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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담임 선생님

모놀로그 2010. 6. 6. 11:23

초딩 시절..

그러니까 초딩 2학년까지

난 그다지 눈에 뜨이는 애가 아니었다.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때가 기억난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와 아빠는

지나칠 정도로 나의 초딩 입학에 들떠 계셨던 것 같다.

난 종일 부모님을 따라다니며

고급 옷에 구두에

기타 별별 선물을 다 받았고,

이어서

매일같이 부모님이 번갈아가며

학교로 찾아와 대견하다는 듯이

나를 지켜보다 데려가시곤 했던 것이다.

 

나보다 일년 먼저 입학한 오빠에겐

전혀 그러지 않았음을 생각할 때,

아마도 아빠의 유별났던 나에 대한 편애가

원인이었나보다.

 

오빠를 나름 사랑했던 엄마는

당시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러나

난 학교 생활을 잘 하지 못했다.

내성적이고, 두려움에 가득찬 조그만 아이였다.

 

2학년 때는 정말 공부를 못했다.

담임은 탐욕스럽게 생긴 늙은 여자였다.

나한테는 관심도 없었다.
엄마는 1학년 때만큼 나한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한번도 학교를 찾아오지 않았는데

그 여자는 자기를 찾아오지 않는 학부모를 가진 애들에겐
매정했다.

난 지금도 공부를 지지리 못했던
2학년 때를 생각하면 이상한 생각이 든다.

시험만 보면
엉망진창인 점수를 받았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에게 내가 그런 소릴 했던 것인지
아니면
내 성적이 엉망이라 그런 건지
엄마 나름으로 그 세계의 애카니즘을 알았기 때문인지
학교에 오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 날은 토요일이었는데
난 그 소릴 담임에게 했던 것 같다.
아니면 엄마가 담임에게 전화를 걸었던 걸까?

그 담임은 그날 내게 무척 친절했다.
난 그 여자가 내게 던지곤 하던
징그러운 미소를 지금도 기억한다.

엄마는 오지 않았고
난 교무실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특혜를 누렸다.

그날
담임은 일직이었나보다.

다들 퇴근한 텅빈 교무실에
그 늙은 여자와 꼬맹이 나,
둘만 남아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끔 전화벨이 울리면
난 그리로 달려가서 혹시 엄마의 전화가 아닐까 기대했다.

내가 감히 전화까지 받았는진 기억에 없다.

단지 구역질나는 건
그 여자가
내가 그런 짓을 하는 것을
예의 재수없는 미소와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엄마가 찾아와서 주고갈 봉투가
그토록 그 여자는 탐이 났던 걸까?

그 몇푼이 그토록 그 여자에겐 대단했던 걸까?

결국 엄마는 오지 않았고
난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고

남은 2학년 생활은 암흑 속에 묻혀버려서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3학년 때
우린 아주 멀리 이사를 했다.



전학을 갔다.
3학년 막 시작하면서 전학을 간 모양이다.
지금도
교실에서
날 인사시키던 선생님이
바로 나의 3학년 담임이었던게 기억나니까.

난 바보같은 2학년을 마치고
대개의 아이들이 그렇듯
3학년 무렵엔 부쩍 성장해 있었다.
2학년때처럼 주눅들어 있지도 않았다.

그건 아마도
3학년 담임이 내게 쏟은 기막힌 사랑탓이 아니었을까?

난 학교 생활 내내
아니
그 누구에게도
그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 선생님은
집이 학교와 가까왔고
아직 처녀였다.
그리고 미술에 조예가 깊어서
그림을 그리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 선생은 첫눈에
날 좋게 보았던 모양이다.

날 따로 불러서
이런저런 질문을 하다가

문득

너 참 예쁘게 생겼구나

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난 그반의 총아였다.

선생의 총애를 온몸에 받으며
빛나는 아이였다.

야무지고 똑똑한 아이가 되었으며
개성도 뚜렷해져갔다.

공부도 당연히 잘했다.

담임이 관심을 가져주니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나의 3학년 시절은
담임을 빼면 형성이 안된다.

우린 마치 사랑하는 연인처럼
언제 어디나 붙어다녔다.

난 그 선생 덕분에
참 많은 경험을 했다.

그 선생네 집에 가서 하룻밤 잔 것도 같은데
그건 확실치가 않은 기억이다.

2층집이었던 것 같은데
거기서 그림을 본 것도 같은 걸 보면
또 가긴 갔던 것도 같고...

하여튼
수업이 끝나거나
담임이 당직인 날은
반드시 날 불러서
데리고 다니면서
처음 먹어보는 맛있는 빵이며 음식을 얻어먹었다.

가끔은 일요일에도 불러서
날 데리고 교외로 나갔다.

지금 생각하면

산정 호수도 그때 처음 갔었다.

거기서 담임은 그림을 그렸고
난 옆에 앉아서 그것을 구경하다가
담임이 싸온
혹은 엄마가 싸준 건지 모를
김밥도시락을 나눠먹었다.

선생의 총애를 듬뿍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엄마는
비록 찾아오진 못해도
자주 촌지를 보냈던 것 같다.

그때 난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래끼가 심하게 났는데
거의 달고 살다시피했다.

심할 때는
아래 위에 동시에 나서
눈을 아예 가려버리기도 했다.

엄마가 건네준 촌지를
내가 담임에게 전달하면
담임은 그 돈으로 내게
맛있는 빵도 사주고
다래끼가 심하게 난 나를 안쓰럽게 여기고
그 돈으로
약방에 데리고 가서
약을 사먹이기도 했다.

그 여자는 작은 몸집에
성깔 있게 생겼고 실제로도 성깔이 있었다.
수업 시간엔 무서운 선생님이었다.
나도 잘못하면 수업시간엔 손바닥을 맞았다.
아무리 날 총애해도
결코 특별 취급은 하지 않았다.

그 여자가 날 특별취급하는 건
단지
수업이 끝난 후와
주말뿐이었다.

그 청렴함과 순수함 결백함 고지식함
그리고 넘치는 사랑은
아마도
그녀가 젊고 처녀였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지금은 생각한다.

난 정말 행복한
유일무이하게 행복한 3학년을
꿈처럼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3학년이 끝나고
4학년이 되면서
어쩔 수 없이
난 그 담임과 헤어져야했다.

난 그게 너무 슬퍼서
눈물을 흘렸고
가슴은 담임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4학년 담임은
이상하게
지금까지 얼굴이 기억난다.

한 마디로
못생기고 무력해보이고 심드렁하게 생긴
중년 여자였다.
어쩜 내가 어렸기에 중년으로 봤을지도 모른다.

하여튼
이쁘진 않지만
야무지고 똑소리나는
그러면서 나에게 사랑을 퍼붓던 3학년 담임처럼
20대 처녀 선생 아래서
꿈같은 3학년을 보낸 내게
그 여자는 마귀할멈처럼 보였다.

난 4학년이 되면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매사에 자신 없고
눈에 뜨이지도 않고
친구도 없고
공부도 못하는 아이가 되버린 것이다.

난 외롭고 추웠으며
매사에 흥미가 없었다.

학년이 바뀐 초기에
난 그리움에 못이겨
옛담임을 찾아간 적이 있다.

그 선생도
4학년을 맡았던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찾아가서
교실을 살짝 들여다보았을 때

그 여자는
역시
어떤 아이와 단 둘이 마주 앉아서 웃고 있었다.

그때의 충격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선생은 나를 잊은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대상을 찾아서
내게 주었던 그 관심과 사랑을 주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난 교실 안으로 들어가서
인사를 했다.

그리고
으례적인 미소와 건성으로 맞아주는
선생의 태도를 보고 돌아서서

다신 찾지 않았다.

그 여자는
그렇게
담임을 맡으면
누군가 자기 맘에 드는 아이를 찾아내서
그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애인처럼 밀착된 관계를 유지하다가
학년이 바뀌면
돌아서서 잊어버리고
다시 다른 애를 찾아내는
그런 여자였던 것이다.

나여서 날 사랑한 게 아니었다.

그저
그 반에서
내가 제일 이쁘고
자기 맘에 드는 뭔가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 여자는 키가 작고 피부엔 여드름이 가득하고
이쁘지 않았다.

그래서
이쁘장한 애들을 좋아했던 게 아닐까?

어떻든 어린 맘에도
그 여자가 그다지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고

그 여자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지속되었는진 모르겠지만
그보단 환멸이 더 컸고
환상에서,
내가 대단한 아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

다시금 담임의 무관심 속에서
그저 그런 아이가 되버린 것이다.

아니
차라리 열등생에 가까왔다.

담임은 내게 관심도 없고
눈길도 주지 않았고
나도 담임이 싫었으며

친구도 없고
오히려
왕따에 가까왔다.

날 괜히 싫어하던
어떤 아이가 기억난다.

그 아이의 숨결엔 항상
식초 냄새가 났다.

당시엔 이유를 몰랐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혹시 그 아이는
위에 문제가 있었던게 아닐까?

위산과다같은...

하여튼
그렇게
난 5학년이 되서
다시 전학가기 전까진 별볼일 없는 아이로 지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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