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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주말의 행복

모놀로그 2022. 12. 17. 14:48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나도 주말을 좋아한다.

 물론 학교 다닐 때, 특히 대학때가 엄청 좋았다.

아니, 그때부터 진정한 주말의 행복이 시작되었다.

 

대학에 가면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사실은,

주말이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이나 된다는 것과,

방학이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시작된다는 것,

 

담임이라는 것이 없어서, 그냥 마지막 시험만 끝나면 그 순간부터

3개월 가까이 학교에 안 가도 된다는 것과,

심심해서 학교에 놀러가면,

거기엔 늘 친한 친구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

그럼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먹고 마시고 놀았다는 것,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썸타는 친구가 그 중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의 주기가 매우 짧은 내가 평생 그러했듯,

난 곧바로 그들에게 싫증이 났다.

그래서 난 오로지 피아노 연습에만 몰두했고,

학교는 거의 가지 않았던 것 같다.

 

학년이 높아지면서

하루에 한 두 시간 수업 밖에는 듣는 과목이 없다보니

등교는 하되, 곧바로 택시를 타고 근처에 사는 고딩 친구네 집으로 출근하다시피 했다.

그 아이와 하루 종일 수다를 떨다보니

헤어지기 싫어서 애틋해졌을 정도가 되버렸다.

 

그리고 졸업하고 나서도,

난 피아노 학원 강사에 이어, 직접 내가 운영하기도 했지만

그때도 토,일요일은 내겐 꿀같은 휴식이었다.

 

난 당시 학원에 방을 만들어 살고 있었는데,

청소를 하고 빨래도 하고,그 다음엔 하루 종일 야구를 보면서 혼자 놀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건강이 나빠지고, 일을 그만두고, 내겐 모든 날이 주말이었다.

아니, 영원히 방학한 학생 같았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진다.

즉, 내게서 주말의 행복도, 불금도 사라진 것이다.

 

일을 할 때는 내게도 불금이 있었다.

그날은 성당 친구들과 곱창에 술 한 잔 마시고,노래방에 가서 미친 듯 노래하며 놀다가

마지막은 칵테일로 우아하게 마무리했다.

 

하지만 그것도 금새 싫증이 나버려서

난 그 사람들과도 멀어져서 혼자 주말을 즐겼다.

 

일을 그만두고 집으로 들어가서 딩굴거리며 컴퓨터와 노는 동안

내게선 주말이라는 개념이 사라졌다.

어쩌다 금요일에 밖에 나가면

불금답게, 가뜩이나 먹자 골목에, 온갖 유흥거리에, 로데오 거리가 발달한

이 근방은 모든 가게가 온갖 나이대의 사람들이 즐겁게 불금을 만끽한다.

 

난 전혀 그들이 부럽지 않다. 그리고 슬며시 웃는다.

그리고 오늘이 금요일이었구나 깨닫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겐 다시금 주말의 행복이 찾아왔다.

금요일이 되면 괜히 즐겁다.

지루한 월화수목이 지나고 곧 주말이 온다고 생각하며 즐거워한다.

우습지 않은가?

 

왜 내가 주말을 즐거워한단 말인가,내겐 모든 날이 주말과 다를 바가 없는데...

 

더 웃긴 건,토요일이다.

토요일이 지나면, 난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오늘이 월요일이라고 먼저 생각한다.

그래서 괜히 우울해한다.마치 출근할 사람처럼....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아니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그럼, 더더욱 즐겁고 마음이 푸근해진다.

마치 휴식할 시간을 하루 더 얻은 것처럼.

 

그리고 그런 내가 우스워서 슬쩍 미소짓는다.

이건 또 뭐하는 시추에이션인가?

 

나도 참 가지가지 하는구나.

사는 게 너무 한가하구나.

아니, 난 한가하지 않다.

언젠가부터 삶은 나에게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즉, 내 마음은 늘 쫓기고 있고,실제로 내 몸도 그렇게 편안하지 않다.

 

하지만 사회에서, 직장에서, 사람들 틈바구니의 의미없는 지옥 속에서 시달리지 않는 축복(?)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왜 내가 월요일을 싫어하고, 불금을 반기고,일요일이 남았음에 만족감을 느끼는거지?

 

가끔 인생은 재밌는 장난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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