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사라진 낭만-포장마차 칼국수 본문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은 요즘 개발이 한창이다.
GTX 공사로 인해 벌써 6년 째 내 식으로 표현하면
'엉망진창'이다.
공사 지역 부근은 전엔 가장 붐비던 구역이었지만,
지금은 상권이 거의 죽어버렸다.
지하철 입구 중에서도 가장 활발하게 유동 인구가 많아
주변엔 온갖 종류의 포장마차들이 늘어서 있다.
하지만,
1990년 대부터 이 구역의 특색은 칼국수 포장마차였다.
처음엔 한 두 개 정도만 간소하게 있었다.
국수를 좋아하는 내겐 최고의 선물이었다.
일이 끝난 후에, 기진맥진해서 저녁을 먹을 기운도 없을 때
그러면서도 뭔가 맛있고, 허한 속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아주 맛있는 뭔가로
배를 채우고 싶을 때,
난 밖으로 뛰쳐나가 포장마차 칼국수를 포장해서
겨우 혼자 남은 내 집에서 만족스럽게 저녁을 해결했고,
때로는 칼국수가 먹고 싶어 저녁이 되기만을 기다릴 지경이었다.
세월이 흘러, 갑자기 포장마차 수가 급격하게 늘었다.
작은 포차에 의자 몇 개 놓고 오가는 손님을 맞이하는 식이었지만,
밀어닥치는 손님을 모두 받으려는 욕심에
포장마차의 규모는 커져서, 거의 길거리 식당이 될 지경이었다.
그것이 한 두개가 아니라
심하면 다섯 개도 넘는 포장마차 식당이 차량이 다니는 아스팔트까지 점령하였고,
규모는 점점 더 커졌으며,
식탁은 적어도 열 개 이상으로 늘었다.그리고 그 식탁과 포장마차는 늘 만석이었다.
그곳은 주택가를 벗어나 번화가로 진입하는 곳에 있었는데,
그때가 그 일대의 전성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밤에 산책을 주로 하는 나는 근방만 가면 식욕을 자극하는 포장마차 칼국수 특유의
멸치 육수 냄새에 늘 마음이 들떴다.
육수와 손칼국수과 인색하게 주어지는 고명의 조합은 정말 환상이었다.
그때 난 거의 매일 저녁을 칼국수로 해결했던 것 같다.새벽 2시에 달려간 적도 있다.사람들 틈에 섞여 먹기보단, 집에 와서 책을 읽거나, 티브이를 보면서 먹는 것을 즐겼다.
지금도 눈에 훤하다.
꽉꽉 들어찬 포장마차의 좌석수는 점점 늘어나서 차도를 점령하고,
거리엔, 육수 냄새가 진동하여, 퇴근길의 배고픈 사람들의 식욕을 자극한다.
데이트족들,아저씨들, 아가씨들, 친구, 연인, 각종 사람들이
좌석에 앉아 마치 카페에 있기라도 하듯 편하게 대화를 나누며 맛있는 칼국수를 먹고 있는
그 광경은 날 흐뭇하고 평화롭게 만들었다.
언제든 내가 먹고 싶을 때, 맛있는 포차의 칼국수를 먹을 수 있었던 시절...
어느날 갑자기 돌연히, 그들이 모조리 사라져버리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
우리 동네의 명물이었던, 특히 금요일이면 모든 포차들이 앞다투어 문을 열고 손님을 받았으며
축제분위기 비슷할 정도로 활기차고 법썩이던 그 시절은
돌연히 끝나버렸고,
모든 포차는 철수했다.이유는 지금도 확실히 알 수가 없다.
암튼, 난 생의 큰 낙을 잃었다.원래 한 개인의 큰 낙이란 그토록 사소하고 별 것 아닌 법이다.
기껏, 멸치 육수에 손칼국수 한 그릇,
그러나 그것이 사라진 후,코로나와,
지지부진하게 6년이나 이어지고 있는 공사로 인해 변해버린 거리의 모습,
급격하게 줄어든 인파...썰렁하고 춥게 느껴지는 그때 그 거리...
흥청대던 수많은 인파와 맛있는 멸치 육수 냄새는 어디로 가버렸는가!
금요일, 그 밤들과 포차 안에 앉아 도란거리며 국수를 먹던 수많은 사람들이 사라졌다.
개발붐이 일어난 이곳은, 며칠만에 번화가에 나가면
멀쩡하게 서 있던 건물이 사라지고,다시 며칠 후엔 새로운 고층 건물이 대신 들어서 있다.
우리 동네는 굳이 시내에 나가지 않아도
여기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온갖 종류의 은행과, 유명 브랜드의 커피 전문점,치킨집,
서브웨이와 맥도날드에 롯데리아에 파파이즈. 버거킹 등등흔히 말하는 5대 브랜드는 물론이고,
스타벅스도 두 개나 되며, 이디야는 수도 셀 수 없다.뿐이랴,
이마트도 가깝고, 재래시장도 있고,무엇보다 고령화된 도시답게 제일 많은 것이 온갖 종류의 병원들이다.
3차병원은 물론이고, 2차 병원에 개인 의원은 거의 셀 수도 없다.하지만,모든 것이 나와는 무관하다.
그저 포장마차의 칼국수만 있으면 된다.
첨단 유행을 걷는 온갖 고층 빌딩이 나와 무슨 상관이랴!
난 이렇게 점점 구시대의 인물이 되어간다.
아니, 내가 사랑했던 것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가는 것이 바로
내가 나이들어가는 것이라는 걸 절감한다.
나이드는 것이 처음이라,
난 그게 뭔지 몰랐다.
그건 현재라는 시공에 내가 좋아했던 것들,
젊고 이쁘고 멋쟁이였던 엄마의 얼굴,
사랑했던 강아지들,
정겹던 상점들
성당에서 늘 반갑게 마주치던 얼굴들....
공원에서 분수가 물을 뿜어대고, 사람들이 여기저기 앉아서
은행잎을 맞으며 조근거리고
밤이면 포차들이 활짝 열리던그 시절 등등...
무엇보다
나 자신, 꿈이 있고, 지금보단 훨씬 에너지가 넘치던
지금은 오래 된 액자 속의 낯선 모습같은 내 자신 등등,
모두 하나씩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낯설고 생소한 존재들이 나와는 무관하게 오가는 것이
바로 나이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슬프게, 바라보는 내 뒷모습을
또하나의 나, 영원히 변치 않는 내가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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