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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비비안 리' (5)

모놀로그 2012. 3. 15. 12:27

 

 

 

 

 

 

 

바람과함께사라지다는 극장에서뿐 아니라 각종 매체를 통해서 수없이 봤지만,

마가렛 미첼의 원작을 읽은 후로

영화에 대한 감동이 조금은 감퇴했다.

 

그만큼 원작이 뛰어나다.

하긴, 유명 소설을 영화화한 경우,

영화가 그 원작을 뛰어넘기란 참 힘든 일일 것이다.

 

하지만, 문자로 씌어진 원작이 영화에게 밀리는 부분이 있으니

몇 페이지에 걸쳐 수천마디의 문자로 서술한

작가의 사상을

단 한 장면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비록 어린 나이에 처음 이 영화를 봤지만

내가 가장 전율을 느끼며 숨을 죽이고 지켜본 부분은,

아틀란타가 함락되는 날,

멜라니가 해산을 하고

레트의 도움으로 화염에 휩싸인 아틀란타를 탈출하여

타라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에 오르는 대목이었다.

 

이 부분은 원작보다 영화가 뛰어나다.

왜냐면 몇몇 장면만으로 스칼렛이 생전 처음 직면한 가혹하고 무서운 현실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문자로 전달될 때보다 시각적으로 강렬하여

공감을 끌어낸다.

 

그래서 바람과함께사라지다가 명작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이나 캐릭터에 대한 묘사는 원작이 뛰어나지만,

1939년대 영화였음에도

바람과함께사라지다는

주요 장면에 강한 임팩트를 주는 보기 드문 영상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남부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전방이 무너지니

결국은 후방까지 전선에 노출되고만다.

 

전젱이라는 것이 실생활과 밀접해지면서

스칼렛은 비로소 두려움이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거리엔 피난민이 넘치고

병원엔 부상자들의 신음소리가 가득하다.

 

 

 

 

 

 

 

 

영화를 보면,

이 부분을 참 잘 찍었다는 걸 알 수가 있다.

옛날 영화임을 감안할 때

영상미도 뛰어나고

몇몇 장면만으로 전쟁이 인간들의 일상을 파괴할 때

그 생경하고 낯선 두려움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전면에 스칼렛 오하라를 내세운다.

그녀가 느끼는 놀라움과 두려움과 당황은

아마도 남부인들의 그것이리라.

 

 

 

 

 

 

레트 버틀러는,

원작에선 정말 매력있다.

얼핏 마가렛 미첼이 클라크 게이블을 염두에 두었다는 얘길 들은 것 같은데

내 생각엔 정말 넌센스이다.

클라크 게이블은 내가 굉장히 싫어하는 타입이다.

난 터프가이를 좋아하지만, 이런 종류의 터프함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너무 늙었다.

앞서도 말했듯, 비비안 리의 스칼렛을 제외한 모든 캐릭터가 늙어빠졌다는 것이

영화에선 옥의 티가 아닐 수 없다.

 

영화를 볼 땐 레트에게 별 관심을 가질 수 없었지만

원작을 읽고나서야 그를 많이 이해할 수가 있었으니

적어도 내겐 영화에서의 클라크 게이블은 미쓰캐스팅이었다.

 

 

어떻든 레트라는 존재는 상당 시간 베일에 가려져 있다.

가끔 불쑥 불쑥 나타나긴 하지만

중심 인물에선 약간 비껴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늘 스칼렛이 위기에 처하거나 뭔가를 원할 때

어디선가 나타나는 흑기사이다.

물론 스칼렛은 전혀 그것을 모르지만..

 

그는 냉소적인 가면을 쓰고

자기가 흑기사임을 교묘하게 감추며, 더불어 스칼렛을 자극하거나

모욕하거나 약올리는 말을 거침없이 함으로써

혹기사의 면모를 감춘다.

 

스칼렛과는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관계이고,

스칼렛이 혐오하는 인물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스칼렛은 레트를 찾고

그의 도움을 받는다.

 

그는 백마를 탄 왕자이지만,

스스로 그것을 검은 망토로 감춘 악마인체 하는 왕자인 것이다.

 

 

 

 

 

 

 

 

 

 

 

 

 

 

 

 

 

 

 

 

 

 

 

 

 

 

 

 

 

 

 

 

 

 

 

텅빈 도시에 홀로 남겨진 스칼렛..

인생이라는 것이 더이상 장난이 아니게 되버렸다.

언제나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살아온 스칼렛에게

삶이라는 것이 추악하게 정면으로 대결을 요구해온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 아닌, 멜라니의 해산으로 표현된다.

해산이라는 리얼한 삶의 현장에

아무런 지식없이 내동뎅이쳐진 스칼렛이다.

 

 

 

영화는 점점 더 깊숙히 나를 끌어들이고 비비안 리의 연기도 불을 뿜기 시작한다.

 

 

 

 

 

 

 

장면은,

처음 봤을 때 나를 전율시켰다.

애슐리를 유혹하려던 원유회에서 썼던 이 모자가 영락한 남부를 상징하는 듯 했다.

 

 

 

 

 

전쟁의 비참함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놀랍다.

 

 

 

의사를 데리러 온 스칼렛은,

자기 힘으로 아이를 받아내야한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이 장면들이다. 이때의 비비안 리는 아름답게 꾸미고 있을 때보다 훨씬 매력 있었다.

스칼렛 오하라를 에워싸고 있던 세계가 조금씩 부서지기 시작하는데

있는 힘을 다해 맛서는 긴장감이 팽팽했었다.

 

 

 

 

 

 

 

 

 

 

의사는 올 수가 없다. 이제 스칼렛은 멜라니의 해산을 도와서 무사히 아이를 낳게 해야한다.

물론 그녀는 해산에 대해선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늘 많은 노예들에 둘러싸여 자신의 손으론 옷도 입어본 적이 없는 스칼렛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연하게 한 걸음씩 계단을 올라가는 그녀는, 어떤 경우에도 현실에 굴복하여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강인한 모습이다.

이 장면에서  난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느낌이었다.

 

 

 

 

 

 

 

감독은 이런 장면으로 해산의 고통과, 스칼렛의 난감함과 그럼에도 갑자기 맞딱뜨린 엄청난 상황에서 오는

긴박함을 표현한다. 이런 식의 연출은 이후로도 자주 보이는데 색채감이나 실루엣으로 표현하는 긴장감은

정말 장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