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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가든, 윤상현

모놀로그 2012. 12. 8. 13:04

벼르고 있던 시크릿가든을 몰아서 봤다.

난 드라마 작가에 대해서 줄줄이 꿰고 있는 사람은 아니다.

연출가도 실은 잘 모른다.

난 드라마를 볼 때, 그게 본방일 경우, 그냥 어떤 장면이 꽂히면 본다.

혹은 아무 생각없이 보고 있는데, 십분을 봐도 채널이 돌아가지 않으면

그 작품은 끝까지 본다.

그리고 그런 작품은 아주 드물다.

 

그래서 본방사수를 한 작품이 몇 개 안된다.

 

지난 드라마를 보는 기준은,

 

배우가 아주 비호감이라 도저히 참기 힘들 정도만 아니면,

시청률 대박, 평이 대박, 대중적으로 이름이 나서

제목이 귀에 익은 경우가 드라마 선정의 기준이다.

물론,

넝쿨 어쩌구하는 작품은 아무리 시청률 대박이라도 제외이다.

 

암튼, 적어도 작품 선정하는데

작가나 피디의 브랜드는 들어가지 않는 셈이다.

더 심한 건

아무리 작품이나 대사가 좋아도  그게 대체 누구의 극본이며 연출인지 알려들지 않는다.

 

생각하면 웃긴다.

책을 읽을 땐, 음악을 들을 땐

저자를 보고, 작곡가나, 가수가 누군지 철저히 따지면서

드라마는 아무 생각 없이 보니 말이다.

하지만, 내 시선을 십분 이상 붙잡아 채널이 돌아가지 않을 정도라면

작가나 연출이 누구던 무슨 상관인가!

그게 바로 능력인데..

나같이 산만하고 진득하지 못하며

까다로운 인간의 시선을 십분 이상 붙잡았다면

그것으로 합격이니 누구던 상관없다.

 

지금도,

내가 무지하게 심취했던 몇 안되는 작품 빼고는,

비교적 관심을 가지고 봤던 드라마의 작가나 연출가에 대해서

이름도 경력도 모를 지경이니

나도 참 게으른 인간이다.

 

하긴,게으름이나 무관심에 대해선 누구에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긴 하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아는 작가가 있다면

바로 김은숙 작가이다.

 

그 이유는 매우 개인적이라 굳이 구구절절 늘어놓을 생각은 없다.

암튼

이 김작가는,

대사를 가지고 말장난 치는 재주는  김수현 작가를 방불케한다.

 

젊은 작가이니만큼

김수현 작가처럼 잘난 체는 안 한다.

 

훨씬 팬시하고, 위트있고, 재치도 있다.

그러나 지나친 말장난 때문에

진지하지 못하고,

드라마 진행이 매우 즐겁긴 하지만

깊이가 없으며,

캐릭터들은 매력이 있지만 여운이 짧다.

게다가 가장 큰 재능이 널뛰기이다.

연기하는 배우들이 따라잡는게 신기할 정도로

진지함과 개그 사이를 가볍게 오가는 경지가 신묘할 정도이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김작가에게서 제일 싫어하는 점이다.

 

 

이 작가의 장점은,

재치 있는 대사에, 비교적 캐릭터를 잘 잡는다는 것과,

특히 남자 배우를 아주 돋보이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는 것이다.

뻔한 캐릭터도 김작가가 쓰면 굉장히 매력 있다.

반면에 여자 캐릭터는 그저 그렇다.

쓰면서 자기가 만든 남자 캐릭터와 사랑에 빠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그래선가,

내가 본  김작가의 세 작품인

'파리의 연인'이나, '연인', 그리고

'시크릿가든'까지 대개 남주가 무지하게 떴다.

 

남자와 여자가 둘이서 밀고당기기를 하는 과정을

신분의 차이를 사이에 두고

오랜 시간 보여주는데,

이런 경우 웬만한 필력이 아니면

사람들을 붙잡아두기 힘들다.

하지만 김작가는 그런 점에선 꽤 능력 있다.

 

그러나,

내가 이 작가에게서 가장 싫어하는 점이 있는데,

경쾌하지만 비현실적인 로코로 드라마 초반을 재미있게 꾸려감으로써

황막한 세상사에 지친 사람들에게 얕은 재미를 주어

잠시 피로를 씻어주는가 하다가,

막판엔 갑자기 신파로 흐른다는 점이다.

 

파연이 그랬고,

연인도 그랬으며

시크릿가든까지 그러더란 말이다.

정말 짜증난다.

다음 작품이었던 신사의 품격은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설마 거기서도 그러진 않았겠지??

 

어쨌든,

시크릿가든은 파연에서 좀더 극단적으로 발전한 신분 다른 두 남녀의 러브 스토리가

중심인데,

 

파연에선 신데렐라 스토리는 개뿔!!

그런 건 상상에서나 가능하지, 현실적으론 있을 수 없는 일!!

이라고 뒤통수를 후려갈기더니,

시크릿 가든에선 드디어 가능할수도 있다고 뒤집기를 한다.

그러기까지 거의 십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별로 달라진 것도 없다.

 

너무 완벽해서 싸가지없어도 용서가 되는 왕자님과 초라하지만 꿈이 있는 캔디와의 사랑은,

신비로운 마법, 혹은 불가사의한 힘이 도와주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셈이다.

 

누구에게나 마법이나 신비로운 힘이 도와주진 않을테니까,

 

십년 세월 사이에

달라진 건 그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일 것이다.

 

물론, 마법이나 불가사의한 힘의 어처구니없음을,

보다 깊은 인연으로 슬쩍 덮긴 한다.

 

남자에게 하자가 좀 있어야

외형적인 수많은 하자가 있는 여자와의

갭이 메워진다는걸까?

 

주인공 왕자님이

부상을 당하고

자기로 인해 여주의 아버지를 잃게하고,

그래서 기억 속에서 사라진 어느 시간에

이미 만난 적이 있다는 것으로

둘의 사랑에, 마법과 필연까지 동원한다.

 

하긴,

맞는 말이다.

실은 사랑에 마법에 필연까지 총동원해도

여전히 저런 사랑엔 리얼리티가 부족하지만...

 

그럼, 배우와 캐릭터를 보자.

 

우선, 현빈인데

개인적으로 현빈은 비호감 명단에 올라서 피해다니고 싶은 배우는 아니다.

내이름은 김삼순이

내가 현빈을 본 유일한 작품이지만,

꽤 귀여웠다.

 

하지만 시크릿에서 본 현빈은,

삼순이의 캐릭터에서

조금 더 발전한, 다시 말해서

발전이라는 게 그러하듯

보다 더 싸가지 없고,

보다 더 말장난이 심하고,

보다 더 다양하게 신경질적이며,

트라우마도 보다 더 복잡하다는 정도이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여자에게 꽂혀서

혼자 생난리부르스를 추다가

결국엔 항복하는 것까지 똑같다.

그 과정에서 여주의 역할이

삼순이 쪽이 훨씬 매력있다.

 

그런 점에서

삼순이의 현빈이 훨씬 맘에 든다.

 

이 현빈이라는 배우는

좀 애매한 포지션이다.

 

잘생겼지만 무지하게 잘생긴 건 아니다.

매력이 없진 않은데 어디에 매력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섹시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연기도 못하는 것 같진 않지만

그렇다고 정말 감동적으로나 테크니컬하게 잘하는 것도 아니다.

키크고 스타일이 좋지만

평범하다.

 

그래서

삼순이에선 그나마 시크릿보단 훨씬 젊고 훨씬 여릿여릿해서

사랑스러운 것이다.

 

시크릿과 삼순이에서의 캐릭터 차이를 별반 느끼지 못하겠다는 점에서,

그리고 삼순이에서 이미 봐온

그의 연애 스타일에 대해서

별반 감흥이 없기에

눈길은 하지원쪽으로 돌려본다.

 

개인적으로 하지원은 매우 비호감이다.

다모의 장채옥역은 강렬했기에

하지원이라기보단, 그냥 장채옥이었다.

그래서 시크릿은,

다모 이전과 이후를 통털어

두번째로 보는 셈인데,

 

보는 내내

하지원이 장채옥으로 보여서 죽는 줄 알았다.

 

장채옥은 좋은데

하지원은 싫어서 그랬나보다.

 

하지원의 캐릭터도

삼순이보다 매력도가 훨씬 떨어진다.

삼순이는 울고불고를 안해서 좋았지만,

하지원은

장채옥이 그랬듯

야무지고 당찬 아가씨가,

막판엔 너무 울고짜서 짜증났다.

 

난 울고짜는 여자는 무조건 질색이니까.

 

암튼

이렇게 두 메인 남녀주인공은

그럭저럭 얕은 재미는 있지만

별로 내게 어필하지 못했다.

 

그런데

문제는 윤상현이란 배우이다.

 

이게 웬 보물이냐?

라며 보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내가 본 김작가의 세 작품에선 볼 수 없었던

매우 유니크하고 사랑스러운 캐릭터였다.

게다가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윤상현이라는 배우는...

 

솔직히 난 그런 배우가 있는 줄도 몰랐다...면 거짓말이고

이름은 들어본 것 같다.

하지만 눈으로 보는 건 첨이다.

 

시크릿에선 가장 빛나는 캐릭터이고,

배우였다.

 

상대역인 김사랑 캐릭터도

하지원 캐릭터보다 훨씬 매력있다.

 

김작가에게 칭찬해주고 싶은 점이 있다면,

이런 종류의 드라마에 상투적으로 등장하는

서브 남주를,

메인 남녀의 사랑에 끼어들지 못해 안달난 남자로 만들지 않고,

메인 남녀의 스토리와 서브남녀의 스토리를 재치있게 병행시키며,

가끔은 두 커플을 크로스시키기로 적당한 자극도 주었다는 점이다.

 

서브 남주를

메인 남녀의 사랑의 방해꾼으로 만들지 않은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아마 그래서

윤상현 캐릭터가 더 빛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캐릭터만큼, 배우도 정말 매력있었다.

 

댄스 가수 연기를 하기엔

너무 나이가 들었다는 점이 좀 에러였지만

시크릿을 보는 내내

나를 가장 즐겁게 해준 캐릭터요, 배우였다.

 

대개의 서브 남주는

사랑의 방해꾼 노릇이나 하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캐릭터라도

매력이 없다.

공연히 남의 사랑에 끼어들어 자기가 뺏겠다고 악을 써대니

매력적으로 보일 수가 당췌 없다.

그래서 메인 남주보다 훨씬 복잡한 성격을 줘도

빛나지 않는다.

 

그런 굴레를 해체해서

자신의 삶을 살게 만들어주니

서브 남주들이 그렇듯

매우 입체적인 캐릭터가, 배우의 명연기로 인해

더욱 살아난다.

 

내가 시크릿에서 건진 건

윤상현이라는 배우라고 해도 좋겠다.

 

마지막으로,

 일부러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시크릿에 나오는

이른바 상위 1프로 중에서도

다시 상위 1프로에 해당되는 특수층은,

그들이 생각하는 하층민과

매우 닮아 있다.

 

실제 로얄 계층..이라고 스스로 일컫는 부류들은

그렇게 자기가 신분이 높다고 울부짖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토록 자뻑에 빠져서 허우적거리지도 않을 것이며,

 

그렇게 자기가 가진 것에 과잉스런 만족감을 느끼거나,

그렇게 자기가 가진 기득권을 과시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크릿가든의 빕빕 계층은,

참으로 천박하다.

그들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하층민의

척박한 삶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을 정도로 말이다.

 

일찌기

그 어떤 왕자님도

자기가 입은 의상이 얼마나 비싼 것인지

의식한 적이

시크릿가든의 왕자님보다 없으리라.

 

그 어떤 왕비들도,

시크릿에 나오는

귀부인들처럼

자기들의 보석에 황홀해하지 않을 것이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이른바 로얄층이라고 스스로 믿는 그들의

천박함을 극단적으로 묘사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들의 풍족함에 대한 천박함은,

하위 일프로의 고달픈 인생살이의 천박함과

끝이 닿아 있다.

 

시크릿가든에서

내가 느낀 두번째 재미가 바로 저것이다.

 

세번째 재미는,

상위 1프로 중에서도 1프로에 해당되는 그들의 세계에

하위 1프로 중에서도 1프로에 해당되는 그들이 끼어드는 것이

그들의 자존심, 혹은 자긍심, 혹은 자부심 때문에

힘들다면,

 

그 반대의 경우도 역시 그들의 자존심, 자긍심, 자부심으로 인해

만만치 않게 힘들다는 것이다.

 

즉,

그들의 자존심이나

이들의 자존심이나

그 본질은 전혀 다르지 않으며

 

물론,

그것은 자존심이라는 것을 가진 종족들에게 적용되는 것이지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의 자존심은

너무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의 자존심에 비해

전혀 초라하지 않다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후반에 가서 울고짜는, 김작가 특유의 신파만 뺀다면

시크릿가든은

 

김작가의 작품이 갈수록 업그레이드되고 있음을 보여준

유쾌한 작품이다.

 

그러나,

내가 늘 주장하듯,

발전은 퇴보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

즉,

보다 자극적이고, 보다 선정적으로

타락할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신데렐라와 까칠하고 자뻑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왕자님 얘기는

그만 쓰심이 어떨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