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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늦가을의 추억

모놀로그 2024. 11. 26. 20:30

가을비가 돌풍에 섞여서 종일 몰아친다.

잠시 지친 듯 쉬었다가 또다시 휩쓸고 지나가는데

 그때마다 은행잎이 미친 듯 날아다닌다.

 

그러나 저녁 무렵 다시 나갔을 때는

젖은 아스팔트 위에 달라붙어 있다.

 

그 광경은 늘 내게 떠오르게 하는 그 장면을 다시금 일깨운다.

정확히 92년 12월 초의 어느 오후,

갑자기 맑고 밝던 하늘이 내려 앉을 듯 무거워지더니

한 밤중처럼 변하며 엄청난 폭우와 바람이 세상을 무너뜨릴 듯한 기세로 퍼부었다.

그것은 곧 지나갔지만

그때까지 비교적 싱싱하게 매달려 있던 플라타너스 잎사귀가 모조리

저버렸다.

그 플라타너스는 비좁은 2차선 도로 위, 검게 물들은 아스팔트 위를 가득 메우고 있었는데

난 2층에서 그 광경을 경이로운 눈빛으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젊음의 환희, 아름다운 것을 보는 시선의 다름,설레는 마음,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찬미,

자연의 조화에 대한 경이로움 등등에 휩싸여 있었던 것이다.

 

지금 초라하게 아스팔트에 달라붙어 곧 사라질 운명의 은행잎을 바라보는 내 마음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것이 서글펐다.

 

가을은 신의 선물이다.

삶의 애상,사라져가는 것의 아름다움,너무나 짧은 젊음의 추억,

등등을 담고 우리에게 동정과 동질감의 눈길을 던진다.

그 순간에 겸허해지고, 서글퍼진다면 나이가 든 것이다.

 

설레고 아름답다고 느낀다면 팔팔한 젊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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