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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덕만공주와 이요원

모놀로그 2012. 6. 25. 17:57

내가 선덕여왕을 중간에 때려치우지 않고

끝까지 본 가장 큰 이유는

'덕만공주' 때문이다.

 

 

 

 

 

 

 

 

그러고보면, 사람의 눈이란 참 각양각색이라는 생각이 든다.

선덕여왕을 본 대다수가 미실 타령을 외칠 때,

난 덕만만이 눈에 들어왔고,

 

비담을 외칠 때,

난 제작진이 너무나 그를 요란하게 띄어주기 위해

생쇼를 하는 게 지루했으니까.

 

하지만 제작진이 아무리 북치고 장구치고 꽹과리까지 쳐대면서

미실과 비담을 멋지게 내세워도

나처럼 덕만을 보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덕만공주역의 이요원은,

내가 지금까지 단 한번도 그가 나오는 작품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드라마 대망 정도가 그래도 끝까지 본 작품일 것이지만,

거기서도 이요원이라는 배우에겐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따라서 자그만치 60 시간이 넘는 동안

눈이 짓무를 정도로 이요원의 얼굴을

평생 볼 걸 한꺼번에 봤다 싶을 정도이다.

 

이요원은,

일단 선덕여왕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요,

배우이다.

 

다른 캐릭터들처럼 두드러지는 캐릭터는 아닐지도 모르나

적어도 내겐 선덕여왕에선 가장 마음에 드는 캐릭터이다.

 

 

 

 

 

 

 

 

 

 

 

 

그 이유는

 

1.

 

이 드라마를 찍으면서 가장 변화무쌍하게 변신을 거듭하는 캐릭터요,

아마도 가장 많은 고생을 했을 것이다.

여성의 몸으로 힘든 여정을 견뎌내면서도 흔들림없이

마지막까지 극을 차분하게 이끄는 힘도 칭찬해줄 만 하다.

 

다른 캐릭터들처럼 현란한 캐릭터적 치장을 주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빛나고 있다.

덧붙어 이요원이라는 배우가 지닌 매우 보이쉬한 느낌이

남장에 어울려서 매력적이다.

 

2.

 

이요원은 고현정이나 김남길과는 달리

내가 앞서 말한 배우 순수한 눈빛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맑아보이고 청수한 느낌을 준다.

꾸밈이 없고 단순하지만

그래서 진정성이 보인다.

 

재능을 믿고 잔재주를 부리는 배우가 아니라

자신이 지닌 순수한 열정으로 연기를 하기에

거부감이 없다.

그것이 덕만에게 호감을 느끼게 하였다.

 

 

3.

 

가장 중요한 점인데,

덕만공주는 내가 좋아하는 인간상이다.

아마 내게 없는 그러나 내가 추구하는 인간상이

덕만공주의 내면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덕만공주는 내가 원하는 지도자상이다.

끊임없이 고뇌하고 사고하며 한 발자욱씩 성장해간다.

수많은 자문자답을 통해

뚜렷한 정치철학을 지니게 되는 과정이 매력적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며 자기 자신과 투쟁하는

지도자로 성장하는 모습이 좋았다.

 

 

 

4.

 

내가 이 드라마에서 제일 흥미를 느낀 부분이

덕만공주와 미실공주의 대결이다.

 

이것이 내가 선덕여왕에 매료된 가장 큰 이유이다.

그들 둘의 불꽃 튀기는 대결은,

 

기득권 세력과

개혁 세력의 대결인데,

 

기득권 세력을 무너뜨리고

개혁 세력이 승리한다는 건

현실적으론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도 좋다.

 

그런데

선덕여왕에선 개혁 세력의 선두인 덕만이

구세력의 공격을 하나씩 받아내며 돌파한다.

 

거기서 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미실이 제아무리 뛰어나다한들,

그녀는 구시대적 인물이고,

구시대에 속한 인물의 구태의연함이

그녀의 신묘한 권모술수에 깔려있다.

 

덕만은

비록 미실적으로 대응한다하나

그녀는 젊기에

싱싱하고 새롭고 보다 원대하며

당당하다.

 

그것은 늙음과 젊음의 대결이기도하다.

 

미실이 차츰 덕만에게 밀리기 시작하며

패배감에 사로잡히는 이유는

실은 단순하다.

 

자신은 늙었고

자신의 방법은 이미 시대에 맞지 않고

자신은 그것에 안주하여

발전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또한

적인 자신에게 뭔가 하나라도 배우려는

패기어린 자세에도

미실은 밀린다.

 

미실에게서 끌어낸 통치철학을

덕만은 답습하기보다

오히려 거기서 자기가 뭘 해야할지 하나씩 배워가며

자꾸만 성장하기 때문이다.

 

더이상 성장할 수 없는

미실은 패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미실이 느끼는 패배감이

내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마치 나도 덕만과 함께 성장하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덕만은

미실의 유일한 적수이다.

미실은 위기에 처하면 정면돌파하는 성격인데,

덕만도 그러하다.

 

그야말로 용호상박인데

늙은 호랑이는

젊고 싱싱한 용에게 질투심을 느낀다.

 

덕만은 미실에게 질투심이나 열등감을 느끼지 않기에

승부는 심리전에서 이미 판가름나고 있었다.

 

그것에도 난 통쾌감을 느낀다.

 

미실은 결코 덕만을 인정하려들지 않지만

덕만은 미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들의 대결은

이에야스와 히데요시의 대결을 연상시킨다.

 

미실이 히데요시이고, 덕만은 이에야스이다.

(소설 대망을 자료로 삼을 때)

히데요시는 이에야스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단 한시도 이에야스를 마음 속에서 떨치지 못한다.

그 이에야스를 압도하기 위해 자꾸 무리수를 둔다.

반면 이에야스는 히데요시를 관찰하면서

그에게서 하나라도 배우려고 애를 쓴다.

 

자기보다 뛰어난, 혹은 자기와 겨룰만큼의 인물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커다란 맹점이다.

 

그리하여 히데요시가 조선침략이라는 무리수를 두듯,

미실은 정변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면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상대를 압도하고 싶고,

상대를 누르고 싶고,

상대에게 아무것도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그러나 시대를 역행하는 욕망이 있다.

 

순리를 역행하는 것은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요,

역사의 흐름은 하늘의 뜻이기도 하니

절대로 승리할 수 없다.

 

그런데

대다수의 자만심이 강한 독재자들은

경쟁자가 생기면 그것을 인정하기 싫어하여

자신이 이제 그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때가 왔음을 외면하는 것이다.

 

미실에겐 사랑이라는 것이 없다.

그녀의 감성은 메마른 땅처럼 황폐하지만

덕만은  마구 솟구치는 애정의 샘을 가슴에 품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유신을, 비담을 사랑할 수 있다.

그 남자들을 자신에게 붙들어두기 위한 사랑이 아니라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연모이다.

미실에게 사랑은 아낌없이 빼앗는 것이요,

덕만에게 사랑은 그 사람을 신뢰하는 것이다.

 

미실에겐 

신분의 패배감이 있다.

 

인상적인 장면이 있는데,

덕만이 공주로 처음 미실과 마주치는 장면이다.

덕만은 떨고 있고,

미실은 그것을 알고 있다.

미실은 그때까지 자신이 인간들을 제압하는 방법을 쓰려한다.

그러나 그것이 거부당한다.

 

'무엄하다. 감히 성골의 몸에 손을 대다니!'

 

이것은 미실의 급소를 정통으로 찌른다.

천하의 미실이 결코 극복할 수 없었던 것이

바로 신분이 아니었던가!

 

덕만의 이러한 점이 난 맘에 든다.

 

이렇듯 미실의 성을 하나씩 함락시켜가는 과정이

난 매우 흥미롭고 재밌다.

 

그리하여 마침내 미실이 반란을 일으키기로 결심한 것은

내겐 덕만에게 패배했음을 만천하에 고백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내겐 매우 즐겁다.

 

미실의 죽음으로 인하여

두 사람의 대결을 더이상 볼 수 없게 된 것이

무척 애석하였다.

 

선덕여왕에 내가 재미를 느낀 것은

오로지 덕만이 미실을 이겨먹는 과정이

좋아서였는데 말이다.

 

혹자는,

선덕여왕이

미실궁주로 제목이 바뀔 정도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내가 보기엔 그렇지가 않다.

 

덕만 역의 이요원은,

젊음에서, 청수함에서, 진정성에서, 맑고 순수한 눈빛에서

미실역의 고현정을 누르고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