신
왕조현이었지만,
그녀에겐 별로 감흥을 가질 수가 없었다.
또한 그들의 사랑에도
멜로엔 늘 무관심한 것이
어린 시절에도 그랬던 것인지
별로 큰 느낌은 없었다.
그러니까
마치 궁에게 내가 품은 것처럼
내가 그 영화를 좋아한 이유는
매우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
그리고 장국영이 맡은 배역(이름이 기억 안난다...)인
어리버리 순진남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한 것은
배우 장국영이 아니라
가수 장국영인 것 같다.
솔직히 난 배우 장국영은 영 별로이다.
난 그의 노래들과 음색을 좋아했다.
홍콩사람답지 않은
허스키하고 특색있는 묘한 음색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내가 그를 막 좋아할 무렵,
그는 은퇴해버렸다.
당시 우리나라엔
장국영 팬클럽이 있었는데,
물론
그것은 정식 팬클럽이라기보단
장국영의 광팬이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팬클럽이었지만,
그 팬클럽 회장에게 연락하여
친구로 만들어버렸다.
이후로 우린 굉장히 친한 사이가 되어
난 많은 특혜(?)를 입을 수가 있었는데,
좀처럼 구하기 힘든
그의 많은 공연 비디오 테이프 같은 것을
그 친구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난 가수 장국영의 고별콘서트를 보고
엄청스럽게 그에게 반했으나,
동시에
참 묘하게도
그 테잎을 보면서
어렴풋이
'장국영은 어쩐지 호머일 것 같아...'
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한 일이다.
그건 그냥 그를 바라보면서
그라는 남자가
굉장한 나르시즘에 빠져 있으며,
그런 남자는 여자에겐 쉽사리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것과,
그가 호머들이 좋아할만한
자그마하고 이쁘장한 남자라는 것 등등의 이유로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쳐간 생각이다.
물론
난 그 생각을 곧 잊어버렸다.
지금까지 내가 좋아했다고 말할 수 있는 배우가
장국영과 또 한 사람의 한국 배우,
그리고 주지훈이 되겠는데,
우연히도
난 그 세 사람을 모두 내 눈으로 직접 보았다.
장국영의 경우엔
내동생도 같이 좋아했기에,
우린 어느날
장국영이 갑자기 컴백하고, 방한한다는 기사를 보자마자
공항으로 달려가서
장국영을 보았던 것이다.
지금도
오래 전 일이지만
공항(그때만해도 김포공항이었다)의 입국문을 통해
나오던 장국영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는 나오기가 무섭게
그를 기다리던 많은 팬과
기자들에게 에워싸여버렸다.
그러나
운이 좋았던가,
내 동생이
장국영이 신라호텔로 간다는 정보를 들었다는 것이다.
우린 재빨리 신라호텔로 자리를 옮겼다.ㅋㅋ
지금 생각하니
참 재밌는 추억이다.
난 그날
장국영을 싫증날 정도로 보았다.
그 팬클럽 회장 친구에게 연락해서
그 친구가 달려온 덕분에
우린
그의 기자회견장에까지 들어갈 수가 있었고,
난 몇 시간에 걸친 기자회견에서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그의 목소리를 실컷 들을 수가 있었다,
그는 은퇴한 이후 캐나다에 거주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그래서인가
영어를 매우 유창하게 구사하고 있었다.
그 전에도 한국에 올 때마다 인터뷰를 햇지만
그때보다
훨씬 더 영어에 능숙해졌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런데
장국영을 그렇게 원없이 본 결과
난 장국영에게 흥미를 잃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그를 실컷 보았기 때문이 아니다.
어느 순간 본 그의 눈빛 때문이다.
기자회견 전에 있었던 일이다.
장국영은 객실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왔는데,
정말 기막힌 우연에 의해서
나 또한 바로 그때 엘리베이터 앞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난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를 볼 수가 있었다.
그때 난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는데,
내 성격상 그때도
아무리 좋아하는 배우라도 그가 내 눈앞에 있다해서
펄쩍펄쩍 뛰거나
긴강하거나 뭐 그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굉장히 냉정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난 그의 눈을 보았던 것이다.
아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엘리베이터 문은 곧바로 닫혔으니까.
그 전까지 그는 계속 취재진과 함께였으며,
그래서 으례적인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는데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순간,
갑자기
표정이 달라졌다.
물론
난 그런 것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취재진과 있을 때와
혼자 있을 때의 모습이 아무리 배우라 한들,
아니 배우이기에 더더욱
같을 순 없다는 걸
그때도 이해했으니까.
그런데
그의 눈빛을 봤을 때
난 무척 놀랐다.
그건 그야말로 텅빈,
너무나 공허하고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고
거의 황폐하기까지 한,
그래서 무섭기까지한 눈빛이었던 것이다.
난 그때 그 순간의 그의 눈빛과
그것을 보면서 놀랐던 내 마음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눈빛이 그에 대한 사랑을 지워버린 것 같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저 난 그 눈빛이 싫었다.
물론 그 즉시 일어난 반응은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생생한 그 눈빛이 그에 대한 호감을
점점 죽여간 것이다.
그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에
난 그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층 빌딩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난 단 한순간도
그가 자살했다는 걸 믿지 않았다.
왜냐면 그래도 한때 팬이었기에
난 그에 대해선 남보단 좀 지식이 있었고,
또 지식이 없다해도
그라는 사람을 조금만 관찰해도
그의 지독할 정도의 나르시즘을 알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자살하고 싶어서
그걸 실행에 옮긴다면
굳이 만인 앞에
자신의 주검을 드러내어
처절하게 망가질 것이 뻔한
모습을 보여줄 리가 없다.
(고층빌딩에서 뛰어내리면 모습이 망가질 건 뻔하지 않은가~!
그런데 실제론 그렇게 망가지지 않았다니 더더욱
믿을 수 없다)
자살하고 싶다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뭣때문에
굳이 그렇게 대중 앞에 널브러지는 방법을 택하겠는가~!!
그 이후로
그의 죽음에 대한 여러가지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난 물론 그에 대한 사랑이 식은 후라,
놀라긴 했지만, 솔직히
큰 관심은 없었다.(그래..난 그토록 비정한 인간이다..ㅠㅠ)
얼마 전엔가,
그의 죽음 이면에
홍콩 마피아가 개입되었다는 소식을 어렴풋이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이유가 뭐든,
난 결코
그가 자살했다고 생각지 않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