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오승하와 금나라 본문

모놀로그/작품과 인물

오승하와 금나라

모놀로그 2011. 4. 26. 23:23

이상하게 시간이 흐를수록

가슴 속을 파고드는 캐릭터가 있다.

 

내겐 오승하가 그러했다.

처음 마왕을 볼 땐,

주지훈에게 막 홀릭한 상태에서

드라마나 캐릭터보단,

 

그저 주지훈만 쳐다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처음 마왕을 볼 당시에 어떤 느낌이었는지가

통 기억이 안 난다.

 

우리 엄마는 마왕을 본방 당시에 보셨었다.

마왕을 틀어놓고 계시는 걸 몇 번 보았다.

얼핏 티비 화면을 볼 때마다

어찌 그리도 해인이의 싸이코메트리 장면만 나오던쥐!

 

하지만

13부 쯤에 이르러,

마왕을 보다 말고

엄마에게 달려가서

 

'가슴이 너무 아파서 도저히 못보겠엉!!'

 

하고 외친 기억은 난다.

 

왜 그랬을까?

 

물론, 마왕은 내가 본 드라마 중 가장 가슴 아픈 드라마에 꼽힌다.

하지만 처음 볼 때 그런 말을 했었다는 게

어쩐지 이상하다.

 

어떻든,

요즘 난 엄태웅 버전의

'사랑하지 말아줘'

를 노상 듣고 있는데,

 

노랫말 하나하나가 어찌 그리 노골적이고, 폐부를 찌르는지 모르겠다.

 

오승하가 얼마나 불쌍한 캐릭터인가는

오히려 처음 봤을 때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수록

내 심금을 울렸다.

 

내가 마왕의 시철자 게시판에서 펌해온

'주지훈의 연기평'을 쓴 분은

 

마왕과 쩐의 전쟁도 비교하고,

오승하와 금나라도 비교하고,

또한 쩐의 전쟁에 나오는 또다른 캐릭터인

하우성역과 오승하를 비교하기도 한다.

 

그분은 오승하 캐릭터와, 주지훈에게 찬탄을 보내고 있다.

하기야,

마왕을 제대로 본다면 그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내가 봐도 주지훈의 오승하는 찬탄스럽다.

 

왜냐면 그는 참 독창적인 캐릭터 창출의 영역을 개척했기 때문이다.

 

복수자의 역은 자칫 구태의연하기가 쉽다.

하지만 주지훈의 오승하는

그 모든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아니, 애초에 전에도 없었고,

이후로도 없을 정말 대단한 캐릭터요, 대단한 캐릭터를 만들어냈음을

사람들은 알고나 있을까?

 

증오와 원한으로 따지자면,

유례가 없을 정도인데,

그는 고요하게 나부끼는 듯한

차가운 불꽃 같다.

 

게다가 더 기막힌 건,

그가 겉으론 성인이지만,

실제론 16세 소년의 정서에서 한발자욱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16세 소년의 얼굴이 어른거리는

냉철한 변호사의 내면은 이지러졌음에도

겉으론 더없이 반듯한 모습을

주지훈은 얼마나 멋지게 표현할 걸까?

 

요즘 드라마들을 보면서

주지훈에게 새삼 감탄하게 되는 이유이다.

 

또한

그 캐릭터의 폭은 정말 넓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이다.

 

내가 감탄하는 건

주지훈의 오승하는

나긋나긋하고 고요하게,

그 넓은 거리를 오가면서도

조금도 숨이 가쁘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에 본 쩐의 전쟁의

금나라를 오승하와 비교했던 글이 생각나서

나도 곰곰히 생각해봤다.

 

하지만,

두 캐릭터를 비교하기가 난 좀 난감하다.

 

금나라는 성인 남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전형적으로 돈이라는 것의 폭력에 의해서,

그리고 그 돈이라는 걸 함부로 휘두르는 집단,

즉 사채업자에 의해서 부모를 잃지만,

적어도 그때 그는 소년은 아니었다.

 

사리판단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성인 남자였던 것이다.

 

금나라 캐릭터는

오승하처럼 극도로 자기 자신을 죽이고,

정체를 짐작할 수 없어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캐릭터도 또한 아니다.

 

그는 마구 내지르는 형이다.

 

그럼에도,

또한 질척대지 않는 복수자라는 점에선 오승하와 비슷하기도 하다.

 

박신양이 맡는 역이 대개 그러하듯,

굉장히 쿨한 느낌을 준다.

 

더없이 비참한 순간에

오히려 고요해지고 꽃처럼 청초해지는 오승하처럼,

 

금나라는 그럴 때

무척 담담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들이 가슴에 남아 있어서

그게 아픔이 되는 것 같다.

 

사람이 너무 아프면 소리도 못지른다던가?

 

울고 싶을 때, 웃고

화내고 싶으면 이죽거리고

외로우면

길바닥에 주저앉아

개쉐이 한 마리와 소주를 나눠먹던

금나라가

왜 이리도 가슴이 아픈지 모르겠다.

 

16부 내내

땀에 젖어서 이리뛰고, 저리 뛰며

몸이 부서지도록 뭔가를 추구했던

금나라가 정작 추구한 건 대체 뭘까?

 

왜 그는 부당한 일을 당하고,

그럼에도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고

화해를 청했음에도

그토록 허망하게 보내버린 걸까?

 

복수는 복수를 부른다는 진부한 사고방식이 아닌 담에야

쩐의 전쟁은

돈이란 건 그야말로

용서도 화해도 필요없는,

 

죽이지 않으면 죽는

가장 끔찍한 무간 지옥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오늘따라, 청초한 백합같던 오승하와,

땀에 젖어 뛰어다니던 금나라의

슬픈 삶이 유독 가슴을 아프게 하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