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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훈/마왕

마왕 17부- 마왕이 되는 사람들

모놀로그 2011. 4. 3. 00:38

강동현 의원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결국, 그는 지금 정태성의 어머니가 걸었던 길을 착실하게 걷고 있다.

정반대의 길이지만 말이다.

 

그의 두 아들은 모두 살인자가 되버렸다.

이쯤 되면, 이제 정태훈 일가를 위해 통쾌해해야 마땅할지도 모르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아무리 죽이고 싶은 인간도

저쯤 되면 측은지심이 들게 되니, 참 묘한 일이다.

 

그때까지 바위처럼 단단하고 거대한 산처럼 버티고 있던

강의원이,

 

둘째 아들도 모자라,

이제 큰 아들까지 살인자가 되버린 것이다.

 

오승하는 호텔로 강의원을 찾아온다.

그가 호텔 사무실로 들어서는 장면을 카메라는 디테일하게 잡아주고 있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바로 눈 앞에 의젓하게 앉아 있는,

강의원의 선량하고 범생이인 큰아들이 뭔 짓을 저질렀는지

훤히 알고 있는 상태에서

자기가 들어서기까지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지라,

그 방에 흐르는 무거운 공기의 이유를 승하는 알고 있다.

 

마치 그 공기를 천천히 가늠하고, 그 함량을 달아보기라도 하듯

방안에 들어서서

그들을 바라보는 광경을 카메라는 섬세하게 비춰주는 것이다.

 

그는

새로이 탄생한 자신의 제자인 마왕과,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자기의 비위를 맞추는 강의원을

예의 나른한 표정으로 바라 보며 미묘한 미소를 흘린다.

 

그리고, 제자 하나를 거느린 듯한 시선으로

마왕이 된 희수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이제 승하는 한 단계 품계가 올라가서

대마왕이 된 것일까?

 

하지만 승하는 그렇게 새로운 마왕을 탄생시키는 것으로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아무리 운명의 수레바퀴는 스스로 굴러간다지만,

그 운명을 신이 아닌,

승하가 금을 그어주었으니

새로운 마왕의 탄생은

곧바로 승하의 파멸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희수의 죄는,

천근의 무게로 승하를 짓누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기회를 주지!'

 

라는 말로 그들에게 선택을 맡겼으며,

신은 운명을 예정한다고 했지만,

다름 아닌 승하가 신이 되기라도 한 듯

그들의 운명을 예정해주었으니

 

인간이 신이 될 수 없는 한

이제 승하는 희수의 죄까지 짊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새로운 마왕 희수는,

일찌기 오승하가 그랬듯이

이제 차양이 드리워진 창문 앞에 우뚝 서서

허공을 노려보고 있다.

 

스스로 생각해도 기막힌 계획을 세워서,

평생 자기 집안을 울궈먹은 것으로 모자라

감히 자신의 아내를 모욕하고, 또한 그 비밀까지 알고 있으며

그것을 미끼로 협박까지 한 순기를 없애버리고,

그 죄를 석진에게 씌우는 것으로

자신의 아내를 탐한 사내를 응징함과 동시에,

그럼으로써 아내에게까지 복수를 하는 등,

일타삼피를 먹었으니

자기의 힘에 도취된 모양이다.

 

그의 살인은 그때까지의 그 어떤 살인보다 전율적인데,

첫째로

처음으로 자기의 자유 의지로 살인을 정확하게 선택한다.

그리고

살인을 하는 이유가 오로지 그는 자존심 때문이다.

 

지옥문의 그림 중에서도

'오만' 에 해당되는 그의 행위는,

 

맨정신으로,

스스로 선택하여 계획적인 살인이라는 점에도

마왕의 비극의 절정이다.

왜냐면 그 살인으로 인하여

승하의 죄도 확정되기 때문이다.

 

막상 당사자인 희수는,

그것이 대마왕 오승하의 원격조정에 의한 것임을

꿈에도 모르고 있다.

 

자기 자신이 해치운 멋들어진 프로젝트라고 착각하고 있다.

평생을 극도로 자신을 죽이며 살아왔을 인물이니만큼

일찌기 맛본 적이 없는 카타르시스와 함께

거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이쯤에서 내겐 어떤 생각이 하나 떠오른다. 

 

승하가 노린 건

모든 인간을 마왕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었을까,

즉 자기 자신과 동등하게 만드는 것이었던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마왕은,

단지 승하를 일컬음이 아니라

 

자기 안의 나약함이 악과 결탁하여

쉽사리 구렁텅이에 빠져들고마는

인간들인 것이다.

 

승하는 바로 그들의 악을 살짝 건드려주며

그 반응을 보는 것 뿐이다.

 

석진만은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애걸하는 오수에게

승하가 던져준 한 마디

 

'그런 부탁은 친구들에게나 하시지?

운명은 각각의 선택이니까!'

 

라는 말이 내겐 참으로 무섭게 들렸었다.

 

승하로서도 이미 그들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승하에게 부탁해봤자 정말 아무 소용이 없다.

 

선택을 한 건 그들이고,

그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마왕이 되는 길을 택하고

마왕이 가야할 필연적인 길,

즉 파멸을 향해 걸어간다.

 

그렇다.

 

마왕은 승하가 아니라,

서슴없이 승하가 교묘하게 건드려준 자신의 나약함과 비열함과

이기심에 투신하며

불나방처럼 스러져가는 인간들이다.

 

난 드라마의 제목인

 

'마왕'

을 새삼 돌이켜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단지 오승하가 아니었다는 것에

전율을 느낀다.

 

그리고,

그렇게 마왕을 만들어내는

승하도 아마 이젠 전율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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