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드라마 속의 나의 명곡- 아름다운 날들 본문
'아름다운 날들'...
이 몇 개의 단어의 조합이 요즘의 내 화두이다.
'아름다운 날들..'
참 아름다운 말이다.
그리고 슬픈 말이다.
왜냐면,
난 요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내가 얼마나 아름다운 날들을 살아왔던가 새삼 놀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당시엔 아름답긴 커녕, 고통스럽고 지루하고 힘에 겨워 허덕였던 것이다.
그것이 아름다운 날들이 된 것은
그 모든 시간이 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이라는 이름의 작은 사진 전시관에 진열된
순간 순간의 사진들...
그 안에서 웃고, 울고, 화내고, 어딘가 넋을 읽고 바라보는 내 모습..
올케에게 식사 중에서
이런 말을 했더니
'지금 이 순간도 얼마 후엔 아름다운 날들이 되어 있을 거예요..'
라고 쓸쓸하게 웃으며 응답한다.
그렇다..
우리는 참으로 아름다운 날들을 살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현실이란 늘 추악하고 역겨우며 재미없고 지루한 것이다.
추억은 그 시간 속에서 온갖 불순물을 걸러내어
맑게 만들어 내게 선물로 준다.
일 년 전이 아름다운 날들로 남았다면,
그만큼 더 앞으로 떠밀려 나갔기 때문이리라.
돌아보면서
아쉬워한다.
왜 저때 난 내가 얼마나 좋은 시간 속에 있었는지 몰랐을까??
이 음악은,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의 ost이다.
제목은 '그대 뒤에서'
이 노래는 내가 들어온 모든 드라마 ost 중에서도
가장 신비롭고 드라마틱하다.
그리고 격조높다.
이 음악이 흘러나올 때면 아무리 시시한 장면도 그럴 듯 해 보일 정도이다.
본방 방영 당시에도 난 이 음악을 간간히 들었던 기억이 난다.
들을 때마다 감탄했었다.
이병헌의 작품은 대개가 ost가 참 뛰어나다.
아름다운 그녀도 그랬고,
해피투게더의 음악들도 그랬으며
하다못해 올인도 그러했다.
달콤한 인생으로 말하자면,
달파란의 연주들이 느와르 음악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러고보면, 내가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와
지금 이 순간 사이엔 이병헌이라는 배우의 기나긴 여정이 가로놓여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저때의 이병헌이 이미 아니기 때문이고,
난 저 시절의 이병헌이
'아름다운 날들' 인 것이다.
난 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어찌하여 저런 허접한 드라마에
저토록 시리고 아름다운 음율이 흐를 수가 있으며
또한
'아름다운 날들'
이라는 멋진 제목에
저 음악이 얼마나 어울리는가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난 이 드라마가 티비에서 흘러나오던 그 시절마저
'아름다운 날들'이었음을 이제와서 깨닫는다.
왜냐고?
젊고 멋진 이병헌, 역시 젊고 아름다운 최지우, 지금은 티비에서 볼 수 없는
류시원까지 한꺼번에 볼 수 있던 시절이니까.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꿈같은 일인가?
배우다운 배우나, 스타다운 스타를 티비에서 본다는 것은
이제 힘들어진 이 시대,
저 사람들을 한꺼번에 몰아서 다름아닌 티비로 볼 수 있었다니
얼마나 '아름다운 시절'이냔 말이다.
이병헌을 제외하면, 최지우나 류시원의 연기는 보기 민망할 정도라지만,
그래도 어떻든 그들은 그때 젊고 아름다왔던 것이다.
그들에게도 저 시절은 아름다운 날들이었던 셈이다.
이 드라마는 두 번쯤 보았다.
물론 본방은 아니었고,
몇 년전에 한번,
그리고 작년에 다시 한번 봤다.
몇년 전에 봤을 땐 이병헌팬으로써 오로지 이병헌을 보기 위해서만 봤고,
두번째엔 그저 드라마를 봤다.
이병헌팬으로 볼 때는 드라마에 욕을 퍼붓고, 험오감마저 느꼈지만
그저 드라마로 볼 땐 안타까왔다.
이민철이라는 보기 드문 캐릭터를,
이병헌이라는 보기 드문 배우가 연기해주고 있었으며
비교적 독특한 소재와, 미스테리와 복수극, 그리고 사랑 이야기까지
드라마틱하게 조화를 이루던 드라마가
갑자기 삼천포로 빠져서 허우적거리다가
엉뚱하게도 백혈병이라는 욕나오는 설정을 해서
모든 것이 거품처럼 사라지고
기껏 이민철과 최지우역의 짝짓기 드라마로로 전락시킨 것이 아까와서였다.
하지만,
이젠 저런 드라마가 방영되던 시절도 아름다운 날들이다.
통속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캐릭터가
멋진 배우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가슴 설레게해주던 시절..
그리운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의
찬란하던 시절..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아름다운 날들이었던 것이다...
난 이 장면을 아주 좋아한다.
아름다운 날들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기 때문이다.
아날은 영상미에 그다지 치중한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은빛으로 빛나는 화면에
역시 은빛 벤츠에서 내려서 은빛 모습을 한 이민철이
흰색 백합을 묘 위에 하나씩 내려놓고는
하염없이 서 있는 뒷모습...
내가 아날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이때 흘러나오는 것이 이 음악이다.
은빛의 추워보이는, 시리디 시린, 그러나 매우 절제된 영상에
이 음악의 신비스러운 아련함이 참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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