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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모놀로그 2012. 12. 3. 20:10

 

친구들의 연애상담전문가로 명성을 날리던 시절이 있었다.

 

참,이상한 일이지만,

남친과 사이가 뭔가 잘 안풀려서 고민하는 친구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친구보단, 그 남친의 심리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이었다.

듣기만해도, 지금 그 남자가 어떤 상태인지 훤히 들여다보인다.

그래서 여러가지로 조언을 해준다.

 

대개는 남자가 흔들릴 떄,

여자는 어떻게 처신해야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지만,

한번도 그 여자는 내가 하라는대로 하지 않는다.

 

난 그저, 이제 죽을 일만 남은 그 사랑이라는 것을

아름답게라도 마무리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어쩌면 그것이 남자의 사랑을 되살릴 수도 있다고 믿었던 게 아닌가 싶다.

 

사랑이 식어가는 남자에게

심하게 집착하며 주접을 떠는 건

그야말로 관계의 종말에 가속도를 붙이는 최악의 방법이니까.

 

어찌보면,

내가 권한 건

너무 쿨한 이별법이었나보다.

 

이별은 그러나, 그렇게 쿨하거나 아름답지 않다.

바닥까지 떨어져야 가능한 것이 또한 이별이다.

아니, 내가 본 이별들이 그러했다.

 

남자와 여자의 사이는,

의외로 아주 단순하다.

 

이 남자가 이 여자를 사랑하는가?

 

이 사랑이라는 게,

젊은 시절엔 참 애매한 개념이긴하다.

짝짓기가 주요 소명이기도 한 시절이니만큼,

그 사랑의 깊이나, 진정성이나, 그 여자에 대한 이해나

자신들의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이나,

 

뭐 이런 드라마틱하면서도 골치아프고 복잡미묘한 것들은

실은 모조리 쓸모가 없다.

 

오로지,

내가 이 인간을 원하는가!

 

이것뿐이다.

 

그 시절의 사랑이란,

그토록 단순하고, 직설적이고, 이기적이며,

그래서 순도 백프로일 수가 있다.

 

그래서 연인 사이가 삐거덕거리기 시작하면

그 이유는 단 한가지,

 

순도 백프로의 욕망, 혹은 사랑이라는 것에

불순물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그 불순물이라는 건

여러가지 종류가 있겠지만,

 

타고난 바람둥이에,

사랑을 놀이 정도로 생각하는 남자가 아닌 한,

 

대개는 눈앞의 사랑이라는 현실에,

미래라는 이름의 막연하고 불안한 가상의 현실을

접목시킬 경우에

가장 심각하다.

 

하지만, 남녀 사이만큼

단순한 것도 없다.

 

난, 친구들이 남친 문제로 고민할 때

늘 이렇게 답해 준다.

 

'남자는 자기가 원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꼭 이루고 싶어한다.

사랑이건, 일이건...

 

물론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남자에 한해서지만.

 

그러니

연인과의 사이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되면

이렇게 질문하라!

 

<날 사랑해?>

 

남자들은

순도 백프로의 사랑을 하고 있을 경우,

여자에게 애초에 저런 질문을 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할 틈이 없이

마구마구 사랑을 퍼붓기 때문이다.

(물론 선수가 아닌 경우에...선수들은 물론 그 순간엔 사랑하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그러므로,

저런 질문을 던졌을 경우 두 가지 반응이 오는데...

첫째로,

 

'아니면 내가 왜 널 만나겠니?'

 

이건, 경계경보이다.

 

'응, 사랑해'

라는 말이 곧바로 튀어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여자 쪽에서 사랑하냐는 질문을 하게 만든 것부터가

심상치 않은 조짐이었기에,

그에 대한 대답이 저런 식이라면

남자의 마음은 살짝 흔들리고 있다.

 

자기 미래에 이 여자를 개입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

자기 집안에 이 여자가 어울릴 것인가, 아닌가

더 심각한 경우,

다른 여자가 살짝 마음에 들어온 경우도 있고,

엄마가 심하게 반대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

웬지 그 사랑이 시들해져서

별로 성의가 없어진 경우도 있다.

 

뭐 이런 잡다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낫다.

그저 순도가 좀 낮을 뿐이니까,

물론, 시간이 더 흐르면

순도는 기하급수학적으로 떨어져서

곧 이별이 다가올 가능성도 충분한 대답이다.

 

다시 말해서 적극적이던 남자의 마음이

다소는 수동적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신호...

 

둘째가 문제인데,

여자의 질문을 듣고도 잠시 침묵..

이어서

 

 

'새삼스럽게 왜 그런 걸 물어봐??'

이런 식으로 얼버무릴 때이다.

 

이건 공습경보 발령이다.

이제 이 남자는 이별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랑이 거의 식어가고 있다는 간접화법,

즉 '이젠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의 부드러운 표현이랄까?

 

친구가 고민할 때,

난 저 방법을 써보라고 했다.

 

데이트할 때

분위기 잡아 저런 질문을 던져보라고.

 

만일

그 즉시

 

'물론 사랑하지!!!'

라는 대답이 나온다면

갈등은 곧 해소될 것이고,

 

'아니면 널 왜 만나겠니?'

라면 이별과 사랑의 기로점이며,

 

'그런걸 왜 물어봐'

라고 한다면

이제 머지않아 파탄이 올 징조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고

니가 먼저 걷어차라고.

 

물론,

여자가 고민을 한다는 건

이미 걷어찰 마음이 없다는 뜻이므로

걷어차일 일만 남았다고나 할까?

 

남자에게

집착하지 않는 여자는

애초에 저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집착하지 않는다는 건,

곧 여자 역시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니

거론할 이유가 없다.

 

어떤 이유에서든

고민하고 집착하는 것은

사랑 떄문이니까.

 

드라마 '거침없는 사랑'

에서 등장인물이 이런 말을 했다.

 

'사랑은 그렇게 아름다운 게 아냐!!'

 

맞는 말이다.

사랑은 시작할 때의 설레임만 빼고

실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지지고 볶는 순간이 반드시 도래하며,

그 사이에 사랑이 이리저리 밟히다가

죽어버리지 않으면

기적이다.

 

내 친구는,

아마 곧바로 저 방법을 써먹었나보다.

남자의 대답은 물론

두번째였고,

 

이후로 얼마 안 가서

두 사람은 헤어졌다.

 

대학 시절이 시작하자마자 만나서

긴 시간을 함께 보내다보면

 

사랑이 단순히 사랑이 아니라

인간관계로 진화하는데,

 

그 진화에 미숙하게 처신하는 경우엔

저렇게 끝나더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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