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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훈/마왕

마왕 17부- 동질감

모놀로그 2011. 4. 3. 13:24

일찌기 승하는,

오수가

 

'나와는 참 인생관이 다르시군요'

라고 적개심을 드러냈을 때,

 

'그것 참 유감이군요. 난 동질감을 많이 느꼈는데..'

 

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물론, 그건 이죽거리는 말이었다.

오수에게 승하가 건네는 말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중의적이고도 적나라한 진실이 담긴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면 대결이야말로

무엇이든 성과가 있다고 내가 주장했듯이,

 

역시 오수와의 한판 대결의 기억은 승하에게 많은 흔적은 남겼다.

어쩌면 오수에게보다 더 깊은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승하는 어찌 보면,

진실과 거리가 먼 세상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긴,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상상 속에선 모든 것이 극대화된다는 말을 내게 누군가 해준 적이 있다.

그래서 정면 대결이 필요하다.

 

상상 속의 괴물이 아니라.

바로 눈 앞에서 살아 움직이고, 말도 하고,

자기와 별 다를 바 없이 불쌍하고 나약한 존재일 뿐인

한 인간과 마주설 때,

 

우린 미망에서 벗어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승하는 오수와 그렇게 한번씩 불꽃이 튀기는 접전을 벌일 때마다.

그를 에워싼 두터운 미망에서 조금씩 벗어난다.

 

그는 어린 나이에,

오수에 대해선 아는 것도 없는 상태에서

겉으로 드러난 사실들,

 

그가 자신의 형을 죽였고,

부잣집 아들이라는 이유로 얍삽하게 빠져나가면서

오히려 자기 집안을 풍지박산낸

비겁하고 나쁜 넘이라는 편견을 지닌 채로 떠났다.

 

그리고 그 편견에 물을 주고 양식을 주어 기르면서

절취부심해서 다시 나타났다.

 

이제 그는 약자가 아니고,

더이상 힘이 없어 당하기만 하지 않는.

그야말로 전지전능한 마왕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그가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일진 모르나

진실은 아니다.

 

일찌기

오수와의 첫대면에서

 

'편견이 있으시군요'

라고 첫마디를 건넸지만,

 

승하 또한 오수에게 많은 편견이 있다.

그 편견이 오수와 부딛힐 때마다 하나씩 부서진다.

그와 개인적 만남을 가질 때마다 그러했다.

 

자신의 원수 강오수,

강의원의 아들 강오수,

이제 형사가 되어

지난 일은 까맣게 잊고 잘먹고 잘사는 뻔뻔한 오수

 

이런 편견은,

 

그러나

개인 강오수는

 

괴물도 거인도 원수도 아닌,

평범하고 나약한 인간이다.

그는 외롭고, 고통스럽고, 혼란에 빠져 있다.

뿐이랴, 의외로 호인이기도 하다.

 

어쩌면 승하의 굳건한 설계도의 토대를 휘청이게 하는 요소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강오수라는 인물의 껍질 안에서

역시 자신처럼 어둡고 외롭게 웅크리고 있는 소년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아닌가 싶다.

 

승하는 그럴 때마다

자신의 원한을 되살리며, 약해지려는 토대를 바로 세우지만

이젠 한계를 느낀다.

 

자기가 괴로와하고 있을 때,

오수도 괴로와하고 있었다.

 

자기가 죽을만큼 힘들었을 때

오수도 역시 죽을만큼 힘들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진실조차도 보지 못하는 게 인간이었다.

 

그는 그 인간이라는 부류에서 자신은 제외하고 있었지만,

 

자신도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보지 못한 인간일 뿐이 아니었을까

하는 회의가 콘크리이트벽에 균열을 일으킨다.

 

오승하는 단순한 악역으로 보는 사람들은

그가 약해지는 것,

그가 자꾸만 흔들리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러나

마왕에서 추구하는 건

오승하의 악마성이 아니라,

 

그가 지니게 되었던 그 악마성이

인생이라는 것을

혹은 인간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점점 약해지는 것이 실은 핵심이라고 난 생각한다.

적어도 그게 내가 본 마왕이다.

 

복수극에서 흔히 그러하듯

아무 생각 없이 사람들을 죽이며

복수를 완성했다고 좋아하는 인간상이 아니다.

 

대개의 마왕 리뷰에서 공통적으로 내가 느끼는 것이

후반에 가면서 승하가 흔들리는 것에 대한 불만인데,

 

그건 긍극적으로 마왕, 혹은 오승하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어린 소년 오승하의 성장기라고 해도 좋다.

또한 같은 소년 강오수의 성장기이도 하다.

 

아득히 멀고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한

두 소년이

실은 같은 터널 안에 갇혀 있는 어린아이들이며,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건

다름 아닌 비정한 기득권 세력들의 힘의 논리였으며,

오수도 그 세력으로 인한 또다른 희생자일 뿐이라

 

실은 두 소년의 거리는 매우 가까우며,

 

겉보기에 먼 듯이 보이는 거리를

좁혀가는 과정이

마왕이라고 보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강렬한 트라우마로 인해

정신적으로는 정체된 삶을 보내야했던 두 소년이

세상과 부딛히고,

진실과 대면하면서

 

차츰 생이란 것과, 인간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과정이

마왕에서 추구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따지면

승하는 약해지고 있는 게 아니라

성장하고 있는 것이며,

 

굳이 약해지는 모습을 드러내는 게 못마땅하다면

인간이란 원래 나약한 존재라는 걸 말해두고 싶다.

 

오승하는 왜곡된 세계에 살고 있었기에

강할 수 있었지만,

 

그가 정상적인 성장을 했다면

절대로 마왕이 가진 전지적 시점을 지닐 수는 없었을테니 말이다.

 

오수가 들려준 말들을 자꾸만 되새기면서

승하는 혼란을 느낀다.

 

그는 인간이라는 것과,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걸

차츰 깨달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자신을 지탱하는 분노와 원한이

그 타당성을 잃어가며

그의 마음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가 약해질수록

그는 자기 혐오에 사로잡히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돌이킬 수 있는 것도

해결되는 것도 없다.

 

하지만,

그가 세상과 부딛힐 때마다

얼어붙어 있던 몸과 마음이 녹아내려

그 발치에 물이 고이는 것은

아름다우면서도 쓸쓸하다.

 

자신이 지옥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행복하게 살고 있었던 듯 보였던 오수가,

자기와 다를 바 없이

 

살아 있는 것이 지옥이었고,

숨쉴 때마다 태훈이 생각이 났으며,

그로 인해서 하루도 편치 않은 고통 속에서 살아왔다고 외치는 말을

되새기며, 승하는 오수에게 그야말로 동질감을 느낀다.

 

왜냐면,

그가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오수가 외치는 말들은

그대로 승하가 외치고 싶은 말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살아보고 싶었다는 오수의 말도

이젠 승하에겐 절절하게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난 동질감을 많이 느꼈는데..

라는 말은

이제 이죽거리는 말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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