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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놀로그/작품과 인물

유신덕만

by 모놀로그 2012. 7. 17.

 

 

 

드라마 선덕여왕 안에서의 멜로의 흐름을 쥐고 있는

덕만과 유신의 관계는,

 

화랑과 그의 낭도로 시작하여

오랜 세월을 거쳐 어느 틈엔가

남녀관계로 발전한다.

 

그 과정은 이렇다하게 두 사람의 감정의 흐름을 보여주지 않고도

극중에 자연스레 스며들어서 별 무리는 없다.

 

 

 

덕만이 자신의 주인이자 보호자인 유신에게 호감을 품는 건

여인인지라 당연하지만,

유신이 남장을 한 덕만에게 연애감정을 품는 건 이상하다.

따라서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려면

진작부터 덕만이 남장 여인임을 유신이 알아차리고 있어야한다.

 

 

그러나

그가 덕만이 여인임을 알아채리는 시점이 드라마상으로 불분명하다.

아막성 전투이전인지, 이후인지가 애매하다.

전후 사정으로봐선 이전이라고 봐야할 것 같긴하다.

 

(목욕 장면에서 옷차림으로 봐선 이후같은데

그건 그저 촬영상, 세심함의 부족같다.)

 

우선 아막성 전투 이전에 진성비재를 치뤄야했을 때

유신은 덕만을 보호하려하는 것이 첫번째 증거이다.

 

그가 필요 이상으로 덕만을 혹독하게 훈련시킨 것도

처음엔 거칠고 자유로우며 진취적인 덕만의 기질이

융통성없고 엄격하며 귀족적인 유신에게 혐오스러워서였지만

이후엔 여인임을 알고 체력적으로 딸릴 것을 염려한 탓인 것 같다.

그렇다면 여인이라는 사실을 숨기면서까지 곁에 두려고 한 것은

훨씬 오래 전부터였다는 것인데,

상당히 헷갈린다.

의도적인건지 극본이 허술한 건지..쩝

 

전투 중 덕만이 사라지자 그녀를 찾아헤매는 유신의 절박한 몸짓은

천명 공주의 살려서 데려오라는 명령 때문만은 아닌 것이 확연하게 보인다.

 

여인의 몸으로 거친 낭도 생활을 해야하는 덕만은

아무리 당차다해도 외롭고 힘겹다.

그런 덕만은 눈에 보이지 않게 자신을 지켜주는 유신에게

자기도 모르게 의지하게 되고 기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당연히 그에 대한 연모로 발전한다.

 

이후로 천명과 3총사를 이루어 대미실 투쟁을 본격화하면서

미묘한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천명의 유신에 대한 마음이 깊어지는 것과 비례하여

유신과 덕만의 유대감도 깊어지기 때문이다.

 

 

 

덕만이 공주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가장 절망한 사람은

아마도 유신이리라.

 

그의 말대로,

자신의 낭도로써 자기만의 사람으로써

자기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여전히 자기에게 바락바락 대들고

자기가 맘껏 구박할 수 있는

낭도로 그녀를 독점하고 싶은 것이다.

 

그녀를 데리고 도망치려는 유신의 내면엔

물론 그녀를 보호하려는 진심이 담겨 있지만

더 깊숙히에는 그녀가 공주 신분을 되찾을까봐

두려워하는 그녀에 대한 집착과 독점욕이 엿보인다.

 

 

그러나 덕만의 공주 신분 회복과 왕위 선언을 통해

좌절된 젊은 날의 연모는

군신간의 관계로 한단계 도약하는데,

이때 유신의 감정은 나의 낭도 덕만에서

나의 주군 덕만으로 바뀌어 지속된다.

덕만에 대한 연모의 다른 표현인 셈이다.

 

이 무렵의 그들은 군신이며, 연인이고 동지이다.

말은 군신이지만, 내면적으론 연모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풍월주 비재 이후로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건 선덕여왕에서 가끔 나를 헷갈리게 하는 이상한 상황전개인데,

 

왜 공주 덕만은 미실에게 유신을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하다못해

울고불고하는걸까?

게다가 새삼스레 난 실은 유신을 무지하게 연모했노라고 난리를 피우는걸까?

 

하긴 두 사람이 은밀한 정인 관계라는 건

온 신라가 다 알고 있더만.

 

내가 덕만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 덕만의 급격한 태도 변화가 말이 안된다고 보는 이유는

 

 

첫째로,

두 사람은 어차피 혼인할 수 없다.

두 사람 모두 그럴 마음이 없다.

연모도 표면적으론 끝났다.

연모를 품은 채로 군신으로 늘 함께 붙어다니는 것만 가능하다.

 

둘째로,

 

따라서 미실에게 유신을 빼앗기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눈물을 짜며 연모 타령을 하는 것을 보고

나도 가슴이 아팠다.

드디어 유신이 공주 곁이 아니라

미실의 테이블 찌질이틈에 끼어서

같이 머리를 맞대고 수근대려나?

 

그런데 것도 아니다.

 

말로는 미실의 품안에 가겠다고 했지만

그는 여전히 공주 곁에 있다.

 

혼인만 미실 집안의 여식과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혼맥은

전혀 유신과 미실을 이어주지 않는다.

 

만일 그랬다면

미실의 난에서 유신은 미실 편에서 일했어야하는데

오히려 칼을 자신의 처가를 향해 휘두르고 있다.

 

대체 뭐하는거임?

그떄 벌어진 기나긴 갈등은

무슨 의미가 있는건지 통 모르겠다.

 

미실은 어찌하여 아무런 의미도 없는 혼맥을

김유신 집안과 맺은걸까?

 

공주 덕만은 어차피 혼인할 생각도 없는 유신으로 인해

그토록 슬퍼하는가?

 

유신은 새삼스레

공주에게 군주의 길에 대한 강좌를 늘어놓으며

그때까지의 유신에서 한단계 업그레이드되긴 한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되기 위해

공주와의 연모를 내세우는 건 좀 이상하다.

 

표면적으로 공주와 유신의 관계는 달라지지 않으니까.

내면적으로도 공주와 유신의 관계는 달라진 게 없으니까.

 

그렇다면 유신이 혼인하는게 싫었던건가?

 

아..젠장

 

 

여왕으로 즉위하면서

세월이 흘렀다.

 

우리가 드라마상으로 볼 수 있는 건

여왕으로서 통치하는 모습은 아니다.

오히려 여왕의 죽음을 앞둔,

즉 여왕 덕만의 말년의 사건들이다.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판단해야한다.

 

비담은 안기부장이 되어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고,

 

유신은 상장군으로

전선에서 살다시피하는 것 같다.

 

여왕 덕만의 최측근에서 보다 가깝게 지낸 건

유신이라기보단 비담이다.

 

겉으로봐선

유신과의 관계는 많이 멀어져 있는 것 같다.

 

군신 관계가 더 강해진 듯 하고,

남녀감정은 상대적으로 약해진 듯 하다.

 

하지만

가야와 복야회 사건을 두고 다투기 시작하는

유신과 덕만을 보면 오히려 둘 사이는 굉장히 깊어진 것 같다.

남녀 관계며 군신 관계를 넘어서서

철통같은 신뢰로 완전히 진화해버린 것이다.

 

그들의 관계가

시공을 넘어 그렇게까지 깊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연모와 군신의 감정이 세월과 함께 계속 진화했기 때문이고,

어릴 때 만나서 함께 성장한 기억을 서로가 공유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비담이 아무리 노력해도 유신과 여왕을 갈라놓을 수 없는 관계의 근원이요,

비담이 유신에게 느끼는 패배감의 원천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덕만은 유신을 버릴 수 없고

유신은 덕만을 떠날 수 없다.

그리고 둘 다 그것을 알고 있다.

 

 

여왕 덕만이 유신과 갈등을 빚으면서

감정 싸움을 벌일 수 있었던 것도

기나긴 세월이 두 사람 사이에 흐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눈빛으로 서로의 마음을 읽으며

마음으로 대화가 가능하기에

겉으로 더욱 치열하게 다툰다.

 

말하자면 소통이 너무 잘되서

갈등이 깊어지는 경우인데,

 

여왕이 유신에게 화를 내며

귀양을 보낸다던가

옥에 가둔다던가 하며 성질을 부리는 것을 보고 있자면

 

다모의 채옥과 황보윤 종사관과의

빗속 대련이 떠오르기도 한다.

 

서로에게 치대며 신경전을 벌이는 그런 관계는

너무나 깊어서 뭐라 이름지을 수가 없을 정도이다.

 

 

 

난 덕만과 유신의 그런 관계가

매우 드라마틱하다고 생각하며

만일 이요원의 멜로 연기만 조금 뛰어났다면

훨씬 감동적이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런 관계는 서로를 외롭게 한다.

특히 여자를 외롭게 한다.

 

우리가 만난 여왕 덕만은

공주 시절의 패기가 사라진,

지치고 병들고 외로움에 허덕이면서도

그것을 내색치 못하는,

철저하게 왕으로서의 사고,

어떤 경우에도 정치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염증을 보여주고 있다.

 

다름아닌,

유신과도 정치적 관계로 대립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가를

그가 헤아려주지 않는 것이 이제 늙고 지친 여왕 덕만은

원망스럽고 밉다.

 

그건 다시 말하면

유신이 그만큼 정치적으로만 여왕 덕만을 대해왔다는 반증도 될 것이다.

 

 

 

덕만이 야심차게 시작한 왕위에의 도전과 성취는

애초에 여인으로서의 평범한 삶을 저당잡히고 얻은 것이지만,

 

긍극적으로 남은 건

깊이 병들어 죽어가는 덕만의 뼛속까지 시린 외로움이다.

 

그 외로움을 이요원은 서늘하게 표현해내어

내 뼛속까지 시릴 정도이다.

 

그리고

난 어쩐지 그녀를 그토록 외롭고 힘들게 만든 사람이

다름 아닌 김유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왕이 된 이후로는 아마도 유신은 더더욱 그녀에 대한 마음을 다잡아

그나마 보여주던 감정의 편린조차 남김없이 버렸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대립해야하면서도 버릴 수 없고

자신이 이루지 못한 삼한일통의 꿈을 위해

지켜줘야하는 사내지만

그 사내는 더는 자신의 외로움과 힘겨움을 돌보지 않는다.

아니 외면한다.

 

단 한번도 가까이 오지 않고

군신의 벽을 굳건히 지킨다.

힌때 사랑했던 남자의 그런 태도만큼

여왕 덕만의 내면에 남은 여인을 슬프게 하는 것도 없으리라.

 

'너는 나의 사랑을 거부하고

공주와 여왕의 길을 택했으니

마지막까지 불평하지 말고

남자 유신을 원하지 말고

여자이기를 원하지 말고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 다그치는 유신이야말로

그녀를 병들게 했다는 생각이다.

 

 

작가는 그러한 덕만의 심리를죽방과의 대화를 통해 보여준다.

 

'죽방형님이 있잖아요''죽방형님은 절 떠나지 마세요...'

 

 

 

그때 죽방의 대사가 의미심장하다.

 

'차라리 유신공과 국혼을 하심이....'

 

 

 

외로움에 허덕이는 여왕 덕만을 지켜보다못한죽방의 말은 역시 누구보다 덕만과 유신의 마음을 잘 알기에나왔을 것이다.

 

덕만에게 유신의 존재가 어떠한 것인가를,그리고 유신에게 덕만이 어떤 존재인가가장 잘 아는 죽방을 통해 저런 대사를 내보내는 것이니더욱 의미깊다.

 

그렇게 보자면여인 덕만의 의식 깊숙히에 유신에 대한,결코 마음을 나눌 수 없는 지독한 그에 대한

원망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비담의 집요한 애정을 갑자기 받아들이는 여왕의 난데없는 태도의 변화는,

솔직히 수상쩍다. 아무래도 제작진의 편애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냥 여자의 입장으로 생각해보면 납득도 가기도 한다.

 

 

한번 군신 관계라고 선언한 이후로는 단 한번도 자신을 여인으로 대해주지 않았던

그녀가 사랑한 남자 유신으로 인한 외로움이 덕만으로 하여금

오로지 자신을 여인으로만 대하는 비담을 받아들이게 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모든 인간들과의 정치적 관계,

하다못해 유일한 남자였던 유신과의 그런 관계에 지친 나머지

한결같이 자신의 눈길과 손길과 사랑만을 갈구하는

비담에게 기대고 싶어졌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비담과의 국혼을 발표한 후에

유신과 나누는 대화가 그것을 보여준다.

 

그들의 관계의 깊이를 보여주기도 하고,

그 깊이의 한계가 얼마나 차디찬 곳인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경하드립니다'

'서운하지 않습니까?'(전 유신공에게 서운합니다..)

'서운합니다'(그 마음 알기에 )

 

'비담의 세력이 커질까 저어되지 않구요?'(상대가 비담인 것이 마음에 안들죠?)

'저어도 됩니다'(솔직히...그렇습니다)

 

'그런데도 경하한다구요?'(왜 늘 그런 식으로 날 대하는 겁니까?)

'어디든 폐하께서 쉴 곳이 있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못해드릴 일입니다. 송구합니다..'
(폐하를 외롭게 해드린 거 압니다....)

 

이 얼마나 스산한 대화일까?

 

여왕 덕만은 저런 대화를 통해

얼마나 유신에게 절망해왔을까 싶어

가슴이 쓰리다.

 

'너의 외로움도 힘겨움도 나에 대한 야속함도 알지만,

그러나 난 니가 원하는 걸

줄 수가 없다.'

 

그래서 유신은 비담에게도 말한다.

 

'폐하가 원하는 걸 줄 수 있는 건 너뿐이다! '

 

 

 

 

 

 

선덕여왕의 멜로인

덕만과 유신의 관계는 참으로 안타깝고

외롭다.

 

 

마지막까지 선을 넘어오지 않는 유신에 대한

덕만의 체념까지 외롭다.

입밖으로는 나오지 않을 그의 진심이 외롭다.

 

덕만의 죽음의 자리에서

덕만의 대사는 그래서 참으로 쓸쓸하다.

 

 

그녀의 곁에는 여전히 유신이 서 있다.

그녀의 말대로 유일하게 남은 사람이다.

그는 여왕 덕만에게 약속한대로 아낌없이 내어주었지만

그녀가 원한 것은 주지 않았다.

 

 

 

 

 

 

 

 

 

 

 

 

 

 

 

 

 

 

 

 

 

'우리 예전에 도망가려고 했었죠? 기억하십니까?

지금이라도 갈까요?'

 

여인이기를 포기하고,

택한 여왕의 길...

곁엔 젊은 날의 사랑이

여전히 벽을 허물지 않은 채 서 있어

그녀는 외롭다.

 

 

어찌 그리 민망한 말씀을 하시냐는

그 남자가 외롭다.

 

 

여인일 수 있었던 기회를 버린 것을 후회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러나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할 것인가?

 

그래도 역시 덕만은 그 길을 포기했으리라...

 

드라마적으로 보자면,

여왕 덕만이 아닌, 여인 덕만의 허한 마음으로 초점이 이동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게 솔직히 쌩뚱맞고

그때까지의 흐름과 어울리지도 않지만

 

 

 

그것과 별개로,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옆에 유신이 있음에도 세상에 홀로 남은 듯한 외로움 속에

죽음을 맞이하는 여왕 덕만의 눈에서 배여나오는 눈물이

시리다 못해 소름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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