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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훈/궁

궁 6부 - 신군의 질투, 그 이면엔?

모놀로그 2011. 2. 2. 11:00

언젠가부터인지 모르지만
아주 조금씩
그들이 함께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늘 붙어 다니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나, 궁에서나

하다못해 생파에서도..

 

 


 

그 아이에게 관심이 없음에도

웬지 짜증이 났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있을 때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발랄하며 생동감넘치는 그 아이의 모습에
동경을 느끼기도 했다.

왠지 자신보단 율과 함꼐 있는 것이 더 편해 보이는 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도 그렇게 편한 모습이었으면
하는 생각 따윈 물론 가져본 적 없지만,

어떻든 그들이 뿜어내는
나이에 맞는 발랄함과 활기 그리고
살아 있는 듯한 생동감이
자신을 둘러싸고 시체처럼 늘어져 있는
나른한 존재들...
이른바
진골들에 둘러싸인 자신까지
죽은 사람처럼 여겨지게 하는 그들을 비롯한
자신의 세계에 염증을 느끼게 하고
그래서 그는 자기도 모르게
그 아이가 선물로 준 신발을 신어본다.

그러면
그 아이의 세계로 걸어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듯이.
아니
그렇게 그 아이의 자유로운 상상력이 담긴
신발을 신는 것만으로도
자신도 자유로와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듯..

 

 

 

 

 

 

그런 자신의 꿈을 가로막듯
이전의 세계가 다가온다.
다가와서
다시금
세상과 단절시킨다.

그는 어정쩡하게 두 세계의 사이에 끼어서
어느 쪽에도 발을 확고히 내딛지 못하고 있다.

지난 세계가 더 익숙하고 편하긴 하다.
그러나
방금 본 그 생동감과 비교하면
어쩐지 답답하고 구태의연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유약한 황태자는
이전의 세계를 상징하는
효린을 거부하지 못한다.

 

그녀가 자기에게 끼워주는 엠피쓰리의 이어폰을
거부하지 못하고
결국
세상과 차단시켜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그녀에게 굴복한다.

그러나
그는 이미 새로운 세상에 한발을 내딛었다.
그 신발을 한쪽 밖에 신지 못했듯이

불완전하게나마 어떻든 한발은 그쪽으로 걸친 것이다.

아마 그것이 신군 생파의 핵심이리라.


 

 

 

다음날
그는 다시 한번 그들이 함께 있는 광경을 본다.

그들이 테라스의 화사한 빛 속에

나란히 앉아 있는 광경은,

실제로 그들이 동궁전에 살고 있는 사이 좋은 황태자 부부같다.

 

하기야, 일이 제대로 풀렸다면

그들은 정말 황태자 부부인 것이다.

 

율이는 마치, 동궁전이 자신의 집인양

편안하게 보인다.

그리고 자신의 비와 따사로운 햇살 속에서

행복한 한 쌍을 이루고 있다.

율군과 함께 있는 채경은 그 푼수스러움이

그대로 사랑스러움으로 보이는데,

아마 그것은 율군이 그녀의 그러한 세계를 포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일단 신군의 심기를 건드린다.

 

황태자인 자신의  비가 실제 정혼자라고 해도 좋을

율군의 곁에 편안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웃고 있다.

 

신군 앞에서 채경이는 웃은 적이 별로 없다.

아니 벌써 몇 번이나 울렸다.

자기가 울린 채경이를 율군은 웃게하고 있다는 것이

어쩐지 속을 뒤집는다.

그 또한 생파의 여파이리라.

 

 

 


이윽고 채경과 율이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틀림 없이 둘이 궁 안 어디선가 놀고 있으리라..

그 생각만 해도 울화통이 치민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왜 화가 났는지 물론 이해하지 못한다.

 

 

 

 

 

 

아닌게 아니라, 그때 채경은 율군과 더불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름다운 궁궐 안은 가을이 무르익어가고 있다.

율군이 채경을 데려간 곳은 자신의 비밀 장소인

명선당이리라.

 

 

율군은 그때까지만해도 채경의 수호천사,

곧 이어질 한시 타임에서 써먹을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기까지 한다.

 

 

 

 

두 아이가 함께 보내는 시간은 아닌게 아니라

참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동궁전에 있는 살벌한 얼음 왕자 신군과 너무 비교된다.

 

 

 

신군은 독이 올라서 굳이 파빌리온에서 펜싱 연습을 하고 있다.

 

뒤늦게야 동궁전에 나타난 그녀에게
햄릿을 인용해서 야유를 퍼붓는다.

그때의 신군의 심리는 단순히
질투라고 단정 짓기엔 조금 복잡할 듯 싶다.

 

 

물론 저변에 깔린 건 질투도 있지만

그보단, 채경의 행실에 관한 못마땅함도 가세한다.

 

동궁전의 실제 주인이자,

실제 황태자 부부였던 율군과

바로 자신의 영역인 동궁전에서 허물없이 지내는 것에 대한

분노이다.

또한, 어떻든 지금은 자신의 아내요, 황태자비임에도
그걸 망각하고
시동생격인 율과
학교에서처럼 친구로 대하는 것
그것이 못마땅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마음 속 깊이에는
두 사람의 간격 없어 보이고 허물 없어 보이는 모습에
질투심이 있었을 것이다.

신군처럼 외로운 사람은
설사 자신이 관심이 없는 것이라해도
혹은 그가 그렇게 믿고 있을지라도

그것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
강력한 소유욕을 느끼기 마련이다.

무시를 하던 장난을 치던 울리던
자신의 영향권에 두고 싶어한다.
자신만 바라보고
자신의 의사에 따라 울고웃기를 바란다.

근데
그 아이는
자기 손안에 잡히지 않는다.

황태자비의 복장을 하고도
학교에 있는 것처럼
아무런 자각도 의식도 조심성도 없이
스스럼 없게
율과 어울리고 있다.
궁 안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채경이가 아니라,

율에 대한 분노가 채경을 향해 폭발하는 건지도 모른다.

밑바닥엔 율군에 대한 자격지심도 없지 않다.

그들은 너무나 잘 어울리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채경에게
기본적인 품격 운운하며
비꼬는 것이다.

누군가
단순히 율에 대한 질투로
그녀에게 햄릿을 인용해서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다고 했지만
그건 심한 비약이라고 본다.

약간의 질투심 더하기 황태자비답지 않은 행동을
그것도 바로 자신의 거처에서
거침없이 하는 그 경박함을 다름 아닌

동궁전의 실제 주인이라고 해도 좋을

율군과 더불어 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분노도 컸으리라고 본다.

왜냐면
신군은
뼛속까지 황태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누르고 또 누르면서
황태자로서 살아 왔기 때문이다.

그 황태자로서의 체통을
다름 아닌 황태자비가 무심하게 허물곤 한다.

그는 그게 화가 났던 것이다.

학교나 생파에서 그러는 것까진 몰라도
자신의 세계에서까지 그러는 건 참기 힘들었던 게 아닐까?

 

 

 

 

 


그러나
의외로 예민하고 섬세한 신군,
그녀가 제주도의 생파에서
진골과 효린에게 왕따당했다는 사실을
그녀의 입으로 듣자
굳이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체하려 했던
자신의 비겁함에 자기도 모르게
움찔하면서도
핵심을 찔린 자의 분노에 사로잡힌다.

 

 


그는
어차리 우린 서로가 서로를 만족시켜줄 수 없다고 외친다.

우리는 사랑해서
우리가 원해서
혼인한 게 아냐~!

넌 나의 아내가 아냐~!
내가 황태자가 아니었다면
다른 사람이 황태자였다면
넌 그의 아내가 되었을테니까~

우린 우연히 부부가 된 것이지
그게 우리에게 필연은 아니야~

결혼이 비록 우리의 선택이었다곤 하지만
그건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을 뿐이잖아

난 널 싫어하고
너도 날 좋아하지 않잖아.

하지만
제발
내 공간에서만은
황태자비답게 굴어줘~!

니가 그럴 수 없는 애라는 것도 알고
기대도 안하지만
그래도
너 때문에
나까지 황태자로서 살아온 그 지겨운 세월이
아무것도 아닌 걸로 되는 건 싫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