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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와 삶

모놀로그 2024. 11. 20. 18:34

내 엄마가 치매라는 치명적인 충격과 슬픔을

난 극복했다.

물론 그렇게되기까지 온갖 발작을 거쳤지만.

난 주님을 믿기에 주님의 도움이 있었다고 신뢰하고 있다.

성당에 가고 싶다.

영성체가 하고 싶다.

언제쯤 그것이 가능할까?

난 어느덧 엄마가 없는 생활을 꿈꾼다.

아무도 날 구속하지 않고

똥치우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나 혼자 나만의 생활을 영위하는 꿈을 꾼다.

 

내 엄마는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토록 두려웠던 그 상황을 난 인정하고 극복했기 때문이다.

 

이젠 두렵지 않다.

 

집을 깨끗하게 해놓고

피아노를 치고

성당에 가는 것을 꿈꾼다.

소피와 함께 산책을 하고

시장을 돌아다니고

쇼핑을 하고

마사지도 하고

그러면서 하루하루 보내는 것을 꿈꾼다.

 

지금의 난 마음의 여유가 없다.

 

엄마는 매우 유순한 치매환자이다.

단지 변을 아무데나 본다.

 

그럼 난 그것을 치우기 위해서

몇 십분을 기어다녀야 한다.

 

엄마...

내 엄마...

어디로 가 버렸을까?

품에 안겨서 날 쓰다듬는 부드러운 손길은 여전하지만

이미 예전의 엄마는 아니다.

 

이상한 일이다.

 

인생에 대한 믿음이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이런 일이 있으리라곤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다.

 

맨홀은 어디에나 있다.

난 언제든 거기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

빠지고 난 후에야 깜짝 놀라고 울고불고, 화를 내고 머리카락을 쥐어 뜯으며 한탄하고

그러나 결국에 주님이 날 거기서 꺼내 주시며

그럴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라고 알려주시며

눈물을 닦아 주신다.

 

지금의 생활, 하루하루는 내 것이 아니다.

다시금 불면의 밤을 보내고

그러나 불안증은 사라졌다.

포기했나보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다.

엄마가 좋은 곳으로 떠나주기를...

 

하지만 그 후에 과연 내가 꿈꾸는 그런 생활을 할 수 있을지 어떻게 알랴?

 

아무것도 꿈꾸지 말자.

꿈꾸지 않는 인생은 끔찍하지만

인생은 절대로 꿈꾸는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엄마가 무릎 수술을 하면

엄마와 함께 은행잎이 쏟아져내리는 가을길,

짧은 가을이나마 즐기는 것을 꿈꾸었지만,

엄마는 섬망인지 치매인지 알 길 없는

어디론가로 떠나버렸고,

난 혼자 남았다.

 

외롭고 무섭고 슬프고...

그러나 그것도 이젠 지나버렸다.

불과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안에 벌어진 일들이다.

 

그러니

엄마가 언제나 떠나줄지

엄마가 떠난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또 뭐가 끔찍했던 올 한 해를 마무리하려고

검은 눈을 번득일 지 알 길이 없다.

 

인생은 이제

무서운 것이 되었다.

 

끔찍한 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지만

기쁘고 설레는 사건은 절대로 벌어지지 않는

그런 시절이 도래한 것이다.

 

젊음은 그러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이든 다는 것은 그러한 것이었다.

 

난 그렇게 나이들어가면서 인생을 배운다.

배우면서 그것들을 버린다.

왜냐면 난 거기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배울 것이 없다.

생은 스스로 정신 속에서 자신을 구원하지 않으면 끔찍한 것이라고

루이제 린저는 말했지만 그것 또한 거짓말이었다.

 

치매라는 것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누구에게 덮칠까 어둠 속에서 우릴 노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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