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인간도 기계처럼... 본문
처음으로 샀던 dvd플레이어는
도시바 제품으로 vcr과 콤보였다.
그땐 dvd 가 지금처럼 보편화되기 직전이었다.
따라서 dvd 플레이어도 그다지 흔치는 않았다.
후에 알았지만, 컴에 부착된 씨디롬이 디비디와 콤보를
겸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난 당시만해도, 컴터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하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난 컴터로 뭔가를 보는 건 사절이다.
그래서 티비 아웃을 이용해서
대개의 동영상을 티비로 보다가.
최근엔 아예 컴퓨터 모니터를 티비로 바꿔버렸다.
보지도 않는 티비를 그냥 놔두느니
모니터로 쓰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마침 티비엔 컴와 연결되는 모니터 케이블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모니터가 그렇게 크지도 않았고,
씨디롬은 아직은 디비디를 지원하지도 않았으며,
따라서 난 디비디를 보기 위해 플레이어를 사야했다.
내가 그것을 산 이유는 다모 디비디를 보기 위해서였지만
이내 후회했다.
도무지가, 다모 디비디처럼 욕나오는 디비디도 드물것이다.
다모폐인치고 다모 디비디를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개는 사놓고 뜯어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감독이 무지하게 초를 쳐놓은 이상한 디비디이다.
그래서
난 이후로, 그 디비디 플레이어를 음악을 듣기 위한
씨디 플레이어로만 이용했다.
대개의 디비디 플레이어는
씨디플레이어로도 쓸 수가 있다.
그때 마침 씨디플레이어도 고장나서 새로 사려던 참인데,
디비디플레이어가 음악도 지원한다니
얼마나 고마운가.
이후로 오랫동안 음악씨디나 들으며 이용했는데,
어느날인가, 그것도 더이상은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대개의 씨디플레이어가 고장나는 이유는,
아니 더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는 이유는
오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닫힌 문은 끄덕도 하지 않는다.
빌어먹을 디비디 플레이어는 그때부터 내겐
찬밥이 되었다.
며칠 전에
난 갑자기 그 기계에 달려들어
마구마구 해부했다.
어차피 망가진 거
대체 뭐가 문제인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그런 기계는
안에 시디롬만 들어내어 교체하면 다시 쓸 수가 있긴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그런 돈을 들일 이유는 없다.
어차피 다른 디비디플레이어를 장만해서
그걸로 음악을 듣고 있으니까.
완전히 고장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쓸모도 없어진 그 기계를 노려보다가,
난 갑자기 달려들어서
마구마구 헤집어놓은 것이다.
그 결과 그 기계는 장렬하게 사망해버렸다.
마치 내가 서툰 의대생같고, 그 서툰 의대생이
죽어가는 환자를 몰래 해부해서
생체 실험을 해보려다
죽게 만든 기분이다.
그 기계는,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고,
먼지만 뒤집어 쓴 채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골치아픈 물건이었다.
그래서 내다버리려다가
기왕 버리는 김에 내부나 들여다보자고
마구 헤집은 것이다.
기계는 더이상 쓸모가 없어지면
알아서 죽어주거나, 혹은 내다버리면 된다.
그런데 인간은 그게 불가능하다.
난 인간이 그렇지가 않다는 사실에
갑자기 화가 난다.
인간이 뭐 그리 대단한데?
아무리 봐도
인간처럼 이 지구상에서 쓸모없고 골치아프고
시끄러운 존재도 없다.
내가 다른 별은 안가봐서 모르겠지만,
이 지구처럼 아름다운 별도 흔치 않을 것이다.
푸른 하늘에, 높은 산에
넘실대는 바다에
곳곳엔 강이 흐르고
꽃이 피고 새가 운다.
영화로 치면 기가막힌 색채감을 가진
걸작이다.
그러나.
인간들이 그 안에 살고 있다.
그들에 의해서
지구는 본질이 파괴되고
인간과 더불어 망가져가고 있다.
그런데
대체 왜 인간이 기계보다 낫다는 거지?
왜 인간은 기계처럼
어느날 고장나면
그냥 아무 곳에나 치워둘 수가 없지?
인간도 기계처럼
더이상 쓸모가 없어지면
절로 숨이 끊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세상에 죽을 일 밖에 남은 게 없는 상태로
숨이 붙어 있어 살아야하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들은 얼마나 고통스럽게
할 수 없이 연명해야하는걸까?
내 지론으로는
인간은
자기 힘으로 자기를 책임질 수 없어지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더이상 나아갈 곳도 없고
단지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는데,
뒤로 물러나는 것이 스스로 허용이 안되면
대뜸 할복을 해버리는,
소설 대망의 수많은 장수들처럼,
그렇게 자존심을 가지고 자기가 자기 운명을 결정하면
세상에선 손가락질을 받는다.
우리 목숨은 신의 것이라
우리 맘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이란 존재는 가늠할 수가 없다.
없어선 안될 존재는 너무 쉽게 데려가는가 하면,
낙엽처럼 쓸어서 쓰레기통에 버려야할 사람은
주구장창 살려놓아
당사자도, 주변 사람들도 골치가 아프다.
나의 이런 사고방식이 매우 위험한 것이라는 걸 안다
명색이 천주교도이면서
이런 식으로 사고하는 게
잘못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합리적으론 그래야할 것 같다.
대체 왜 인간에겐 합리적인 사고가 적용되지 않는거지?
물론,
인간에게도 좋은 시절이 주어진다.
그 시절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고장이 나느냐,
그럭저럭 빛나는 기계가 되느냐가 갈린다.
하지만,
꼭 그런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 아닌 것도
또한 인생이다.
열심히 살아도
안되는 게 있고,
노력해도 안되는 게 있다.
기계처럼
어느 순간에
넌 이제 끝났어!
라고 판결받으면
그 자리에서
당장 생명이 아니라
하나의 물체로 변질되면 참 좋겠다.
간단히 내다버리고
돌아서서 잊어버릴 수 있는
물체 말이다.
'모놀로그 > 낙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강아지의 한 살을 축하하며... (0) | 2011.03.17 |
---|---|
지진-지구의 기지개 (0) | 2011.03.13 |
내 머리 속의 괴물 (0) | 2011.03.04 |
21011년 처음으로 봄비가.. (0) | 2011.02.27 |
유령으로 나타난 친구 (0) | 2011.02.24 |